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스마트폰 누적 보급 대수가 20억개가 넘는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우리나라만 해도 스마트폰 보급 대수가 3500만대를 넘어섰다. 말도 제대로 못하는 어린아이나 연세가 많으신 노인 일부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스마트폰을 가졌다고 봐야 한다. 스마트폰 보급 확대는 이차전지 시장의 성장을 이끌었다. 여기에 전기차와 에너지저장장치(ESS)가 불을 붙였다. 판매 대수는 얼마 되지 않지만 용량이 수천 배는 크기 때문이다. 이차전지 시장의 중심축이 전기차를 필두로 한 중대형 배터리로 옮겨가는 모양새다.
올해 이차전지 세계시장 규모만 17조원이다. 10년 뒤에는 100조원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업계는 내다보고 있다. 시장은 크지만 실제 주도권은 한중일 세 나라가 쥐고 있다. 시장을 주도한 일본과 모바일 강국답게 선두를 뺏은 한국, 막강한 내수 시장을 바탕으로 뒤쫓는 중국이 치열한 물러설 수 없는 전쟁을 치르고 있는 것이다.
◇배터리 삼국지, 선두는 한국
글로벌 배터리 시장에서 국산 제품이 독주 중이다. 2011년 처음으로 일본을 따라잡은 이후 4년째 소형 리튬 이온전지 세계시장 점유율 1위를 달리고 있다. 일본 시장조사업체 B3 보고서에 따르면 국산 소형 이차전지 시장 점유율은 지난해 42.9%에서 올해 약 2% 증가한 44.4%로 전망됐다. 일본은 2008년 51.1%로 절대 강자였지만 갈수록 하락해 지난해 27%를 기록했다. 올해는 25.7%로 1.3%포인트 감소할 전망이다. 중국 역시 0.3%포인트 떨어진 24.3%로 예상됐다. 이는 국산 소형 이차전지가 스마트폰 외에 전동공구, 휴대형 배터리 등 신규 시장 공략을 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삼성SDI는 2010년 산요를 제치고 4년 연속 세계 1위 자리를 고수했다. 지난해 시장 점유율은 25.8%로 전년(25%) 대비 0.3%포인트 늘었다. 2위인 파나소닉(16.6%)과 격차도 벌어졌다. 3위는 LG화학으로 호시탐탐 2위 자리를 넘보고 있다. LG화학의 지난해 시장점유율은 0.3%p 뒤진 16.3%를 기록했다.
2위인 파나소닉 전망은 좋지 않다. 미국 테슬라모터스에 전기차용 배터리 공급계약을 맺었지만 기존 텃밭인 스마트폰·노트북 등 IT 분야 시장을 뺏겼다. 1990년 세계 최초로 전지 시장 문을 열었던 소니 역시 추가 투자 여력이 부족해 PC용 배터리 사업 비중을 줄이고 있다. 소형 배터리에 이어 전기자동차·ESS로 분류되는 중대형 이차전지 시장에도 국산 제품이 올해 처음으로 선두에 올라설 전망이다.
B3에 따르면 한국이 올해 전기차용 이차전지 시장에서 점유율 49.5%를 기록하며 48.9%로 예상되는 일본을 제칠 것으로 예상했다. 지난해 국산 배터리 점유율은 41.3%로 1년 만에 8%P 넘게 끌어올린 것이다.
이는 국내 기업이 일본 업체에 비해 다양한 모델의 전기차에 배터리를 공급하기 때문으로 분석됐다. LG화학과 삼성SDI가 공급하는 전기차 모델만 GM·르노·현대기아차·BMW·마힌드라 등 50개가 넘는다. 일본과 중국 업체 공급권을 전부 합쳐도 절반에도 못 미친다. 여기에 ESS용 배터리 시장도 가세하면서 국산 제품 점유율 확대에 기여하고 있다. 최근 한국전력이 500㎿급 ESS 보급사업을 발표한 데 따른 것이다. 생산 경쟁력과 기술 대응력이 뛰어난 국산 제품이 유리하다는 평가다.
◇일본, 자존심 회복 나선다
판세를 다시 뒤집으려는 일본의 도전이 거세다. 파나소닉이 전기차 업체 테슬라에 배터리 공급을 늘리는 데다 소니도 한때 매각을 검토했던 이차전지 사업을 핵심 사업으로 육성하기로 했다.
일본 NEC도 전기자동차 분야에 이어 ESS용 배터리 사업을 강화한다. 중국 완샹그룹의 A123 ESS사업 부문을 인수한 것이다. NEC는 에너지저장기술, 애플리케이션 모델링 등이 속한 에너지솔루션 사업 부문을 인수하고 ‘NEC 에너지 솔루션’이라는 별도 법인을 설립키로 했다. ESS 솔루션이 확보된 만큼 신뢰성·지속성 등을 개선해 가정용과 산업용뿐만 아니라 메가와트(㎿) 단위의 대규모 ESS사업에도 적극 나선다는 방침이다.
