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혼다는 2011년 미국에서 대형 SUV 파일럿 31만대를 리콜했다. 봉제 불량으로 안전벨트가 풀릴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이 같은 사례가 발견된 것은 두 건에 불과하지만 결국 31만대를 무상수리해줬다.
#2. 메르세데스-벤츠는 2012년 미국에서 E350과 E550 쿠페 499대를 리콜했다. 조수석 커튼 에어백이 부적절하게 봉합돼 에어백 전개시 공기가 일찍 빠져나갈 가능성이 발견됐기 때문이다.
#3. 르노삼성은 2008년 국내에서 SM5와 SM7 885대를 리콜했다. 제동력 부족현상과 함께 앞좌석 좌우 시트 측면에 장착된 에어백이 시트 봉제 불량으로 전개되지 않는 결함이 발견됐다.
위에서 예로 든 리콜의 공통점은 ‘봉제(縫製·Sewing)’에 문제가 있었다는 점이다. 실(絲로) 박음질하는 단순 작업이 이처럼 심각한 문제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이 다소 의아하게 생각될 수도 있다. 자동차 제조기술이 제아무리 첨단자동화 된다고 하지만 여전히 수작업에 의존하는 과정 중 하나가 봉제다. 상기한 사례를 자세히 살펴보면 봉제 문제가 심각함을 알 수 있다.
혼다 파일럿과 벤츠 E350·E550 쿠페는 봉제가 헐겁게 됐을 때 나타나는 현상이다. 어떤 이유로 박음질이 제대로 되지 않아 안전벨트가 차에 고정되지 않았거나, 에어백 소재 두 장이 맞붙지 않은 것이다. 르노삼성 SM5와 SM7은 반대로 박음질이 이중으로 되거나 너무 굵은 실로 되면서 일정한 압력이 주어지면 뜯어져야 할 곳이 뜯어지지 않아서 벌어진 일이다. 사이드 에어백은 앞좌석 좌우 시트에 들어있는데, 에어백이 시트 내부에서 터지더라도 시트 박음질이 뜯어지지 않으면 밖으로 나오지 못하거나 너무 늦게 나오는 것이다.
◇봉제산업 160년 난제 ‘밑실 소진’
이 같은 문제를 야기한 핵심 원인은 봉제산업 160년의 난제로 불리는 ‘밑실 소진’에 있다. 재봉틀의 원리는 알고 보면 간단하다. 오늘날 사용하는 재봉틀은 1834년 미국의 월터 헌트가 개발하고 1851년 싱거(M. Singer)가 가정용으로 개량한 이후 적어도 160년 동안 거의 변하지 않았다. 원리가 너무 단순하다보니 벌어진 일이다.
재봉틀은 구멍 뚫린 바늘을 타고 내려온 윗실을, 아랫 실(밑실)을 품고 있는 훅세트(Hookset)가 한 바퀴 감고 돌아 두 실이 매듭을 짓도록 해준다. 문제는 훅세트의 크기다. 훅세트의 걸쇠가 한 바퀴 돌면서 윗실과 밑실의 매듭을 만들기 때문에 훅세트가 너무 커지면 안 되는 것이다. 훅세트가 일정 수준 이상 커지면 한 바퀴 회전하는데 시간이 많이 걸리고, 정밀한 바늘땀 형성이 어려워진다. 훅세트는 밑실이 담긴 곳이므로 결국 밑실 크기의 제한을 가져왔다. 160년이 지나는 동안 밑실 실타래는 대·중·소 세 가지 크기밖에 없으며, 가장 큰 것의 지름이 3.2㎝ 정도에 불과하다.
밑실의 양이 제한되면서 심각한 문제가 발생한다. 외부 공급이 불가능한 밑실이 언제 바닥날지 알 수가 없는 것이다. 밑실이 떨어진 상황에서 재봉틀이 작동하면 헛박음질이 된다. 밑실을 갈아 끼우고 헛박음질된 부분을 다 뜯어낸 뒤 처음부터 박음질을 하려면 시간이 많이 걸린다. 헛박음질 시 발생한 바늘자국이 남기도 한다. 때로는 박음질이 끝난 곳보다 조금 앞선 곳에서 박음질을 시작하는데, 그러면 이중박음질이 된다. 이중박음질은 위에서 예로 든 사이드 에어백 전개지연의 원인이 된다. 밑실이 언제 떨어질지 알 수가 없어 초조한 상태에서 작업을 하느라 작업 능률이 떨어진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160년 난제 근본 해결한 아이젠글로벌의 원리는
밑실 소진 문제를 해결하려는 시도는 두 방향에서 이뤄졌다. 하나는 밑실 양에 영향을 미치는 훅세트 크기를 키우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밑실이 언제 소진될지를 사전에 아는 방법을 개발하는 것이다. 그러나 두 방법 모두 큰 성과를 내지 못했다. 훅세트를 키우는 기술이 어느 정도 성과를 내기는 했으나, 여전히 밑실이 언제 소진되는지 알려주지 못한다는 점에서 기술적 한계를 안고 있었다. 밑실 소진 시기를 알려주는 기술은 부정확한 센싱 기술을 사용함으로써 정확한 시점을 알려주는데 실패했다.
