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32주년 특집1-새로운 융합, 협업] 공간 파괴

기업의 성공 키워드를 꼽으라면 단연 ‘소통’과 ‘협업’이다. 구성원이 참신한 아이디어를 도출하고 공유하며 실제 사업으로 발전시키려 함께 일하는 과정은 기업 성장의 핵심이다. 이 때문에 대기업부터 스타트업에 이르기까지 잘 소통하고 매끄럽게 함께 일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한다.

[창간 32주년 특집1-새로운 융합, 협업] 공간 파괴

조직 규모가 커질수록 소통과 협업 고민은 깊어진다. 수시로 조직 체계를 바꿔가며 효율적인 방법을 찾기도 하고 직급과 서열을 파괴하는 조직 문화 정립을 시도하기도 한다. 사내 직급을 부르는 대신 ‘님’ ‘매니저’ 등으로 대체하는 것은 대표이사부터 막내 사원까지 수평적 분위기를 만들고 자유롭게 이야기해 소통과 협업을 원활히 하는 방안 중 하나다.

최근 기업은 일하는 문화를 바꾸고자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 사무실에 출근해 정해진 자리에서 일하는 고정 관념을 깨는 것이 대표적이다. 부서와 업무에 상관없이 직원끼리 자연스럽게 교류할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하기 위한 전략이다. 외부 전문가와 소통하고 서로 도움을 주고받고 싶어하는 1인 창작자를 위한 공동 사무 공간 ‘코워킹 스페이스’도 인기다.

◇오늘은 전략 담당자, 내일은 마케팅 전문가와 수다

고정 좌석과 칸막이를 없애는 시도가 세계적인 대기업을 중심으로 확산되고 있다. 이동 중에도 언제 어디서든 서류를 결재하고 전화를 받는 등 업무를 처리할 수 있는 모바일 시스템을 접목하는 사례는 2000년대 후반부터 시작됐다.

최근에는 잘 갖춰진 모바일 업무 환경에 바탕을 두고 조직 간 경계와 직급 장벽을 무너뜨려 더욱 활발히 아이디어를 만들고 실행하기 위한 시도를 하고 있다.

한국마이크로소프트는 광화문으로 사무실을 이전한 뒤 고정 책상을 없앴다. 사무공간과 휴식 공간을 나눠 배치하는 일반적인 사무실과 달리 업무와 휴식의 경계도 깼다. 감각적 디자인의 가구와 공간 배치로 회사 전체를 디자인해 어디든 앉아보고 사용해보고 싶은 색다른 욕구를 불러 일으킨다.

고정된 사무실 책상과 전화기를 없애니 업무 모습이 확연히 변했다. 창가 앞에 노트북을 펼쳐놓고 일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 뒤에서는 직원끼리 둘러앉아 이야기를 나눈다. 바로 옆에서는 포켓볼을 치기도 한다. 오늘은 영업팀 직원과 나란히 앉아 일하고 내일은 옆 팀 임원과 일하며 이야기를 나누는 분위기가 자연스럽게 형성된다.

회사는 칸막이를 없애고 책상 수를 기존의 70% 수준으로 줄이는 대신 목적별로 특화된 업무 공간을 배치했다. 관리, 외근·현장 근무, 상품·서비스 제공, 기획 등 업무 형태에 맞는 공간을 구비했다. 조용하게 일하고 싶은 사람은 개별 오피스를 사용하면 된다. 중요한 영상회의나 집중적으로 통화 업무가 많은 날은 별도 폰 부스를 이용하면 된다.

김 제임스 한국마이크로소프트 사장은 “신사옥은 마이크로소프트의 자유로운 문화, 혁신적인 공간, 디바이스와 서비스가 한데 어우러진 신개념 업무 환경”이라며 “직원의 협업과 창의성을 극대화할 수 있는 이런 근무 환경이 국내 기업에 도입된다면 사업 경쟁력을 높이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세계적 소프트웨어 기업 SAP도 일찌감치 고정석을 없앴다. SAP코리아는 지난해 10월 일반 직원과 임원은 물론이고 대표이사 방까지 없앴다. 출근해서 마음에 드는 빈자리를 찾아 일하기는 신입사원이나 대표이사나 마찬가지다.

구글, 애플 등 세계적 IT 기업은 완공을 앞둔 신사옥에서 자연스러운 소통을 노리고 있다. 역할을 막론하고 직원들이 자연스럽게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그 과정에서 새로운 아이디어를 발견할 수 있는 혁신적인 콘셉트를 적용했다. 가장 자연스럽게 마주치되 업무 성과로 이어질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 고민한 결과다.

