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32주년 특집2-새로운 기회, 창조] ‘경제살리기’ 지성 에게 길을 묻다

‘한국 경제 성장 멈춰서는 안 된다.’ 전자신문은 창간 32주년을 맞아 각 분야를 대표하는 교수 5명을 대상으로 특별 방담 ‘경제살리기, 지성(知性)에게 길을 묻다’를 마련했다. 공통질문과 각 전문분야 식견을 듣는 개별질문으로 이루어진 방담에서 교수들은 기업의 지속 투자를 통한 차세대 먹거리 발굴을 위해 정부의 과감한 정책적 리더십을 제안했다. 또 중국을 후발주자로 볼 것이 아니라 우리가 배워야 할 대상이며 동시에 우리가 적극 공략해야 할 시장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박근혜정부 정책에 대해서는 실행력에 대한 아쉬움을 꼽았으며 앞으로의 장기과제로 성장과 함께 분배 또한 고민할 것을 제시했다. 서면으로 진행된 방담 내용을 정리한다.

=고건 이화여대 석좌교수

=문승일 서울대 공대 교수

=이신두 서울대 전기·정보공학부 교수

=이유택 보스턴대 경영학과 교수

=이장우 경북대 경영학부 교수(한국경영학회장)

※가나다순

-한국 경제에 대한 평가가 엇갈린다. 대학에서 보는 한국 경제 실상이 궁금하다.

◇이장우(경북대 경영학부 교수)=한국 경제는 구조 전환기를 맞았다. 새로운 성장엔진이 필요하다. 산업화 30년, 정보화 20년에 이어 창조화라는 새로운 물결을 타야 한다. 앞으로 새로운 물결은 때로는 위기의 모습으로 때로는 기회의 얼굴로 밀려올 것이다. 그리고 더 짧은 시간 단위로 밀려올 것이며 금융위기와 같은 급박한 상황이 언제 닥칠지 모른다. 양극화, 적당주의로 인한 부실 등 속도 경영으로 인한 문제를 해결하면서 창조화 물결을 제대로 탈 수 있는 패러다임을 준비해야 한다.

◇이신두(서울대 전기·정보공학부 교수)=최근 몇년간 세계경제는 경기 침체와 고용 불안이 고착화되는 듯한 모습이다. 내부기반 약화, 물가상승, 고용부진과 청년실업 등의 각종 악재들이 산적해 있어 경기회복에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전망이다. 현재로서는 민간투자 활성화와 국가 재정지출 증대를 제외하고는 뾰족한 해결방안이 없어 보인다. 최근에 발표한 정부의 경제활성화 및 민생안정 대책은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문승일(서울대 공대 교수)=로켓은 연료가 다하면 다음 엔진을 가동시켜서 새로운 동력을 얻어야만 먼 우주로 날아갈 수 있다. 때를 놓친다면 고꾸라져서 땅으로 추락하고 만다. 지금 우리 경제사정도 비슷하다. 지금까지 빠른 속도로 경제성장을 끌고 왔던 주력 엔진들이 거의 꺼져가고 있는데 이것을 대신할 만한 새로운 성장엔진을 가동시키겠다는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유택(보스턴대 경영학과 교수)=우리나라 경제 규모는 2003년 11위 수준에서 2008년 15위로 하락한 이후 그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반면에 브릭스 국가들은 5%의 경제 성장률을 유지하면서 경제 규모 측면에서 순위가 상승했다. 선진국 같이 어느 정도의 경제성장 단계에 들어서면 높은 성장률을 기대할 수 없다는 의견도 있다. 하지만 4%대의 낮은 실업률과 3%대의 경제성장률을 보이고 있는 독일의 경우를 보면 전적으로 동의하기는 어렵다. 1인당 국민 소득, 가계 부채율, 지하경제 규모 등의 지표를 보더라도 한국경제 상황에 보다 심각한 고민이 필요하다.

