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암살의 시작
7
당시 신라 왕실은 민속종교를 추앙하고 있었다. 그것은 투후 김일제(金日磾)의 후손들이 지내는 금인상(金人像)에 대한 제사였다. 왕 눌지는 그래서 불교를 절대 용납할 수 없었다.
박씨(朴氏)와 석씨(昔氏) 일파는 불교를 모시려고 분주했다. 저 먼 북쪽의 땅에서 내려왔다는 석씨 일파는 철(鐵)의 산지를 틀고 앉아 있었고 박씨 일파는 석씨 일파를 후원하고 있었다. 불교를 중심으로 김씨 일가의 집권을 막으려 안간힘을 하고 있었다.
“금인상에 대한 제사는 김씨 순혈만이 지내는 제사요. 백성들은 알지도 못하고 있소. 오랑캐들의 습성이오. 비록 탈해 이사금 이후 몰락의 길을 걷고 있지만 이대로 스러질 수는 없소. 우리에겐 철이 있소.”
석(昔)아전은 지금의 석씨 집안이 가건물(假建物) 뿐이라는 걸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박(朴)문장은 혀를 휘리릭 말아마셨다.
“오랑캐 흉노의 씨가 어느새 우리를 파고들었으니 한심하오. 우리가 불교를 백성에게 전파해 불교를 중심으로 뭉쳐야하오.”
“복호는 어떻게 되었소?”
석아전은 갑작스레 궁금했다.
“복호는 아직 소식이 없소, 하지만,”
“하지만 이라니요? 무슨 소식 있는 겁니까?”
“왕 눌지가 복호 제거를 위해 암살자를 보냈다고 하오.”
석아전은 박문장의 대답에 안절부절했다.
“왕 눌지는 처음에 미사흔을 죽이려 복호를 보냈소. 그런데 지금은 복호를 죽이려 또다른 암살자를 보내다니, 도대체 그의 마음이 무엇이오?”
박문장도 답답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왕 눌지는 황금검에는 관심이 없소. 오로지 우리의 철(鐵)에만 관심이 있습니다. 황금으로는 무기를 만들 수 없지만 철은 무기를 만들 수 있습니다. 미사흔 왕자가 우리와 격의 없이 어울리는 것을 보았는데, 서역의 제왕에게 황금검을 받았다고 하니 두려웠던 겁니다. 서역의 제왕과 함께 신라로 돌아올까 봐 무서운 겁니다. 미사흔이 제왕이 될 것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석아전은 한숨과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에겐 치술이 있소. 그녀 또한 복수를 꿈꾸고 있는 여자요. 그런데 복호를 살릴 방법이 없소?”
석아전은 여전히 그들의 꿈이 실종될까봐 걱정으로 흔들렸다.
“복호는 죽지 않소. 복호 떠날 때부터 복호 뒤에 사람을 보냈소. 죽지는 않을 거요. 다만 그가 황금검을 가져와야 한단 것이오. 왕 눌지는 필요없다지만 우리에겐 반드시 필요하오. 그 황금검만이 우리 박씨와 석씨 일가를 제왕으로 만들어줄 전설을 창조해 줄 것입니다. 석씨(昔氏) 일가는 서역에서 온 사람들이오. 묵호자도 서역의 승려로 불교를 갖고 왔고. 황금검도 서역에서 왔소. 신라는 황금의 땅입니다. 그 황금은 바로...”
“철입니다.”
석아전이 박문자의 말을 너끈히 받았다.
“복호가 고구려로 돌아갈 경우는 없겠소?”
그는 고개를 강하게 흔들었다.
“절대 없소. 하지만 그의 고구려 배경은 매우 중요하오. 박씨와 석씨 일가의 마립간 선출을 인정해 줄 것이오. 우리는 고구려라는 나라를 친구를 얻게 될 것이오.”
막시마누스는 아틸라 앞에 무릎을 굻었다. 노회한 외교관 막시마누스는 이것은 대(大) 로마제국의 수치일 수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에게는 계산된 치밀한 욕심이 있었다. 아틸라는 막시마누스를 내려다보았다. 막시마누스는 무거운 바위가 자신을 짓누른다고 느꼈다. 땀을 삐질삐질 흘렀다.
“누군가?”
“막시마누스입니다.”
막시마누스는 이렇게 떨어본 적이 없었다.
“들어 보았다. 현명한 그대, 나에게 가져온 선물은 무엇인가?”
아틸라의 눈빛을 끈질기게 응시하며 막시마누스는 일어났다.
“아틸라 제왕님 앉으시죠.”
막시마누스는 최고의 존경을 담아 아틸라에게 앉기를 청했다.
아틸라는 자신의 셋째 아들 에르낙과 함께 자리에 앉았다. 아틸라는 에르낙을 꼭 껴안고 있다시피 했다. 가끔 에르낙을 향해 다정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무척 아끼고 있다는 것을 누구나 알아차릴 정도였다. 막시마누스가 자신을 따라온 동로마 수행원들에게 작은 손짓을 했다. 그러자 장정 이십 여명이 무거운 궤짝 십여 짝을 들고 왔다. 궤짝은 튼튼한 삼나무에 가죽을 덧씌운 것으로 붉은 보석 가넷이 석류석이 크게 반짝이고 있었다. 막시마누스가 직접 궤짝을 열었다. 궤짝을 열자 눈을 뜨지 못할 정도의 황금 광채가 꿈틀거리며 튀어나왔다. 모두 웅성거리며 궤짝으로 몰려들었다.
“황금이다. 황금이야.”
“황금이야.”
연회는 순식간에 소란스러워졌다. 어떤 일탈도 가능해진 것이다. 사람들은 뒤죽박죽 되었고 극도로 억눌린 살기(殺氣)가 황금의 아수라 속을 기어다니고 있었다. 아틸라는 아들 에르낙과 함께 일어났다. 황금을 볼 생각은 하지 않았다. 황금을 향해 말을 아끼지 않고 떠들며 몸을 부르르 떠는 군중들의 자멸적 정서를 보고 있었다. 그때였다. 오에스테스가 아틸라 뒤에 바짝 섰다. 그는 무기를 단단히 쥐고 있었다. 에데코도 마찬가지였다. 콘스탄티우스도 마찬가지였다. 막시마누스는 때가 왔음을 직감했다.
“아틸라는 이승과 저승 사이에 서있다. 이제 이승과 저승 사이에 칼을 넣어야 한다.”
오에스테스, 에데코, 콘스탄티우스, 그들은 아틸라 뒤에서 무기를 높이 들었다. 겨냥했다. 막시마누스는 숨쉬기조차 힘들었다. 아틸라 주변으로 훈의 전사들이 살금살금 모여들었다. 궤짝을 들고 왔던 장정들은 우뚝 일어섰다. 칼을 들었다. 막시마누스는 껄껄 웃었다. 지나치게 이른 웃음이었다. 그는 아틸라를 똑바로 보고 있었다. 아틸라도 그를 보고 있었다. 이제 서로의 거리는 결코 메워지지 않을 것이다. 억눌렸던 살기가 힘을 얻어가고 있었다. 공기가 서늘해졌다. 아틸라는 전혀 꼼짝도 하지 않았다. 막시마누스는 세 사람에게 손짓을 했다. 순간 여기저기서 짐승의 비명소리가 터졌다. 호탕함도 장쾌함도 없는 비명이었다.
글 소설가 하지윤 lif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