조훈식 아이젠글로벌 사장이 개발한 ‘닥터 소잉(Dr. Sewing)’ 기술은 IT를 활용해 밑실이 언제 소진될지 알려줄 뿐만 아니라, 남은 실로 한 공정을 충분히 채울 수 있는지 여부까지 알려준다는 점에서 획기적 기술로 평가된다.
의외로 원리는 간단하다. 밑실 실타래(보빈)에 바코드를 부착해 실이 바닥을 드러내는 시점을 정확히 측정할 수 있게 한 것이다. 디지털 감지 시스템이 이를 감지, 밑실이 다음 공정을 하지 못할 정도로 짧게 남아있으면 마지막 공정 종료 후 자동으로 재봉틀을 정지시킴과 동시에 알람으로 이를 알려준다. 바코드 시스템과 연동해 자동으로 실을 감는 기계는 물론, 이를 인식할 수 있는 초소형 바코드 스캐너까지 조 사장이 직접 개발했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이력 추적 및 이력보증시스템(ASSNT)까지 개발, 누가 언제 작업을 했는지까지 알 수 있도록 해 봉제 실수로 인한 제품 하자를 원천 차단하도록 했다.
조 사장은 “바코드라는 요소 기술 자체는 어려운 게 아닌 게 사실”이라면서도 “쉬운 기술을 적재적소에 배치한 아이디어가 융합IT이며 이를 기반으로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어가는 게 창조경제의 핵심”이라고 말했다.
조 사장이 개발한 기술에 국내외에서 찬사가 쏟아졌다. 세계 최대 규모인 국제 섬유기계박람회(ITMA)가 2007년 독일 뮌헨에서 열렸을 때 현지 전문 매체인 ‘텍스타일 네트워크’는 전시회에 참가한 아이젠글로벌의 닥터 소잉 기술을 다음과 같이 극찬했다.
“어느 전시회든 ‘완전히 다른(completely different)’ 제품이 존재한다. 이번 ITMA에서는 한국에서 온 아이젠글로벌의 닥터 소잉이 그렇다.”
50년 이상 봉제산업에 종사한 김영순 영프라자 대표는 “자동차처럼 굵은 실을 사용하는 현장에서는 대부분의 문제가 윗실이 아닌 밑실 때문에 발생한다”면서 “닥터 소잉은 이 문제를 해결한 획기적 기술”이라고 말했다.
닥터 소잉은 현재 국가정보원 보호 기술로 지정돼 있다. 우리나라와 미국, 일본, 중국 4개국 특허 등록을 완료했고, 유럽 33개국은 내년 중 등록될 예정이다.
◇세계적 업체 러브콜 이어진다
조 사장은 닥터 소잉 기술을 활용하면 불량품을 완전히 제거할 수 있을 뿐만아니라 기존 공정보다 효율성을 30% 이상 높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전에는 밑실이 바닥나 헛박음질이 될 것을 우려해 작업자들이 마음껏 속도를 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닥터 소잉에 눈독을 들인 글로벌 기업의 러브콜이 이어지고 있다. 올해 초 세계 최대 재봉틀 생산 업체인 일본 A사와 MOU를 교환하고 현재 구체적 생산 일정을 협의 중이다. 닥터 소잉 기술을 단 재봉틀을 아이젠글로벌이 팔 수 있도록 했다. 세계 최대 봉제용 실 생산업체인 영국 B사와는 협상을 계속하고 있다. 두 업체는 자동차용 봉제 시장에서도 세계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우리나라와 미국, 일본 유력 자동차 회사와도 기술 시연회를 갖고 구체적인 공급 방안을 논의 중이다. 자동차 이외에 스포츠용품이나 명품 가방 생산 회사 등 전통 봉제 산업에서도 닥터 소잉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조 사장은 강조했다.
조훈식 사장은 “제조물 책임법(PL)과 자동차 기능안전 국제표준(ISO 26262)에서는 ‘최신 과학 기술’을 사용해 제품을 만들도록 규정하고 있다”면서 “아이젠글로벌의 닥터 소잉이 이에 해당하기 때문에 향후 자동차 업계의 관심이 높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김용주기자 kyj@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