[창간 32주년 특집1-새로운 융합, 협업] 스마트 전력수요관리

전기자동차가 국가 에너지 산업의 패러다임을 주도한다. 전기차는 이용자뿐만 아니라 산업에도 많은 변화와 기회를 가져다주기 때문이다. 전기차 충전인프라는 태양광·풍력 등 신재생 에너지에서 생산한 전기를 사용하고 전기차 배터리에 담아둔 에너지를 가정용 전기로 활용하는가 하면 이를 집단으로 전력망에 보내면 안정적인 전력 수급에도 기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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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은 최근 한국전력을 방문한 자리에서 “전기자동차는 작은 발전소 역할을 하고 ‘태양광+전력저장장치(ESS)’에서 생산된 전기를 이용하기 때문에 새로운 에너지 산업을 창출하게 될 것”이라며 “전기차나 ESS가 또 하나의 발전소 역할을 하고 IT를 통한 스마트한 전기 절약이 생활화될 수 있도록 하루빨리 낡은 제도와 규정을 개선해야 하겠다”고 밝혔다.

◇작은 발전소 ‘전기차’

전기차의 전기에너지는 가정용 전원으로 공급·활용할 수 있는 V2H(Vehicle to Home)와 국가 전력망에 송전하는 ‘V2G(Vehicle to Grid)’기능이 가능하다. 기존 내연기관 자동차와 달리 전기차는 일상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전기·전자제품과 같은 에너지를 사용하기 때문이다. 전기차는 역전송이 가능한 V2G와 V2H 기술은 전기차 구동에 필요한 방전뿐만 아니라 전력망이나 가정의 가전기기·대형 중전기기에도 에너지를 보낼 수 있다. 전기차를 집단 사용하면 국가 전력 피크 시 전력을 역전송하는 것은 물론이고 다수의 충전기 사용을 제한해 전력소비를 막을 수 있다.

V2G 기술이 활성화되면 전기차 운전자는 심야시간대 싼 전력을 이용해 전기차 배터리를 가득 충전하고 전력 요금이 비싼 대낮 피크 시간대에 배터리에 남은 전기를 중앙전력시스템에 되팔 수 있다. 이렇게 된다면 전력 당국은 전력 예비량이 모자라는 피크시간에 전력 수요를 쉽게 관리할 수 있다.

전기차 한 대가 보유한 전력량은 24~28㎾h로 가정에서 5~6일 동안 사용할 수 있는 전력량과 맞먹는다. 여기에 태양광·풍력 등 신재생에너지 발전으로 생산한 전력이나 가격이 저렴한 심야 전력을 전기차에 충전한다. 이후 전력 수요가 많을 때나 정전 등 비상 발생 시 주택에 전력을 공급할 수 있다. 전기요금이나 전력수요를 실시간 파악하는 에너지관리시스템(EMS)을 통해 자동으로 상호 전력 교류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전기차 충전소는 분산 전원 형태로 국가 전력계통과 상관없이 독립 운영이 가능하며 필요에 따라 생산된 전기를 국가 전력계통이나 가정용 전기로 활용할 수 있다. 한국전력으로부터 전원 공급이 중단되거나 전력 피크로 전기사용량이 급증해도 안정적인 전기차 운영이 가능하다.

황우현 한국전력 스마트그리드·ESS 사업처장은 “전기차는 충전인프라와 V2G가 보편화되면 태양광·풍력 등 신재생에너지와 ESS 활용이 크게 늘 것”이라며 “수백·수천대의 전기차로부터 전기를 공급받아 전력 수요공급을 효과적으로 관리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전기차 100만대면 원전 4기와 맞먹어

전력 역전송이 가능한 전기차용 V2G·V2H를 채택한 전기차가 100만대 운행된다면 연간 최대 원자력발전소 4기의 운영효과를 낼 전망이다. 실제 전기차 한 대당 역전송이 가능한 3㎾의 전기를 전송할 경우 100만대면 3000㎿h의 전기를 생산하는 효과가 있다. 이를 하루 24시간 365일로 계산하면 약 2만6000GW의 전기에너지를 얻을 수 있다. 하지만 모든 전기차가 1년 내내 전기를 방전할 수 없기 때문에 이들 차량의 1~2%만 적용하더라도 400만㎾의 발전 효과를 낼 수 있다. 이는 원전 4기의 전력생산규모다.

이 같은 효과에서 국가 전력망 송배전과 전력 판매 사업자인 한국전력공사가 전기자동차·충전 인프라 확산에 동참한다. 국가 전력난에 전기차 인프라를 전력 수요 기능으로 활용하면서 스마트그리드 기반의 청정·지속가능한 에너지 생산체계를 구축하겠다는 목표에서다.

박규호 한전 부사장은 “전기차 100만대 시대를 앞당길 수 있도록 충전 인프라 확대와 전용 전기요금 개선 등을 통해 전기차 수요를 유도하는데 힘쓰겠다”며 “전기차 시장 활성화는 곧 신재생에너지원 확산은 물론이고 국가 전력수요조절에도 크게 기여할 수 있는 움직이는 발전소다”고 말했다.