구글은 신사옥의 핵심을 직원 간 대화를 최대한 많이 이끌어낼 수 있는 디자인으로 삼았다. 내년까지 공사를 마무리할 예정인데 직원끼리 자주 만나서 편하게 일할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겠다는 목표다. 연면적 약 10만m²(3만평)에 달하는 아홉 개 사각형 건물을 짓고 있다.

구글은 직원의 동선을 철저히 계산하고자 데이터를 분석하고 이를 공사에 반영했다. 구글에 따르면 신사옥 내 직원들이 2분30초만 걸으면 서로 만날 수 있게 설계했다. 걸음 속도와 가시성 등을 고려해 자주 만나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

애플도 우주선 모양의 신사옥을 2016년까지 완공할 예정이다. 연면적 23만1400여㎡(7만평) 규모다. 페이스북은 미식축구 경기장 여덟 개를 하나의 지붕으로 합친 규모와 맞먹는 3만8600여㎡(1만1700평) 부지에 신사옥을 짓고 있다. 사무실과 회의실의 틀을 깨고자 벽으로 공간을 분리하지 않고 개방된 공간에 수백 개 책상을 배치한다. 모두 직원의 소통과 협업에 방점을 둔 디자인을 채택했다.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CEO는 “새 건물은 거대한 하나의 방 구조로 세계에서 가장 큰 개방된 층을 형성할 것”이라며 “수천명의 엔지니어가 하나의 큰 공간에서 협업할 수 있는 완벽한 공간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혼자여도 함께 일한다

스타트업이나 1인 창작자가 외부 사람들과 사무공간을 공유하는 ‘코워킹 스페이스’도 늘고 있다. 비용 절감이 첫 번째 목적이지만 다양한 분야의 사람과 만나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나누면서 새로운 아이디어를 찾는 정보 공유 효과가 쏠쏠해 새로운 업무 공간으로 부상했다.

모르는 사람끼리 함께 사용하지만 파티션이나 독립 공간을 제공하지 않는 개방형이어서 자유롭게 인적 네트워크를 형성할 수 있는 것도 강점이다. 전문가를 섭외해 함께 강의를 듣거나 공부할 수도 있어 새로운 형태의 협업과 소통 모델로 꼽힌다. 일종의 ‘공유 경제’다.

뉴욕 프리랜서들이 자신의 아파트를 주말에 개방해 친구를 초대하고 함께 일하는 형태에서 시작했다. 좁은 공간을 함께 사용하되 각자 일을 하면서 서로의 지식을 공유할 수 있다.

국내에도 다양한 형태의 코워킹 스페이스가 있다. 모든 시설을 무료로 개방한 ‘디캠프’가 대표적이다. 이 외에 ‘남산창작센터’ ‘서교예술실험센터’ 등 1인 창작자를 위한 공간과 콘텐츠 분야의 개인 사업자를 위한 ‘스페이스 노아’ 같은 장소도 지난해부터 부상했다.

스마트폰 시장이 커지고 자연스럽게 애플리케이션 분야의 스타트업 창업 사례가 늘면서 이들을 지원하기 위한 코워킹 스페이스도 많아졌다. 현재 10여곳의 코워킹 스페이스가 서울과 수도권에 있다. 디캠프, 마루180, 드림엔터, 본투글로벌 등이 있다. 디캠프처럼 전면 무료로 개방하되 등록 사용자를 중심으로 운영하는 코워킹 스페이스가 있는 반면에 비용을 지불하는 임대시설이 혼재한 곳도 있다.

국내 코워킹 스페이스에서는 별도 네트워킹 프로그램, 이용자를 위한 전문 서비스 등을 다양하게 지원한다. 특히 디캠프는 한 명으로 시작해 팀을 구성하고 법인으로 성장하기까지 과정을 도우며 실제 창업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고안했다. 한국 진출을 원하는 해외 기업을 유치해 창업가들이 자연스럽게 해외 네트워크를 확보할 수 있는 구조도 갖췄다.

이나리 디캠프 센터장은 “단순히 공간을 개방하는 것이 코워킹 스페이스가 아니다”라며 “공간을 공유하는 사람끼리 네트워크를 맺고 특유의 에너지를 형성하면서 상호 시너지를 내고 발전할 수 있는 문화를 만들어가는 것이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배옥진기자 withok@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