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침체된 자본시장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한 ‘제2의 벤처붐’ 조성 움직임이 활발한 가운데 1990년대 말과 2000년대 초반 벤처붐을 이끌었던 벤처1세대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우리 경제에서 빼놓을 수 없는 주요 주체로 단단히 자리 잡은 지금의 벤처생태계가 있기까지 양지에서 빛을 발한 성공 벤처인들의 노력 외에도 끊임없는 모험과 도전으로 ‘성실 실패’를 겪은 벤처1세대의 숨은 공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창업을 하고 성공과 실패의 부침을 숱하게 겪은 벤처1세대들은 그 경험을 바탕으로 새롭게 창업에 도전하는 청년 창업가의 멘토로 활약하는가 하면 기술력과 역량을 다시 한 번 펼치기 위해 재기 창업의 문을 두들기고 있다. 정부 역시 사회 전반에 만연한 ‘실패기피 문화’를 전환해 실패를 창조의 디딤돌로 삼기 위해 벤처1세대를 비롯한 재기 기업인을 위해 다양한 정책적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지난해 10월 정부는 미래창조과학부와 중소기업청을 중심으로 ‘선순환 기업생태계 조성을 위한 중소기업 재도전 종합대책’을 수립했다. ‘원활한 재도전 환경’을 토대로 하는 선순환 기업생태계를 구현해 우수 인력의 도전적 벤처창업을 촉진한다는 취지다.
우선 미래부는 올해부터 ‘재도전 컴백 캠프’를 열고 단계별 재도전 지원체계 구축에 들어갔다. 지난 5월부터 7월까지 4차례 걸쳐 상반기 캠프를 진행했으며 이달 들어 하반기 캠프 일정을 시작했다. 참가자들은 창업 희망지역, 기술 분야, 관심 업종 등에 따라 자율적으로 팀을 구성하고 차후 사업전략, 계획 수립 등 지원을 위한 멘토링 및 전문 컨설팅 연계 지원을 받는다.
‘재도전 기업인 창업·사업화’ 사업은 현재 공고를 내고 참가자를 모집하고 있다. 재도전 기업인의 기술·경영 경험과 국내외 젊은 인재의 우수한 아이디어를 결합해 재도전 기업인-청년 인재 간 공동창업 활성화를 유도하는 ‘재도전 전용 연구개발’ 사업도 추진 중이다.
지난 2일 설립 1주년을 맞은 벤처1세대멘토링센터 역시 호평이다. 벤처1세대가 겪은 다양한 경험이 단순히 한 개인의 성공이나 실패에 머무르지 않고 후배 창업가가 같은 어려움을 반복하지 않도록 자산화했다는 평가다. 상암동 누리꿈스퀘어에 위치한 서울 센터에 19명의 벤처1세대가 상근 멘토로 활동 중이며 최근 개소한 대구사무소에는 5명의 상근 멘토가 있다.
지난 1년간 1307개 벤처 및 대학창업동아리를 대상으로 2463건(2014년 6월 기준)의 멘토링을 제공했으며 전국 34개 대학ICT연구센터 대학생 및 대학원생을 대상으로 기업가 정신교육을 실시했다.
강도현 미래부 정보통신방송기반과장은 “벤처1세대가 가진 경험과 역량은 우리 벤처·창업 생태계의 아주 중요한 자산”이라며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도전하는 창조경제 기반을 조성하기 위해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중소기업청 역시 벤처1세대를 비롯한 기업인의 재기를 위한 제도를 지속 운영해 왔다. 2011년 전원태 엠에스코프 회장이 경상남도 죽도에 설립한 재기중소기업개발원을 민·관 협력으로 운영하며 힐링캠프식 재기교육을 이어오고 있다. 지난 7월 10차 교육까지 총 174명이 교육 프로그램을 수료했다. 1기부터 7기까지 수료생 119명 중 36.1%인 43명이 재창업했으며 일부 수료생은 각종 공모전과 벤처캐피털 투자유치에 성공했다.
지난 5월에는 중소기업진흥공단 서울지역본부에 재도전종합지원센터를 개소하고 실패 기업인 맞춤형 재도전 지원 시스템을 본격 가동했다. 재도전 기업인에게 재창업 역량 강화 교육, 재창업 창업 자금 등을 지원하고 신용 불량 등으로 자금 조달이 어려운 재도전 기업인을 위해 지역신용보증재단을 통해 ‘성실 실패자 재도전 지원 특례 보증’을 제공한다. 대한법률구조공단과 함께 재도전기업인 무료 법률 구조사업도 진행 중이다.
아울러 실패에 대해 부정적인 사회적 인식을 바꾸기 위한 사업도 합동으로 추진한다. 중기청은 올 하반기 미래부와 함께 ‘혁신적 실패사례 공모전’과 ‘재도전 인식개선 캠페인’ ‘재도전의 날’ 등을 운영할 계획이다. 11월 열리는 벤처창업대전 행사 전시장에는 ‘재기의 전당’도 단독 부스로 마련해 공모전 우수작을 비롯해 실패 극복 사례 등을 전시할 예정이다.
노영석 중기청 재도전성장과장은 “그동안 정부의 다각적인 정책 노력으로 재도전에 대한 제도적 장벽은 완화된 반면 심리적 장벽은 여전하다”며 “체계적 지원 정책과 사회 인식제고로 누구나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도전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실패를 딛고 재기 창업에 도전한 장유섭 팜패스 대표
“지금 돌이켜보면 그 당시에는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체계적인 사업 방향성이나 비즈니스 모델 없이 사업을 추진했었으니까요.”