◇고건(이화여대 석좌교수)=한국 경제의 미래는 어둡다고 본다. 단적으로 우수 인력들이 이공계로 오지 않는다. SW 분야에 미래가 있는가를 되묻지 않을 수 없다. 과거 우수한 인재가 이공계에 왔던 이유는 박정희 대통령의 이공계 중시정책 때문이었다. 수출 때문에 국가가 부강해지고 이공계 때문에 기업이 돈 벌었으면 더욱 더 좋은 학생들이 이공계로 몰려 와야 하는데 반대로 이공계 지원이 줄어들고 있다. 이공계를 택하면 삶은 고단한데 비해 보상은 다른 직업보다 턱없이 적다는 사실을 학생들이 깨달았기 때문이다.

-우리 경제의 지속 성장을 위한 해법을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문승일=과거 우리나라 국가성장전략은 우리만 생각했던 것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우리가 성공할 수 있었던 데에는 정부가 장기비전을 제시하고 이를 수십 년 동안 초지일관해서 추진할 수 있는 리더십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또, 기업이 사활을 걸고 투자하는 결단을 내렸다. 아쉽게도 지금 우리나라는 이 두 가지 모두를 상실했다. 적어도 10년은 변하지 않을 국가전략과 결단성 있는 기업의 투자가 있어야만 지금의 질곡에서 빠져 나오는 희망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지금이 바로 결단을 내려야 하는 때인데 골든타임을 흘려보내고 있는 것이 안타깝다.

◇고건=우리나라는 후진국형 정책에 너무 오래 머물렀다고 본다. 모방과 ‘낮은 가격’으로 먹고 사는 시대는 지났다. 미래에는 대기업에 의한 원가절감보다는 중소기업과 개인에 의한 창의가 더 중요한 시대다. 해결책은 ‘개인의 혁신’으로 초점을 돌리는 것이다. 개인이 혁신하기까지 성장할 수 있도록 교육기회를 만들어 주고 여건을 조성해주면 된다.

◇이신두=경제의 심각한 저 성장세를 극복하기 위한 처방이 필요하다. 재정지출 증대에 있어 불쏘시개 역할을 넘어 단계적이고 효율적인 집행과 국가재정 건전성이 담보되어야 한다. 민간부문에서 보면 대기업은 무늬만 상생협력이 아니라 창의적이고 개방적인 산업생태계 구축을 선도해야 한다. 도전과 혁신의 상징인 벤처기업과 히든 챔피언 잠재력을 가진 강한 중소기업이 육성되어야 한다.

◇이유택=치열한 경쟁 속에서도 수요가 발생할 수 있는 상품이나 서비스를 만들어 내는 ‘체계적 혁신(Systematic Innovation)’만이 살 길이다. 체계적 혁신이란 우연에 의한 혁신에 대비되는 개념이다. 지속적인 혁신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혁신의 요소, 혁신의 과정, 그리고 혁신의 결과를 연계시켜 유기적으로 관리하고 이것이 선순환이 될 수 있는 기반을 구축하는 것이다.

◇이장우=저성장 국면을 돌파하기 위해 여러 방책이 필요하다. 첫째 부가가치를 만들어내는 경제 주체를 다양화해야 한다. 수출 중심의 소수 대기업에만 의존해서는 새로운 성장 동력을 마련하기 어렵다. 강소 기업, 중견 기업 등의 역할을 늘려가야 한다. 그래야 대기업도 튼튼해진다. 둘째로는 서비스 산업, 융합 산업, 창조 산업 등 성장세를 타고 있는 새로운 산업 분야를 키워야 한다. 셋째는 새로운 산업 분야를 키우기 위한 제도적 혁신을 해야 한다. 정부는 규제혁파 수준의 개혁을 해야 하며 민간에서도 새로운 경영혁신으로 재무장해야 한다.

-중국의 부상은 우리 기업과 산업에는 기회이자 위기다. 중국의 고도성장에 대한 평가와 이를 기회로 삼기 위한 의견을 제시한다면.

