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가을걷이가 끝난 동네 감나무에는 먹음직한 홍시가 꼭 몇 개씩 남아 있었다.
눈앞에 보이는 잘 익은 홍시에 입맛만 다신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지만 늦가을 감나무 끝에 매달려 가을 정취를 돋보이게 했던 이 홍시를 어른들은 까치밥이라 부르며, 배고픈 까치가 날아와 요기를 하라고 남겨뒀다.
이렇듯 작은 미물까지도 배려했던 우리 조상들은 비록 넉넉하지는 않더라도 자신보다 어려운 이웃과 콩 한 쪽을 나눠 먹을 줄 아는 정을 가졌다.
최근 기업들의 사회공헌에 대한 열기가 뜨겁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익실현을 최고 목적으로 하는 기업에 사회공헌활동은 단순한 비용으로 치부됐다. 하지만 이제는 많은 기업들이 기업 가치를 끌어올리고 소비자에게 존경과 사랑을 받는 기업으로 다가서기 위해 사회공헌활동에 능동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중소기업계에서도 사회공헌은 주요 이슈다. 중소기업은 그동안 대기업 대비 상대적 약자로 받아들여져 도움을 주기보다는 도움을 받는 시혜의 대상으로 인식돼 왔다.
그러나 이제는 중소기업들도 조금씩이지만 사회공헌의 필요성에 대해 인지하고 각자의 위치에서 그 역할을 다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IMF 위기를 이겨내면서 지역주민에게 고마운 마음을 표현하기 위해 지역의 소년소녀 가장들을 10년 넘게 지원해온 중소기업이 있는가 하면, 전 직원이 자발적으로 기부에 참여해 기초생활수급 혜택을 받지 못하는 소외계층을 찾아 복지 사각지대를 없애는 일에 앞장서는 등 전사적인 나눔을 실천하는 중소기업도 있다.
중소기업 전반에 사회공헌 인식 확산과 체계적이고 지속적인 활동을 하기 위해 중소기업중앙회가 2012년 설립한 ‘중소기업 사랑나눔재단’은 전 국민을 슬프게 했던 세월호 참사 시 중소기업의 십시일반 모금운동을 유도했다. 가정형편이 어려운 청소년들에게 장학금 지원을 통해 꿈을 응원하고 어려운 형편으로 치료받지 못하는 중소기업 가족의 치료비를 지원하는 등 ‘중소기업 사회공헌의 요람’으로서 그 역할을 하고 있다.
이외에도 우리 사회 곳곳에서 많은 중소기업들이 조금씩 천천히 사회공헌 활동을 펼치고 있지만 중소기업의 사회공헌 활동은 아직 시작 단계에 불과하며 가야 할 길이 많이 남아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아직도 적지 않은 중소기업들이 사회공헌은 규모가 큰 대기업이 해야 하는 것이고 하루 벌어 하루살기 바쁜 중소기업에는 사치에 불과하다고 이야기할지 모른다. 물론 장기화된 내수침체와 환율의 불안정성 등 심화돼가는 대내외적 불안 속에 중소기업이 그 어느 때보다 힘든 가시밭길을 걷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사회공헌은 그 크기와 규모보다 참여에 의의가 있는 것이다. 작지만 조금씩 사회공헌에 참여하는 중소기업이 하나 둘 늘어난다면 우리 사회에 드리워진 그늘을 더 밝고 따뜻한 빛으로 채울 수 있을 것이다.
중소기업을 상징하는 표현으로 가장 많이 사용하는 문구가 ‘중소기업은 우리 경제의 9988’이다. 말 그대로 중소기업은 우리나라 전체 고용의 99%와 기업의 88%를 차지하는 ‘한국 경제의 중추’라는 의미로 많은 중소기업인들에게 자부심을 느끼게 해주는 말이다.
이제 중소기업도 ‘한국 경제의 중추’라는 자부심과 존재감에 걸맞게 사회적 책임을 이행해 우리사회의 주요 구성원으로서 추가적인 역할을 해야 할 때가 왔다.
지난날 우리 조상들이 까치를 위해 홍시를 남겨두었던 것은 생활의 풍족함에서 나온 여유가 아니었다. 어린 시절 동네 감나무에 달려 있던 ‘까치밥 홍시’의 미덕이 오늘날 중소기업계에도 보다 널리 퍼지기를 희망한다.
송재희 중소기업사랑나눔재단 사무총장 songjh@kbiz.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