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전부터 사람들은 통신을 이용했다. 빛·연기·소리를 통해 의사를 전달하고 돌판·목판·동물가죽 등에 문자를 적어 서로 주고받았다. 기원전 559년 페르시아에서 역(驛)제도는 조직적인 통신망의 시초로 기록됐다. 정보의 이동은 매개체의 변화와 더불어 끊임 없이 이종산업과 결합해왔다. 종이가 발달하면서 우편배달부가 생겼고 전기통신이 시작되면서 전보·전화 산업이 만들어졌다. 인터넷망이 발달하면서 PC 산업이 급격하게 팽창했고 이동통신 속도가 빨라지면서 스마트폰이 등장했다. 정보기술(IT) 산업 발전을 통신을 제외하고 얘기할 수 없는 이유다.
이제는 통신망 고도화를 기반으로 성장한 산업이 아닌 전통 산업이나 이종산업도 통신 산업으로 빨려들고 있다. 모든 산업에서 통신과 접목을 고민한다. ‘통신 융합(컨버전스)’이라는 단어가 출현하고 통신망이 이를 뒷받침하기 시작한 후 농업·공업·금융·건설·수송·의료·교육 등 약 20여년동안 통신망에 맞물리지 않은 산업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특히 무선통신망의 비약적인 발달이 융합에 속도를 붙였다.
◇ICT 융합 속도내는 통신업계
국내 이통 3사는 올해 융합 인프라 구축에 관한 장기 비전을 각각 발표하고 융합서비스 사업에 속도를 내고 있다. 이통업계가 공통으로 내건 통신융합 사업은 △사물인터넷(IoT) △헬스케어 △인공지능 등이다.
SK텔레콤은 이동통신 30주년을 맞아 ‘ICT노믹스’를 화두로 던졌다. 가장 적극적인 분야는 헬스케어다. 지난해 의료기기 제조업체 나노엔텍을 인수한데 이어 서울대병원과 합작사 헬스커넥트도 설립하는 등 발빠른 행보를 보였다. 나노엔텍은 의료용 체외진단 기기 개발 업체로, 제조업에 발을 들여놓는 한편 통신망을 이용한 건강관리 서비스, 스마트병원 솔루션을 중점 과제로 제시했다. 환자의 몸 상태에 대한 데이터를 출적해 맞춤형 건강관리를 하겠다는 목표다.
스마트카, 스마트팜, 스마트 전통시장 등 IoT 관련 서비스도 내놨다. 지난달 SK텔레콤이 공개한 전북 고창군 민물장어 양식장에 구현한 ‘스마트 양식장’은 스마트폰을 통해 60만마리에 달하는 치어와 성어를 실시간 모니터링 하고 온수공급·산소공급 장비 오작동을 감지해 집단 폐사를 방지했다. SK텔레콤 관계자는 “전통산업에 IoT가 결합돼 얻을 수 있는 경제효과가 크다”며 “스마트카 같은 첨단 산업뿐만 아니라 기존 산업과의 접목을 확대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5세대(5G) 이동통신을 오는 2020년 세계 최초로 상용화해 융합 산업 인프라 주도권을 쥐겠다는 포부도 밝혔다.
KT는 스마트에너지, 보안, 헬스케어, 지능형교통관제, 차세대미디어를 5대 미래융합과제로 선정했다. 강원도 강릉시 샛돌지구에 스마트팜을 구축해 귀농·귀촌을 돕는가하면 뇌 지도 프로젝트 ‘아이와이어’에 참여하기로 했다. 헬스케어 사업을 염두에 둔 포석으로 업계는 해석하고 있다. 빅데이터 사업 역시 활발하게 추진 중이다. 지난해 서울시 심야버스 노선을 분석해 이용자가 많은 곳으로 노선을 다시 그리는 작업을 진행, 호평을 받았다. 조류독감(AI) 확산 경로를 분석해 세계 최초로 AI가 빠르게 전국으로 원인을 밝혀냈다. 인프라는 유무선을 아우르는 기가인터넷을 구축할 계획이다.
LG유플러스는 ‘스마트 프레시’, ‘스마트크린’ 등 IoT 기술을 다방면에 활용하고 있다. 단체급식용 조리실 곳곳에 센서를 부착해 실시간으로 식자재를 관리한다. 음식물쓰레기 처리 솔루션인 스마트크린은 지방자치단체에서 음식물쓰레기 용량을 재 과금할 수 있게 한다. LG유플러스 관계자는 “사회적가치창출(SCV) 차원에서 접근한 IoT 사업에서도 지난해 수익을 창출하는 등 사업화 가능성을 엿봤다”고 말했다. ‘LTE오픈 이노베이션센터’를 운영하면서 150여개 중소기업과 협력해 IoT 분야 이용 건수가 4000건을 돌파했다.
◇ICT 융합 걸림돌, 인력과 규제
각 산업이 융합 생태계 구축을 위해 전방위적인 협력을 꾀하고 있지만 시장 확대를 위해서는 풀어야 할 두가지 문제가 있다. 첫 번째가 인력이다. 통신전문가, 자동차전문가, 농업전문가 등 각 산업별 전문가는 꾸준히 양성돼왔지만 각 산업간 가교역할을 할 수 있는 융합형 인재 육성은 아직 초기단계다. KT가 서울시와 진행한 심야버스 노선 사업을 예로 들면, 교통전문가와 빅데이터·통신 전문가간 교류가 없어 초기 심야버스 노선이 실수요와는 차이가 있었다. 특정 산업의 문제점을 찾고 개선 방안까지 마련할 수 있는 전문가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동통신업계 관계자는 “융합형 인재를 뽑고 싶어하는 회사는 많지만 막상 구하기 쉽지 않다”고 말했다.
융합산업과 맞지 않는 규제도 개선이 요구된다. 특히 의료·바이오, 금융 등 민감정보가 오고가는 산업과 융합은 쉽지 않다. 규제 완화를 주장하는 측이나 강력한 규제를 바라는 쪽의 논리가 팽팽하게 맞서고 있어 산업발전과 개인정보보호 가치의 절충점을 찾아야 한다. 식약처 관계자는 “산업 발전 차원에서 규제 완화를 검토하고 있지만 세계적인 추세와 보조를 맞추는 한편 민감한 사항에 관한 당사자간 합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오은지기자 onz@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