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금융이 본격화되면서 은행권에도 실력에 기반한 ‘진검승부’가 펼쳐지게 됐다.
유사 금융상품을 판매하고 확인이 쉬운 실적과 담보를 기반으로 대출하던 관행에 변화가 불가피하다. 은행도 기업이 보유하고 있는 기술력과 지식재산(IP)의 경쟁력을 잘 분석하고 판단하는 것이 핵심 경쟁력으로 부상하게 된 것이다.
그동안 국내 은행의 비즈니스는 대출이나 상품 판매에서 큰 차별화 포인트가 없었다. 점포 수를 늘리고 영업 인력을 확충하는 식의 위험부담이 낮은 제한적 경쟁만을 펼쳐왔다.
하지만 기술금융 시대에는 정확한 기술 분석이 요구된다. 작은 차이가 누적되다보면 은행 간 경쟁력 차이가 크게 벌어질 수밖에 없다. 기술을 잘 아는 은행이 차세대 금융의 주도권을 쥐게 된다는 의미다.
바꿔 말하면, 정확한 평가 없이 중소기업과 기술기반 대출만을 양적으로 늘려서는 위험에 직면할 수 있다는 뜻이 된다. 은행권에서는 벌써부터 “기술기반 대출이 부실해질 경우 누가 책임을 지느냐”는 볼멘소리가 나온다.
시중은행 한 고위 관계자는 “은행에 돈을 맡긴 고객은 증권 투자자와 달리 수익이 낮더라도 안정적 자금관리를 원하는 경향이 있다”며 “기술금융은 태생적으로 위험 부담이 큰 행위로 부실에 대한 우려가 있는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정부의 강력한 ‘기술금융’ 드라이브에 발맞춰 단순 수치적 기술금융 실적만 확보하려다 보면 대출 부실이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퇴출돼야 할 기업이 대출로 연명하면서 ‘좀비 기업’이 양산되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이런저런 기술로 포장한 ‘무늬만 유망기술 벤처’가 나타나는 것 역시 경계해야 할 대목이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정부가 우량 기술기업에 대한 보증과 대출 확대를 유도하지만, 이 과정에서 기술 상용화를 추진 중인 중소기업 자금 지원이 오히려 축소되는 문제가 나타난다”며 “우량기술 기업 대출 한도를 늘리면, 왜 영세기업 지원은 줄었느냐는 비판이 나오는 등 정부 정책이 오락가락하는 면이 있다”고 하소연했다.
최근 정부는 박근혜 대통령부터 최경환 경제부총리, 신제윤 금융위원장까지 모두 금융권의 ‘보신주의’를 지적하며 기술금융 확산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초기단계인 기술금융이 조기에 뿌리내리기 위해서는 은행권의 노력은 물론이고 금융당국의 중간점검과 실태조사, 정책보완도 수시로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이다.
김승규기자 seu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