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상생전략으로 해상풍력 갈등 해소한 네덜란드

네덜란드는 개발사업 관련 사회적 갈등을 해소하는 데 탁월한 역량을 보여주는 나라다. 사업주와 주민이 상생할 수 있는 타협점을 찾아 극한 대립을 피한 사례는 세계 각국이 벤치마킹 모델로 삼기에 충분했다. 해상풍력단지 개발과정에서 빚어진 어민과 갈등을 과학적 근거와 주민참여형 사업모델이라는 대안을 제시해 해결한 사례도 이 가운데 하나다. 이는 주민반대로 난항을 겪은 우리나라 서남해해상풍력사업에 많은 시사점을 던져주고 있다. 네덜란드를 찾아 국내 해상풍력사업의 나아갈 방향을 엿보고 왔다.

네덜란드 조선기업 IHC는 하이드로해머링 공법을 개발해 파일링 과정에서 발생하는 수중 소음을 제거했다. 하이드로해머링 장비가 파일링을 위해 수중에 투입되는 모습.
네덜란드 조선기업 IHC는 하이드로해머링 공법을 개발해 파일링 과정에서 발생하는 수중 소음을 제거했다. 하이드로해머링 장비가 파일링을 위해 수중에 투입되는 모습.

네덜란드 최북단 델헬데르. 북해를 마주한 이 땅끝 마을에는 국책 해양연구기관 TNO와 이마레스가 자리잡고 있다. 두 기관은 네덜란드 해상풍력사업이 이른 시간 내 궤도에 오를 수 있는 단초를 제공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사업으로 빚어진 지역 어민과의 갈등을 해소하는 데 중추적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네덜란드 정부는 2000년대 초 정부 주도의 해상풍력사업에 대한 주민반대가 거세지자 재빨리 실태 파악에 나섰다. TNO와 이마레스 주도로 해상풍력발전기 설치 지역의 물고기 이동 경로 등 다양한 정보를 수집했다. 2003년부터 4년간 확보한 방대한 정보를 분석해 해상풍력단지가 물고기 생태에 큰 영향을 끼치지 않고 어업 활동에도 지장이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연구결과는 관련 소송에 증거로 채택돼 분쟁을 해소하는 데 주요한 역할을 했다.

네덜란드 정부는 이 과정에서 지역주민과 상생할 수 있는 수익모델을 제시하며 갈등 해소를 실현했다. 어군 탐지 결과 분석에 어민을 참여시켰고 발전기 유지보수 시 주민 선박을 빌려 일자리를 제공했다. 발전기 구조물을 이용해 어장과 어로를 조성하자 어획량이 늘어나면서 어민 수익도 늘어났다.

야곱 아셰스 이마레스 연구본부장은 “주민이 신뢰할 수 있는 명확한 근거가 없으면 분쟁이 지속될 수밖에 없다”며 “과학적 데이터를 바탕으로 어민이 공존할 수 있는 체계를 구축하는 과정이 갈등을 해소한 원동력”이라고 설명했다.

해상풍력 관련 분쟁의 소지를 줄이기 위한 노력은 민간 차원에서도 활발하게 진행 중이다. 세계 해상풍력단지 75% 이상을 설치한 네덜란드 조선기업 IHC는 구조물을 수중 땅 속에 박는 파일링 공법에 일대 혁신을 가했다. 2012년 개발한 하이드로해머링 공법으로 파일링 과정에서 발생하는 수중 소음을 제거했다. 파일링 소음이 돌고래 청각을 손상시켜 폐사에 이르게 한다는 연구결과를 받아들여 발빠르게 대응에 나선 것이다.

팀 에르클 IHC 하이드로해머 영업 본부장은 “미티게이션(자연복원)은 개발사업에 있어 사업자가 반드시 고려해야 할 메가트렌드”라며 “기업도 어민, 해양 생태계가 공존할 수 있는 시공법을 지속 개발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우리나라 서남해해상풍력사업을 둘러싼 갈등 해소를 위해서는 네덜란드 정부, 풍력업계의 체계적 대응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이임택 한국풍력산업협회장은 “서남해 사업처럼 향후 추진하는 해상풍력사업에서 다양한 갈등 양상이 발생할 것”이라며 “네덜란드처럼 명확한 근거를 제시할 수 있도록 다양한 연구가 선행돼야 하고 기업 역량도 이를 뒷받침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델헬데르(네덜란드)=

최호기자 snoop@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