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논단]산업 생태계 동행, 디자인경영의 가치사슬

[월요논단]산업 생태계 동행, 디자인경영의 가치사슬

독일은 미텔슈탄트(Mittelstand)로 불리는 중소기업의 강력한 경쟁력과 활약을 기반으로 세계 경제대국을 이룬 나라다. 2008년 시작된 세계 금융위기로 세계 각국이 경제적 어려움에 처해 있는 가운데서도 독일이 비교적 높은 성장세를 유지할 수 있었던 데에는 수많은 ‘히든 챔피언’의 역할이 컸다. 이름이 잘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각 분야에서 세계시장 점유율 상위를 차지하는 중소기업을 일컬어 히든 챔피언이라 한다. 결국 강한 경쟁력을 지닌 중소기업이 고용안정과 수출증대에 기여하고 국가 경제를 살린다는 말이다.

독일에서 중소기업이 든든히 뿌리내린 데에는 다양한 요소가 작용했다고 학계는 분석했다. 19세기부터 이어온 지방분권적 구조, 숙련된 고급기술 인력을 양성하는 마이스터제도, 인간중심의 경영 등이 그것이다. 이런 토대에서 독일 중소기업은 스스로를 대기업의 노예라고 보지 않는다. 높은 기술력과 자신감을 바탕으로 대기업이 진입하지 않는 틈새시장에 진출하고, 동등한 위치에서 거래를 이뤄간다. 이는 일본도 비슷하다. 일본 중소기업의 강점을 ‘모노쓰쿠리’라고 하는데 물건을 뜻하는 ‘모노’와 만들기를 뜻하는 ‘쓰쿠리’를 합쳐 만든 말이다. 고도의 제조 기술과 생산력으로 경쟁력을 확보해 대기업과 든든한 파트너십을 맺어 발전을 꾀한다.

최근 중소기업연구원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세계 경제 위기 때보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양극화가 심화된 것으로 나타났다. 산업생태계에서 기업가치와 수익이 어느 한쪽으로만 편중된 불균형 상태는 경제발전에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 다행히 국내 대기업들도 경제가 어려울수록 기업의 책임을 통감하고 있다며 동행과 동반성장의 의지를 나타내고 있다.

최근 출범한 ‘K-Design 대·중소기업 동행포럼’은 대·중소기업이 상호협력하고 소통하는 좋은 예가 될 것이다. 이는 경제위기 속에서 대·중소기업이 함께 나서 디자인기업과 공생할 수 있는 돌파구를 찾자는 취지로 시작됐다. 삼성전자, LG전자, 현대자동차 등 총 24개 대기업과 중소·중견기업을 비롯해 디자인 학계, 단체의 대표 또는 실무자가 모였다는 데 의미가 크다. 디자인계의 첫 상생협력기구로서 디자인권리 보호, 공정거래, 디자인 실명제, 지식나눔, 디자인성과 공유, 해외시장 공동개척 등 동반성장과 상생협력 과제를 발굴하고 추진할 예정이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그리고 디자인기업이 이루는 산업 생태계의 가치사슬이 소통과 신뢰의 파트너십을 바탕으로 선순환의 발전을 이루리라 기대한다.

앞서 독일과 일본의 예처럼 중소기업이 든든히 서기 위해서는 차별화된 경쟁력을 확보하는 일이 중요하다. 세계적 일류 기업들은 이미 소비자의 라이프스타일과 감성에 부합한 하이 콘셉트를 이끌어내는 수단으로서 디자인에 집중하고 있다. 하지만 이와 대조적으로 우리 중소기업은 디자인경영에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중소기업 경영자로서는 디자인에 투자할 여력이 부족하기도 하지만 의지가 있어도 어디서부터 디자인을 접목해야 할지 힘들어 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중소기업의 디자인경영 혁신을 위한 플랫폼 서비스가 시행된다. 하나의 창구를 통해 중소·중견기업에 필요한 디자인컨설팅을 통합적·단계적으로 제공하는 ‘K-Design 119 핫라인’이 그것이다. 전화와 인터넷 상담으로 문제와 필요를 파악·진단해 이에 따라 디자인 개발, 마케팅, 유통 등 디자인경영 단계별 지원을 펼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중소기업과 디자인기업을 연계해 함께 발전을 꾀하는 윈윈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국내에 많은 중소기업은 히든 챔피언으로 발전할 수 있는 기술적 역량을 이미 갖추고 있다. 이를 현실로 이루기 위해서는 ‘굿 디자인’이 곧 ‘굿 비즈니스’가 되는 디자인혁신이 필수다. 중소기업의 기술·품질과 창조적인 디자인이 융합한다면 한국의 히든 챔피언이 세계무대에서 활약할 날이 머지않았다고 믿는다.

이태용 한국디자인진흥원장 taeyong@kidp.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