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윤 작가의 아틸라, The 신라 제37회

하지윤 작가의 아틸라, The 신라 제37회

5.암살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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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목이 꺾이며 고꾸라진 형제의 비극을 목도한 남은 오형제들은 어린아이처럼 소리 내어 울었다. 뛰어난 무예의 선도의 아이들이라고 하지만 아직 한 젊음을 늙히지 못한 갓 어린 전사들이었다. 태어나고 자란 신라를 떠나 오로지 미사흔의 넓은 꿈을 함께 좇아 전혀 미지의 땅을 한결같이 승리의 깃발처럼 펄럭이던 오형제였다. 하나의 죽음은 곧 모두의 죽음을 의미하기도 한 오형제였다.

“우리는 어려부터 선도에 뽑혀 들어와 무예를 익혔습니다. 혈육보다 더 많은 시간을 함께 했습니다. 우리는 서로 피의 맹세를 나누었습니다. 삶과 죽음을 함께 하자고 도모했습니다. 형제 하나가 죽었으니 남은 우리들은 피의 맹세를 지킬 것입니다. 그러나 아직 아닙니다.”

미사흔은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았다. 바로 피의 복수였다.

“왕자님...”

에첼이 한 줌 모래가 되며 사막의 모래로 쓰러졌다. 그러나 다가가서 안아줄 수 없었다. 미사흔을 묶은 끈의 방향은 단단했고 잔인했다. 누군가 움직이면 또 누군가의 살을 파고들 방향의 끈이었다. 에첼의 아랫도리에서 핏덩어리들이 꿀럭꿀럭 쏟아져 나왔다.

“에첼, 에첼, 제발, 에첼.”

미사흔의 입에서도 핏덩어리가 쏟아지는 듯 했다.

“복호. 내 도망가지 않을 터이니 제발 풀어주게. 이 허황한 사막에서 도망갈 곳 또한 없지 않은가?”

남은 오형제들은 핏덩어리 울음은 멈추었지만 에첼에 대한 걱정은 어수선했다. 필사적인 도피처를 찾고 있는 복호의 웃음은 차라리 가여웠다.

“잘되었다. 저 년이 우리들 중 누군가의 아이를 스스로 죽였구나. 하하하. 미사흔, 너의 아이를 확인할 길이 없으니 죽인 것이다. 하하하.”

미사흔은 문득 놀랐다. 미처 에첼의 당혹스런 한 때의 운명을 잊고 있었다.

“아니, 그럼?...에첼이 스스로 이런 짓을 했단 말인가? 에첼, 에첼...”

“아틸라 왕자님이 미사흔 왕자님의 아들을 낳으라 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 약속을 지키지 못했습니다.”

에첼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강건했다.

“누구의 아들도 아닌 아들을 낳을 순 없었습니다.”

에첼은 오히려 미사흔을 향해 희미하게 웃었다. 미사흔은 복호를 향해 부르짖었다.

“내 손목을 잘라라. 내 손목에 묶인 황금검의 운명을 너에게 주겠다. 제발 풀어주게. 너의 오로지 목적은 황금검이 아니냐?”

“안됩니다. 왕자님.”

에첼은 소리를 짜내듯이 외쳤다.

“왕자님. 왕자님.”

남은 오형제들도 놀라긴 마찬가지였다. 황금검은 그들 모두의 꿈이 아니라, 그들 모두의 목표가 아니라, 그들 모두가 그 과정을 향해 가는 모든 가치였다.

“미사흔, 너는 위대한 제국을 건설하지 못할 것이다. 내가 그렇게 만들지 않을 것이다. 나는 네가 만나고자 하는 아틸라를 알 바 없다. 알고 싶지 않다.”

복호는 미사흔에게 다가왔다. 그의 표정은 지나친 탐욕으로 울퉁불퉁했다.

“오직 나의 나라를 세울 것이다.”

복호는 순식간에 미사흔의 손목을 내리쳤다. 아무도 비명을 내지를 시간도 없었다. 미사흔의 손목에서 피가 솟구쳤다. 복호는 황금검이 묶인 미사흔의 손목을 가로챘다.

