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 암살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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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식간의 일이었다. 잠시 후, 연회에 참석한 군중들의 비명소리가 터졌다. 동강난 시체들이 뒹굴었다. 수십 개의 팔다리가 굴렀다. 수십 개의 모가지가 날아다녔다. 그러나 아틸라가 아니었다. 훈의 전사들이 아니었다. 동로마 수행원들이었다. 막시마누스는 믿을 수 없었다. 다리가 후들거렸다. 서있기 힘들었다. 대부분의 인생을 외교관으로 살아온 그는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치욕적인 상황을 수용하기 어려웠다. 이런 단순한 굴욕과 배신은 생각도 못한 것이었다.
“내 동로마의 음모를 이미 알고 있었다.”
아틸라의 차분한 말 한 마디에 막시마누스는 저절로 무릎이 꿇어졌다.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이제 남은 건 죽음 뿐이었다. 눈을 감았다.
“너를 당장은 살려주겠다. 너의 동로마 왕에게 내 말을 전해야 하니까.”
막시마누스는 눈을 번쩍 떴다. 살 기회가 온 것이다.
“아틸라가 직접 간다고 전해라.”
막시마누스는 부리나케 달려나갔다. 바길라스도 함께 달려나갔다. 그들이 달려가는 그곳, 동로마 역시 그들에게 사지(死地)일 것이다. 막시마누스와 바길라스는 사지에서 사지로 달려갔다.
콘스탄티우스, 에데코, 오에스테스는 아틸라 앞에 무릎을 굻었다.
“저희들은 죽이십시오.”
아틸라는 그들을 보지 않고 말했다. 느릿한 말투였다. 전혀 동요하지 않고 있는 아틸라는 그 어떤 대안도 없는 제왕, 그 자체였다.
“결국은 나를 살렸다. 스스로 깨우쳐 내게 일러주었으니, 이번 일은 용서하겠다. 하지만,...”
세 사람은 고개를 들었다. 아틸라는 이미 없었다.
“하지만...”
에데코는 되뇌었다. 오에스테스도 되뇌었다. 콘스탄티우스도 되뇌었다.
미사흔은 에첼의 몸을 자신에게 단단히 묶었다. 그가 황금검이 묶인 자신의 손목을 복호에게 주고 얻어낸 결과였다. 남은 오형제는 낯빛이 어두웠다. 하지만 희망을 버리고 싶지 않은 어둠이었다.
“가야 한다. 가야 한다. 아틸라에게.”
에첼은 미사흔에게 등을 기댄 채 힘없이 중얼거렸다.
“왕자님, 잊지 마십시오. 저들은 황금검의 가치를 모릅니다. 황금검은 아무에게나 가지 않습니다. 만약 아무에게나 간다면 그저 녹슨 검이 될 것입니다.”
미사흔은 잠시 말이 없었다.
“복호를 죽여야겠다. 내 여기까지 와서 그만둘 수 없다. 에첼까지 버려가며 그만둘 수 없다. 오형제의 한 아이를 잃어가며 그만둘 수 없다.”
에첼은 미사흔의 허리를 힘있게 안았다. 미사흔은 남은 오형제를 작은 소리로 불렀다. 미사흔은 앞서 가고 있는 복호를 처치하라는 눈짓을 주었다. 오형제는 알았다고 고개를 끄덕였지만, 당장 쉬운 것이 아니었다.
"나는 무엇을 찾아 헤메는가?
너는 무엇을 찾아 헤메는가?“
미사흔이 작게 노래를 읊조렸다. 뒤이어 에첼이 나즈막히 노래를 불렀다.
“기련산(祁蓮山)을 두고가니 가축을 기를 수가 없네요
연지산(燕支山)을 두고 가니 여인들은 아름다움을 잃었네요
다시 돌아오지 못하나요?
우리는 어디로 가는 걸까요?“
순간 갑자기 어두워졌다. 매우 이른 어둠이었다. 모두 말을 멈추었다. 멈추고 사방을 둘러보았지만 생명을 가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휘리릭, 이른 어둠의 가장자리를 돌아 위험한 화살이 닥치고 있었다. 처음엔 누구를 향한 화살인지 몰랐다. 화살은 점차 복호와 복호 일당을 향해 닥치고 있었다. 복호는 말에서 내려 몸부터 피했다. 복호는 말을 방패로 앞세우고 있었다. 출처가 불분명한 위험한 화살은 과녁이 된 말을 집중적으로 때리고 있었다. 말은 소리 한 번 내지 못하고 그 큰 몸땡이가 부르르 떨고만 있었다. 말의 콧댕이에서 콧김이 킁킁 거렸다. 말의 몸땡이가 찢어지며 피가 사방으로 터졌다.
“화살의 주인들을 찾아.”
복호가 소리쳤다. 복호 일당들은 무질서하게 흩어졌다. 몰래 숨은 살기(殺器)가 어디서 오는지 알아야했다. 갑자기 잿빛 사막 모래바람이 낮게 낮게 땅을 휘감아 오고 있었다. 이제 앞을 보기도 힘들었다. 그 사이 남은 오형제들은 자신들을 묶은 끈을 완전히 풀어버렸다. 그리고 미사흔과 에첼을 묶은 끈도 풀었다.
“도망갈 생각하지 마라. 내 화살이 너희를 향하고 있다.”
복호는 으름장을 했지만 그의 음성은 이미 적에게 목을 내준 사람처럼 불안했다. 아무렇게나 흩어진 복호 일당도 돌아오지 않았다. 복호는 본능적으로 자신의 적을 알아차렸다.
“눌지...”
복호는 배짱은 있었다. 잿빛 사막 모래바람 속으로 터벅터벅 걸어 들어갔다. 잠시 후, 복호가 악몽처럼 외쳤다.
“아니, 너는?”
복호의 소리가 모래바람과 섞여 까끌거렸다. 그리고 복호는 돌아오지 않았다. 미사흔은 아직 웃을 수 없었다.
테오도시우스 황제는 웃을 수 없었다. 막시마누스 옆에 있는 크라스피우스와 바길라스는 킁킁 울었다. 황제는 말이 없었다.
“제발 살려주십시오.”
그때 친위병이 테오도시우스 황제에게 큰 소리로 알렸다.
“아틸라가 보낸 칙사입니다. 서신을 보냈습니다.”
막시마누스, 크리사피우스, 바길라스는 놀란 나머지 쿵 주저앉아 버렸다.
글 소설가 하지윤 lif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