장유섭 팜패스 대표는 15년 전, 1차 벤처붐 당시 첫 창업한 회사를 떠올리며 이 같이 말했다. 그는 대학에서 전산학을 전공하고 1999년 소프트웨어(SW) 벤처를 창업했으나 실패의 쓴 잔을 마신 벤처1세대다. 이후 두 번의 실패를 연달아 겪었으나 지난 2011년 스마트 영농 플랫폼으로 재기 창업해 새로운 도전을 이어가고 있다.
장 대표는 “당시 기술력 자체는 밀리지 않았으나 비즈니스 모델 구축에서 실수를 범해 사업을 지속하지 못했다”며 “이후 지역정보 활용 서비스, 네트워크 복원 솔루션으로 다시 창업을 했지만 고객층의 인식 부족, 동업자와의 문제 등으로 결국 모두 접을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사업 이해도가 충분하지 못한 상황에서 기술력과 아이템만 믿고 창업을 했었다는 설명이다.
이후 SW개발 외주 업무를 주로 해오던 그는 8년 전 우연히 영농조합의 관리 솔루션을 개발한 것을 계기로 재 창업의 기틀을 닦게 됐다. 솔루션을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하고 사용자들의 피드백을 받으며 스마트 영농 시장의 가능성을 봤다.
장 대표는 “물론 재 창업을 하는 것에 가족을 비롯한 주변의 반대도 많았고 스스로 두려움이 없지는 않았다”면서도 “맨땅에 헤딩하듯 사업을 시작했던 과거와는 달리 정부의 다양한 창업 지원 제도와 창업보육 기관의 도움을 받아 보다 체계적으로 다시 창업에 도전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현재 그는 카이스트 창업보육센터에 입주해 있으며 벤처1세대멘토링센터에서 경영 멘토링을 받고 있다. 같은 벤처1세대지만 자신의 실패 경험과 성공벤처인의 성공 경험이 어우러져 사업 방향성 확립에 큰 도움을 받고 있다는 설명이다.
최근 농림축산식품부 ‘농식품 ICT융복합 확산사업’ 참여 업체로 등록됐으며 중소기업청 창업지원사업의 도움을 받아 하드웨어 분야로도 영역을 확대하고 있다.
장 대표는 “당장 돈을 지원해 주는 것도 좋지만 사업 방향성을 잡는 데 필요한 조언과 경영 노하우 교육에서 도움을 많이 받았다”며 “재기 창업하기까지 어려움이 많았지만 다양한 제도적 지원 덕분에 다시 일어설 수 있었다”고 말했다.
◆재도전 기반 닦는 금융 지원 속속 추진
지난 8월 신제윤 금융위원장은 “창업에 실패한 기업들이 정부의 재기지원 프로그램 등으로 재창업할 경우 개인회생이력 등 불이익한 신용정보 등록을 유예해 줄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연대보증면제 확대, 불이익한 신용정보 등록 최소화 등으로 창업 실패로 인한 불이익을 최소화한다는 설명이다.
최근 창업 분위기가 활성화되면서 창업 도전의 가장 큰 걸림돌 중 하나로 지목받는 실패 리스크를 경감하기 위한 제도가 속속 추진되고 있다. 동시에 성실 실패기업인들의 재기 창업을 지원하는 펀드와 금융 지원 제도 확충도 이어지고 있다.
중소기업청은 올 들어 회생기업, 실패 후 재창업자들을 위한 200억원 규모 ‘재기 기업 펀드’를 신설했다. 민간 투자 유치가 어려운 점을 감안, 과감한 투자를 유도하기 위해 투자 후 손실 발생 시 정부가 우선적으로 손실을 부담할 계획이다.
아울러 중소기업진흥공단의 재창업자금 역시 배정예산을 지난해 400억원에서 500억원으로 확대했다. 저신용자로 분류된 기업인 혹은 사업실패로 자금조달에 애로를 겪는 기업인 중 일정 요건에 맞춰 시설자금과 운전자금을 지원해 주는 재창업자금 지원은 매년 지원받은 기업 수와 지원 총액이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추세다.
2010년 15개 기업, 15억원에 그쳤으나 지난해 한 해 동안 263개 기업이 총 400억원을 지원받았다. 올해도 지난 8월까지만 252개 기업이 314억원을 지원 받는 등 재기 창업을 위한 활발한 자금 지원이 이어지고 있다.
통신사업자연합회가 관리 중인 KIF(Korea IT Fund)투자조합은 미래부 정책에 부응하는 취지로 100억원을 출자해 ICT분야 재도전 펀드 결성을 추진 중이다. 미래부는 재도전 기업인이 실제 창업으로 아이템을 사업화할 수 있도록 재창업을 위한 전용 자금을 확대하고 재도전 전용 연구개발 사업, 글로벌 액셀러레이팅 사업 등과 연계할 계획이다.
KB국민은행 역시 지난달 ‘금융지원 3대 핵심테마’로 ‘중소기업·소상공인 지원확대‘ ‘지식·기술금융 지원‘과 더불어 ’중소기업·소상공인 대상 재기 지원 프로그램‘을 발표했다. 단순 재창업을 위한 금융지원이 아닌 이전 창업에 실패한 원인을 면밀히 분석해 재기에 성공할 수 있도록 전문가 멘토링을 제공하고 영업점과의 일대일 매칭으로 재창업 이전 준비부터 재창업 후 정착 단계까지 지속적 지원이 이뤄지도록 할 계획이다.
[표1] 중소기업진흥공단 재창업 자금 지원 실적
[표2] 2014년도 중소기업진흥공단 재창업 자금 지원 현황(8월 말 기준)
박정은기자 jepark@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