◇고건=시장에는 첫 번째(The first), 최고(The best), 최저가(The cheapest) 이렇게 세 가지 축이 있다고 한다. 이제 모방과, 최저가 시장은 중국으로 넘어갔다. 최고와 첫 번째의 시장만 우리에게 남았다. 중국은 최저가 뿐만 아니라 혁신 부문에서도 이미 우리나라를 추월하고 있다. 중국은 외국기업으로부터 기술 전수를 쉽게 받는다. 또 중국계 이민자들이 오래전부터 미국에 정착해왔고 이들 중 상당수가 실리콘밸리 등에서 기술자로 중추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이들이 중국 기술발전에 견인차 역할을 하고 있다. 그래서 중국은 기술 우위를 놓고도 우리와 치열한 경쟁을 하리라 생각한다.

◇문승일=중국에 대한 평가를 다시 해야 한다고 본다. 지금 중국은 우리를 추격하고 있는 것이 아니고 우리를 앞서 나간 지 벌써 한참 됐다. 중국 정부는 수십 년을 내다보는 정책들을 펼치면서 관련 기업을 전략적으로 육성하고 있다. 얼마 전 창조경제의 바람이 거세게 불 때 이스라엘 예루살렘 국제공항 승객 중에서 반은 우리나라 공무원이더라는 우스갯소리가 떠돌았다. 이제 눈을 중국으로 돌려서 중국을 배우러 가기를 바란다.

◇이장우=중국은 과거에도 그랬듯이 위기를 가져오지만 그것을 극복하면 곧 기회를 가져다주었다. 세계 최대 생산기지이자 소비시장이기 때문이다. 산업화 이후 90년대 중반 중국의 등장은 정보화 물결을 재빨리 갈아타지 않을 수 없게 만든 자극제가 되었다. 그리고 최근 스마트폰 시장에서 보듯이 중국의 첨단 산업 진입은 또 다시 심각한 위기를 조장하고 있다. 이 위기를 창조화 물결로 갈아타는 촉매제로 활용해야 한다. 이를 위해 틈새시장을 발굴해 내야 한다. 과거와 같이 한두 가지 좋은 제품을 만들어 파는 수준에서 벗어나야 한다. 문화를 입혀야 하고 중국 소비자의 니즈를 먼저 찾아내서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어내야 한다.

◇이유택=우리나라는 중국을 수출 생산기지로 활용하고 있지만, 최종 상품을 수출하는 시장으로서의 기능은 아직 미흡하다. 앞으로는 이미 갖추어진 생산 기반을 이용해 중국 내수시장에 적합한 제품을 생산할 수 있는 기업들의 혁신 전략이 필요하다.

-창조경제를 기치로 내세운 박근혜정부가 출범한지 1년여가 지났다. 그동안의 경제정책에 대한 평가를 부탁한다.

◇이신두=출범 초기부터 창조경제의 개념에 대한 모호성과 실행계획의 구체성 결여 때문에 많은 논란을 불러왔다. 경제 부흥을 달성하기 위한 정책적 수단으로 창조경제의 핵심요소가 제시되고 추진되어야 할 필요가 있었다. 국민이 체감할 수 있도록 홍보되고 공감대가 형성되었다면 조기에 창조경제 추진이 큰 탄력을 받았을 것이다. 최근 박근혜 대통령이 강조하는 정부부처 간 그리고 부처 내 칸막이 제거와 창조경제 패러다임으로 전환하는데 걸림돌이 되고 있는 규제와 관행의 과감한 혁파는 지속되어야 한다.

◇이유택=개념적 모호성 때문에 방향을 잃는 것은 아닌가하는 우려 속에서도 지속적으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는 측면에서 긍정적 평가를 하고 싶다. 하지만 정부의 정책은 국민의 필요에 의해서 기초가 되고, 국민 만족에 근거해서 평가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국민의 비전을 달성하는 것이 최종의 목표지 정부의 단기적인 성과나 소수 리더의 비전을 달성하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해야 할 것이다.

◇고건=창조경제와 서비스 산업 그리고 중소·벤처기업을 중요시하는 기본 방향은 잘 설정했다. 우려되는 부분은 구체적인 ‘어떻게(How)’가 미흡하고 추진 속도가 너무 느리다는 점이다. 문제의 핵심은 인재 양성이고 가장 큰 축은 대학인데 대학교육에 대한 정책이 그려지지 않고 있다.