NEC의 A123 인수로 글로벌 중대형 배터리 시장에서 LG화학과 선두 다툼이 치열해질 것으로 보인다. NEC는 A123의 ESS사업 부문 인수로 전기차용 배터리에 이어 ESS용 배터리 솔루션까지 확보하고 세계 최대 시장인 중국까지 자동 진출하게 됐다.
내수 시장 확대도 일본 업체에는 희소식이다. 일본은 안정적인 전력공급이 필요한 병원, 공공기관에 ESS 설치를 의무화하기로 한 것이다. ESS를 설치하지 않은 태양광 발전 시설에 대해서는 인센티브를 지급하지 않을 계획이어서 ‘태양광+ESS’ 융합 시장이 본격 열릴 전망이다. 태양광 발전소를 짓는 곳에는 ESS가 따라 붙는 셈이다. 현재 10㎾h 내외 가정, 건물용 ESS 가격은 1000만원 내외지만 4월부터 보조금 지급을 재개했다. 일본 야노경제연구소에 따르면 일본 ESS시장은 정부 지원에 힘입어 2011년 60만6620㎾h에서 2012년 70만8585㎾h로 성장했다. 가정용 ESS시장은 전년 대비 2970%, 업무용 ESS시장은 747% 늘었다.
◇ 더 위험한 중국
기술력으로 옛 영광을 찾으려는 일본보다 막강한 내수시장을 기반으로 한 중국이 오히려 더 위협적이라는 게 업계 시각이다. 중대형 이차전지로 갈수록 저렴한 가격이 최고의 경쟁력이기 때문이다. 중국은 PC와 스마트폰 업체 내수시장이 커짐에 따라 이차전지 제조업체가 투자를 확대하면서 생산 능력이 급격하게 늘었다.
여기에 중국 정부가 2020년대까지 순수 전기차(EV)와 플러그인하이브리드 전기차(PHEV) 500만 대를 보급하기로 하면서 이차전지를 국책 산업으로 지정했다. 경제를 총괄하는 리커창 총리가 직접 나서 중국 내 40여개 대도시 시장을 모아 놓고 전기차 도입을 독려했다는 얘기도 들린다.
중국 전기차 보급 배경은 세 가지 정도로 볼 수 있다. 우선은 생존이다. 심각한 대기오염을 줄이기 위해 친환경 자동차인 전기차를 선택했다. 중국 환경보호부는 내년까지 2년간 미세먼지 퇴치 예산으로 2조5000억위안(약 430조원)을 지원한다. 다음은 에너지 안보다. 석유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서다. 마지막은 전기차를 통한 경제성장이다. 전기차 도입 목표는 2015년까지 누적 50만대다.
중국 정부의 강력한 친환경 차량 정책으로 날개를 단 자동차 업체인 비야디(BYD)가 대표 수혜 업체다. 정부의 전기차 보급 확대 정책에 따라 리튬이온 이차전지까지 생산 품목을 확대하면서 전기차를 선보였다.
중국 중앙정부는 지난해 9월부터 전기차를 구입하는 소비자에게 최고 6만위안을 지급하고 있다. 선전시는 이와 별도로 BYD E6 모델에 6만위안을 더 얹어준다. BYD는 2009년 이후 3년간 순이익이 97% 급감했지만 첫 전기차 E6이 중국 정부의 친환경 정책을 등에 업으면서 지난해 순이익이 580% 급증하고 주가는 85% 반등했다.
이차전지 가격폭락...지금이 기회다
전기차와 에너지저장장치 배터리 가격이 최근 1~2년 새 30% 이상 폭락했다. 업계에 따르면 중대형 리튬이온 이차전지 셀 가격이 업체간 경쟁으로 지난해 1㎾h당 600달러 수준에서 최근 최저 350달러까지 떨어졌다. 경쟁이 덜한 내수시장도 400달러선에서 거래되는 것으로 파악된다.
배터리 값이 워낙 고가라 시장 활성화에 어려움을 겪었던 전기차와 ESS 시장에는 희소식인 셈이다. 배터리가 원가 대부분을 차지하는 ESS 가격도 덩달아 30%가량 떨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ESS는 배터리 모듈을 제외하면 배터리관리시스템(BMS)과 계통운용시스템(PMS), 전력변환장치(PCS) 등으로 구성된다. 1㎿h급 ESS 설치 공사까지 13억~14억원이면 가능하다는 결론이다. 1년 전만 해도 18억원에 달했던 것과 비교하면 30% 가까이 떨어진 것이다.