정부는 내년부터 2017년까지 산업통상자원부가 실시하는 ‘스마트그리드 확산사업’을 통해 완·급속충전기 1220기와 전기차 184대를 보급해 운영할 방침이다. 충전소를 포함한 전기차 집단 이용체계를 구축해 전력망 연계 공통 운영 시스템을 운영한다. V2G나 다양한 전기요금 체계를 도입해 전기차 시장 활성화를 촉진하면서 전기차 인프라 기반 전력수요관리 모델을 만들겠다는 전략이다.

전기차 전용 요금체계를 통해 경부하 시간대 충전을 유도할 수 있는 시간대별 요금 차등제를 실시할 방침이다. 집단 V2G 모델을 완성해 국가 전력수급 불균형을 해소할 수 있는 대응 체계도 마련한다는 계획이다. 단순히 전력판매를 통한 수익 창출보다 전력수요조절 기능에 무게를 둔 정책으로 해석된다.

박 부사장은 “전기차 100만대에 V2G 기술을 적용하면 원자력발전소 4기를 대체할 수 있는 전력수요조절 효과가 있으며 버려지는 심야전기나 신재생에너지원 활용을 유도하는 모델을 만들겠다”고 말했다.

◇일본, 전력수요공급 V2G·V2H로 맞춘다

일본은 이미 전기자동차와 충전인프라를 이용한 전력수요공급 안정화에 적극 나서고 있다. 후쿠시마 원전사태 등 다양한 형태의 전력난을 경험한 가운데 완성차와 중전기기 업체 중심으로 다양한 서비스 모델이 나오고 있다.

일본 니치콘은 업계 처음으로 전기차 배터리를 가정용 에너지저장장치(ESS)로 활용할 수 있는 전기차용 완속 충전기를 선보였다. 전기차에 저장된 전기에너지를 가정용 전기로 활용하는 V2H 기술을 채택한 상용 제품이다. 이는 6㎾h의 전기를 네 시간에 걸쳐 전기차 배터리(용량24㎾h)에 저장했다가 최대 3㎾h씩 방전하면서 가정용 전기로 사용할 수 있다. 가격은 약 400만원이며 ESS로도 분류돼 구입가의 50%를 정부 보조금으로 지원받는다. 이 제품은 지난해 일본 내 출시돼 현재까지 2000대 이상 판매됐다고 회사 측은 밝혔다.

도요타도 V2G 기술을 적용한 충전 솔루션을 개발 중이다. V2G는 V2H보다 한 단계 진보된 기술로 전기차의 전기를 집단으로 전력망에 전송해 국가 전력수급에 기여토록 설계됐다.

도요타는 프리우스PHV나 전기차의 저장된 전기를 주택으로 공급할 수 있는 V2H기술을 상용화했다. 도요타의 V2H는 저렴한 심야전기나 태양광으로 배터리를 충전했다가 재해와 같은 비상시에 차량에서 가정으로 전기를 공급할 수 있다. 이 PHEV는 비상 시 배터리의 에너지를 모두 소진해도 가솔린 엔진으로 이동할 수 있어 순수 전기차보다 더 효율적인 대안으로 꼽히고 있다.

도요타 측은 “가정에 공급하는 전력을 좀 더 안정적이고 장시간 공급할 수 있는 연구가 계속 진행되고 있다”며 “현재 수준에서도 도요타의 하이브리드와 플러그인 하이브리드는 비상 시 전력을 공급하는 매우 훌륭한 수단”이라고 말했다.

NEC와 미Tm비시 등은 ‘태양광발전+ESS+충전기’를 융합한 충전소 모델을 연내 출시할 계획이다. 순수 전기차는 물론이고 배터리를 에너지로 사용하는 연료전지 차량들이 비상사태가 발생했을 때 작은 주택을 기준으로 최소 1주일 동안 전력을 공급하는 작은 발전소 역할을 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반면에 국내 전기차 시장에 V2G·V2H 도입에는 풀어야 할 과제가 많다는 지적이다. V2G·V2H 도입을 위해서는 전기요금체계와 완벽한 기술개발이 아직 미진하다. 전기차 개인 이용자가 남은 전기를 판매하더라도 판매할 수 있는 요금체계가 없으며 전력당국의 수용공급에 실시간 대응할 수 있는 정보 등의 공유 체계 역시 마련이 시급하다.

여기에 별도의 서비스 사업자가 필요하지만 낮은 국내 전기요금 탓에 사업자는 나오지 않고 있다. 이와 함께 V2G·V2H를 이용한 충·방전 기술도 검증이 안 됐다. 같은 양의 전기를 충전하면 같은 양의 전기를 방전할 수 있는 이차전지 등의 기술적 검증이 안 됐다는 지적이다. 충·방전양이 다르면 사업자에 큰 혼돈을 제공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는 이유다.

이 때문에 융합을 통한 활용가치를 높이는 다양한 솔루션 사업모델도 지금부터 준비해야 한다는 게 업계 공통 의견이다.

황호철 시그넷 사장은 “미국과 일본에서는 ‘신재생+ESS+충전기’ 융합 모델부터 유통업과 연계한 충전 서비스 등 다양한 서비스 사업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며 “우리 강점인 ICT를 활용한다면 충전기나 배터리 등 하드웨어뿐만 아니라 각종 서비스 모델을 개발해 국내외 시장 선점에 발 빠른 행동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박태준기자 gaius@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