◇이장우=기본 방향과 원칙 설정 등은 잘했다고 평가한다. 문제는 실천이다. 국민은 창조경제가 무엇인지 아직도 모르겠다고 한다. 정책은 수립 못지않게 실천이 중요하다. 딱딱한 하드웨어적 마인드로 원칙과 전략의 설정은 할 수 있어도 21세기 경제사회에서 요구되는 실천의 지혜를 발휘할 수는 없다. 박근혜정부로서도 힘든 것은 정치적 상황으로 국회가 움직이지 않고 부처 간 규제들이 서로 얽혀 있어 규제의 실타래를 쉽게 풀 수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문제들을 어떻게 지혜롭게 해결하는지에 따라 현 정부의 평가가 갈릴 것이다.

◇문승일=창조경제의 실체가 보이지 않는다. 창조경제의 실체를 구체적으로 구현하고 창조경제 결과물이 팔릴 수 있는 시장을 창출해 산업생태계가 만들어지도록 한다면 창조경제는 이번 정부를 넘어서 우리 경제를 끌고 가는 성장 동력으로 자리매김을 하게 될 것으로 기대한다.

-장기적인 관점에서의 지속성장 대책도 필요해 보인다.

◇이유택=성장의 진정한 의미를 깊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앞으로는 성장만이 아닌 분배를 동시에 추구해야 한다. 그런 측면에서 정부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가 과거와는 다른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사회 전반에 체계적 혁신을 통한 가치 중심의 성장이 이루어져야 한다. 이를 위해 시급한 것이 사회적 소통을 통해 공유되는 가치의 창출과 분배에 대한 사회적 협의나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이다. 불필요한 사회적 비용을 줄이고, 사회 구성원들이 가치창출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러한 여건이 조성된다면 국민은 세계시장을 무대로 경제 활동을 펼칠 수 있는 충분한 역량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장우=지난 50년 동안 산업화의 물결과 정보화, 그리고 디지털화 등의 크고 작은 물결들을 성공적으로 타면서 비교적 고성장세를 유지했다. 지금의 저성장세는 새로운 물결을 타라는 신호로 인식해야 한다. 정보화 패러다임과 속도 경영의 한계가 드러나고 있다. 저성장을 극복할 수 있는 신 성장 동력은 시장을 보는 관점, 사업하는 방식 등을 근본적으로 전환하는 데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고건=예산·법·제도 결정권을 갖고 있는 사람, 그리고 전문성과 열정을 가진 사람이 긴밀히 협업하지 않고서는 좋은 정책이 나오기 어렵다. 전문가들 의견이 정책입안과 정책추진에 신속하고 적극적으로 반영될 수 있는 체제를 빨리 구축해야 한다. 분야별 전문가로 구성된 태스크포스에 보다 많은 역할을 위임하는 특별위원회(Adhocracy) 제도의 적극적인 활용이 필요하다.

◇문승일=때를 놓치지 말고 지금 바로 새로운 성장 동력 엔진을 가동시켜야 한다. 정부는 적어도 10년은 변하지 않을 비전을 제시해야 하고 기업은 결단을 내리고 과감한 투자를 해야만 한다. 어떤 산업이 새로운 성장 동력 역할을 할 것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주저 없이 전기차 산업을 키워 나가자고 제안할 것이다.

◇이신두=입시일변도에서 탈피한 교육체계를 정립하고 이를 통해 창의적이고 상상력이 풍부한 인재 양성이 이루어져야 한다. 문화와 과학기술의 융합, 이종산업 간의 융합을 통한 창조경제를 구현하는데 있어 바로 사람이 핵심이다. 지식의 융합과 기술의 혁신, 더 나아가 창조적 사고에 의한 새로운 패러다임에서 우리나라 주력산업의 고유영역을 넘어서야 한다. 이를 통해 산업계 전반이 동반성장하면서 일자리 창출, 가계소득 증대, 국가경제 성장으로 이어지게 될 것이다.

정리=

김준배기자 joo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