한국전력의 ‘전력 주파수조정(FR)용 ESS 구축사업’과 스마트그리드108 사업단의 ‘ESS 보급 사업’에서도 배터리 가격은 1㎾h당 50만원 미만에서 형성될 것으로 업계는 내다봤다. 일본에서도 ESS 가격이 크게 떨어지고 있다. 실제로 삼성SDI 제품을 적용한 일본 니치콘의 3㎾h급 가정용 ESS 소비자 가격은 지난해 2300만원에서 최근 1600만원까지 내려갔다. 유통과 설치 마진, PCS 등 부품가격을 고려하면 1㎾h당 배터리 가격은 30만원선으로 추산된다.
이는 전기차도 마찬기자다. 일반적으로 배터리는 전기차 가격의 50% 이상을 차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가격 인하는 세계시장 선두 업체인 LG화학과 삼성SDI의 역할이 컸다는 평가다. 실제 LG화학과 삼성SDI를 합친 중대형 이차전지 생산 규모는 세계 시장의 60%가 넘는다. 생산 규모가 절대적으로 많은 국내 업체가 가격을 내리자 중국 리센과 BYD뿐만 아니라 일본 파나소닉도 따라하는 추세다. 업계 한 관계자는 “중대형 배처리 가격 인하에 국내 업체는 물론이고 중국, 일본 업체까지 가세해 가격 경쟁은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예상했다.
소재 기술이 경쟁력이다
국내 배터리 업체가 세계 시장에서 선두 자리를 지키고 있지만 내심 불안하다. 소재 경쟁력이 일본에 비해 떨어지기 때문이다. 이차전지의 경우 소재 가격 비중이 50% 이상을 차지하는 만큼 소재 기술은 이차전지 산업의 핵심이다.
현재 국내 업체는 이차전지 핵심 부품 중 양극재 정도만 국산화하는 데 성공했다. 나머지 음극재와 전해액, 분리막은 여전히 해외에서 사다 써야 한다. 음극재는 8%, 분리막은 25% 정도로 국산화 정도가 매우 낮다. 국산 배터리는 소형 이차전지 시장에서는 2011년 이후 선도 자리를 내준 적이 없다. 중대형 이차전지 시장에서도 올해 안에 1위로 올라설 것으로 전망된다.
국내 업체가 시장에서 선두 자리를 유지하는 것은 물론이고 추격자를 따돌리기 위해서는 핵심 소재와 차세대 전지 개발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지금까지 국산 배터리는 모바일 강국이라는 이점을 힘입어 기술력과 생산력을 경쟁력으로 갖췄다. 일본을 제치기에는 이것만으로도 충분했다. 하지만 15억 내수시장과 상대적으로 저렴한 인건비를 무기로 쫓아오는 중국으로 인해 기술은 대부분 평준화됐다. 결국은 소재 싸움이라는 것이다. 소재 시장에서는 일본도 분리막을 제외하고 맥을 못 춘다. 중국이 양극·음극재, 전해액 분야에서 1위를 달리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국내 배터리 산업은 소재는커녕 차세대 전지 개발도 뒤로 미뤘다. 당장 장사가 잘 되는 리튬이온계 배터리에만 집중할 뿐이다. 레독스 플로 등 차세대 전지 개발은 남의 나라 얘기다. 전기차용 배터리를 ESS용으로 돌려쓰며 원가 낮추기에만 급급하는 형국이다.
반면에 일본은 소형전지 시장을 한국에 내줬지만 중대형 배터리 시장만큼은 전지 종주국 위상을 지킨다는 구상이다. 일본 정부 차원에서 전기차용 배터리뿐만 아니라 ESS에 특화된 배터리 개발을 적극 지원하고 있다. 차세대 전지로 불리는 레독스 플로 배터리를 적용한 대규모 실증사업도 진행 중이다.
중국은 한 발 앞섰다. 최근 7대 신성장산업 중 하나로 소재산업을 선정했다. 중국 내 리튬·흑연 등 막대한 자원과 저렴한 가격을 무기로 내세웠다. 최근에는 중국 내 생산 공장이 없는 외산 배터리 업체에는 전기차 구매 보조금을 줄이는 방안도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시장 진출을 위해서는 현지 공장 설립은 물론이고 소재도 중국산을 써야 하는 것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소재 산업 경쟁력이 앞으로 2~3년 후 시장을 좌우할 것”이라며 “국내 기업들이 지금까지 쌓아온 소형 전지 경쟁력을 중대형 전지까지 이어 가려면 소재 경쟁력을 갖추는 게 시급하다”고 말했다.
<이차전지 4대 핵심 소재별 국산화율>
<국가별 리튬이차전지 시장점유율>
유창선기자 yuda@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