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중은행들, `기술금융` 속도전 벌인다...기술 기반 금융서비스 `진검승부` 예고

은행권이 기술기반 특화상품 개발, 전문인력 보강 등 ‘기술금융’ 선점을 위한 속도전에 뛰어들었다. 그동안 유사한 상품을 내놓고 단순한 영업 경쟁만 벌였던 국내 은행업에 기술평가에 기반을 둔 ‘진정한 승부’가 예고된 것이다.

14일 금융권에 따르면 시중은행은 지식재산(IP) 기반 대출, 유망 기술보유 기업 우대 상품 출시, 사내 기술금융 조직 확대 등 기술금융 대응력 보강에 공을 들이고 있다. 아직 초기 단계인 ‘기술금융’을 선점해 차세대 선도 은행으로 도약하려는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

신한은행은 기술금융 종합지원 상품에 하반기 8800억원을 투입할 예정이다. KB국민은행은 IP금융에 특화된 전담조직을 신설하고 이공계 변리사, 석·박사급 전문인력 확보에 나섰다. IBK기업은행은 ‘기술금융 거점점포’와 ‘IP·기술금융상담센터’를 가동해 맞춤형 기술금융 상담서비스까지 제공한다. NH농협은행은 유망 중소기업을 우대한 전용상품을 출시하고 6000명 이상의 중소기업 여신심사 전문인력 양성에도 착수했다. 우리은행은 특허청, 생산기술연구원 등과 제휴해 기술 노하우를 보강하기로 했다. 하나금융지주는 자체 기술평가 모형을 구축하고 있다.

최근 은행권의 기술금융 강화에는 정부 의지가 크게 작용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물론이고 최경환 경제부총리, 신제윤 금융위원장까지 금융권 ‘보신주의’를 질타하며 기술금융 중심의 강력한 금융 혁신을 주문했다. 기술금융 우량 은행에 파격적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금융회사 평가에도 기술금융 성과를 반영하겠다며 은행권의 변화를 유도하고 있다.

은행권 고위 관계자는 “그동안 은행이 담보와 보증위주의 대출로 ‘저위험-저마진’ 형태의 유사한 사업만 해왔다면 기술금융 시대에는 기술평가와 대출·회수 능력에서 은행마다 큰 차이가 벌어질 수밖에 없다”며 “실력에 따라 실적이 엇갈리는 진짜 승부가 예고된 것”이라고 말했다.

기술금융이 활성화되면 벤처와 창업기업이 늘고 유망 기술기업이 사업자금을 확보하는 데 유리해지는 등 순기능이 많다. 은행도 기술평가 능력을 보강해 향후 글로벌 투자은행(IB)과의 직접 경쟁에 나설 기반도 닦을 수 있다.

반면에 일부에서는 은행권 부실 대출이 늘고 기술기업으로 포장해 성과 없이 연명하는 ‘좀비 기업’이 양산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정밀한 기술평가 없이 단순 수치상 기술금융 실적만 확보하려다 보면 부실 대출이 눈덩이처럼 커지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또 퇴출돼야 할 기업이 대출로 연명하거나 이런저런 기술로 포장해 평가만 통과하는 ‘무늬만 기술벤처’가 나타나는 것 역시 경계해야 할 대목이다.

전문가들은 기술금융 붐을 조기에 안착시키는 데 금융사의 기술금융 시스템 구축과 전문인력 보강 등을 최우선 과제로 꼽고 있다.

김명신 지식재산포럼 회장은 “각 금융기관이 자체적으로 기술의 가치 평가가 가능한 역량과 팀을 갖추지 않고 기술금융을 한다는 것은 탁상공론에 불과하다”며 “금융권에도 상경계 이외에 문화콘텐츠, 공학기술, 지식재산 등 다양한 분야의 인력 확보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김승규기자 seu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