“나는 고구려로 가지 않는다. 고구려인들이 나를 도왔지만 고구려로 가지 않는다.”

에첼은 낮게 읊조렸다. 흥분은 없었다.

“황금검은 스스로 주인을 선택합니다. 복호가 가져간다 해도 그자는 제왕이 되지 못합니다. 하지만 아틸라 제왕님께 황금검이 늦게 도착하면 할수록 위대한 제국의 꿈이 늦어지거나...”

에첼은 말을 끊었다. 그녀 또한 시작도 못할 불길의 역사를 떠올리고 싶지 않았다.

“너의 아틸라는 위대한 제국을 건설하지 못할 것이다. 황금검은 그자에게 가지 못한다. 자, 여자를 버리고 간다. 가자.”

복호의 내면은 이미 가파르게 악마가 되어가고 있었다.

바길라스는 아틸라의 최측근들인 에데코와 콘스탄티우스, 오에스테스가 비밀스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작은 방으로 들어섰다. 방은 창이 하나도 없는 감옥과도 같았다. 아마 쥐새끼들조차도 역사를 거꾸로 되돌리려는 밀담을 갉아먹을 수 없을 정도로 빛조차 없었다. 서로 긴장하는 눈치로 바길라스를 쳐다보았다. 바길라스는 특유의 큰 눈으로 배고픈 쥐새끼가 되어 가까이 다가갔다. 그러나 웃는 얼굴과 전혀 달리 그의 말투는 벌써 자신의 무덤을 만든 자의 서늘한 귀기가 서려있었다.

“차질이 있어선 안 됩니다. 우리의 목은 물론이고 우리의 가족들까지 가장 잔인한 방법으로 처형될 것입니다. 자, 준비 되셨습니까?”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에데코도 콘스탄티우스도 오에스테스도 섣불리 대답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 눈빛들은 지나치게 뾰족해서 상대의 심장을 찌를만 했다. 바길라스는 큰 눈을 우둔하게 껌뻑거렸다.

“흠,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이 암살은. 그 누구도 지금 와서 포기할 수 없습니다. 포기하는 누군가는 모든 암살 계획을 혼자 뒤집어쓰고 죽게 될 것입니다. 지금은 힘을 모을 때입니다.”

바길라스의 어줍잖은 협박에 에데코가 입을 열었다.

“황금은?”

“당신들 집으로 슬며시 가져다 놓았습니다. 그 정도의 황금이면 황금지붕을 얹고 평생을 살만한 부귀영화를 누릴 것입니다. 자아, 콘스탄티우스, 오에스테스, 에데코 어떻습니까? 필요한 인원들에게 황금을 나누어 주었겠지요?”

에데코는 짐짓 머뭇거렸다. 그의 불안해하는 모습에 바길라스가 그의 멱살을 잡았다.

“내가 황금을 좋아하는 이유를 말해줄까? 아름답거든? 여인보다 아름답지. 난 늘 꿈을 꾸곤 하지. 황금으로 만든 집에서 내가 잠을 깨는 꿈을 말이야. 난 아틸라를 배신하는 게 아니야. 물론 당신도. 아틸라의 위대한 제국을 배신하는 것일 뿐이야. 위대한 제국은 아틸라의 것이지 나의 것은 아니거든. 역사는 아틸라를 기억할 뿐, 우리 같은 주변인들은 잊어버리고 말지. 자, 이제 당신도 당신의 왕국으로 돌아가 다시 왕이 되라고. 당신의 왕국 백성들은 당신의 이름은 기억할 게 분명하잖아? 아틸라의 개로 살지 말고.”

에데코는 바길라스를 응시했지만 아직도 허약한 눈빛이었다.

“난 내 아들이 걱정이오. 내 아들은 어려서부터 로마를 멸망시키겠다는 꿈을 갖고 이 아버지를 따라 아틸라 진영에서 자랐소. 내 아들이 살기를 원하지 않소, 그의 꿈을 이루기 바랄뿐이오.”

“하하. 암살을 성공시키면 되겠군. 암살은 이미 시작되었다.”

바길라스의 탐욕은 이미 모두의 역사에게 선전포고를 하고 있었다.

글 소설가 하지윤 lif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