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경제가 오랜 저성장의 늪에서 벗어나려면 분야별로 맞춤 전략이 필요하다. 전자신문은 이를 ‘글로벌 시장(이유택 교수)’, ‘기업 경영(이장우 교수)’, ‘소재부품(이신두 교수)’, ‘소프트웨어(고건 교수)’, ‘에너지(문승일 교수)’의 5대 분야로 분류해 각 분야 전문 교수에게 물었다. 이들은 분야별 한국 경제의 현 상황은 낙관적이지 않다고 진단했다. 다만 이를 역이용한다면 위기를 충분히 기회로 만들 수 있다고 조언했다. 이들은 ‘한국 기업의 역동성 부활’과 ‘실패가 용인되는 사회’, ‘산·학·연이 연계된 체계적인 지원제도’, ‘책임있는 성장’을 한국 경제가 오랜 저성장을 극복하고 미래로 나아갈 수 있는 열쇠라고 진단했다. 저성장의 그늘 속에서 길을 잃고 헤매기보다 적극적인 개척정신으로 미래를 여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고건 이화여대 석좌교수는 “한국기업들의 역동성을 활용해 사내외의 목소리를 들으라”고 SW 경쟁력 강화에 대해 조언했다. 고 교수는 우리나라 SW 경쟁력 약화 원인으로 국가와 정부의 SW 무관심을 꼽았다. 국가가 직접 나서 기술개발을 지원하고, 지식재산권 보호에 앞장섰던 서구 선진국과 달리 한국은 정반대 행보를 보였다는 것이다.
고 교수는 “공공부문이 앞장서 외국산 IT제품을 선호했고, SW를 불법 다운로드 받았으며, 우월적 지위를 악용해 SW의 로열티를 인정하지 않고 최저가 입찰제를 남발했다”고 지적했다. ‘영재들아 SW 오지 말아라, SW는 40세가 되면 퇴출당한다’는 유행어를 꺼내며 국내의 척박한 SW 현실을 비유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SW 우수인력을 양성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우선 우수 인재가 국내 SW 업계로 몰리고, 그 기량을 최대한 뻗을 수 있도록 돕는 제도들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대학교육이 그동안의 이론 중심 교육에서 공개SW를 이용한 시스템SW 실습 중심 교육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고 교수는 “그동안 공개SW 소스코드가 없어 국내 대학에서 SW 교육이 어려웠다”면서 “이제 여건이 바뀌었으니 정부와 업계, 대학이 적극적으로 연수를 지원해 인재들의 글로벌 역량 강화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지식재산권 보호도 강화해 SW 개발 노력에 정당한 대가를 받도록 정부와 언론이 최선을 다해 도와야 한다고도 강조했다.
‘실패가 용인되는 사회’를 만들 수 있도록 하는 사회적 분위기 조성의 필요성도 주목했다. SW 인재들이 마음껏 도전할 수 있도록 이직에 따른 연금 손실, 창업 리스크 등 경제적 위험을 덜어주는 제도를 예로 들었다. 이 외에도 포상을 통한 자긍심 함양, 직무에 SW 사용능력을 평가하고, 실험·실습에 지원을 강화해 실생활 속에서 자연스런 SW 사용 문화가 정착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SW 산업의 부흥은 경제 활성화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고도 했다. 미국·일본 등 선진국처럼 공개SW, 제도 개선 등을 통해 SW의 매력을 아는 인재를 늘리고, 이들이 벤처창업에 나서 SW 중소기업들이 육성되도록 하는 구조다. 고 교수는 “의사결정이 빠른 소규모 조직에서 나오는 다양한 아이디어를 위해서라도 회사 규모가 작다는 이유만으로 SW 인재들이 피해를 봐선 안된다”고 덧붙였다.
문승일 서울대 교수는 ‘에너지 사용 효율화와 스마트 그리드’에 주목했다. 문 교수는 에너지 자립국 꿈의 실현방안에 대해 소개하며 “세계 어디에도 에너지를 자급하는 국가는 없고, 한국은 에너지 수급 방법을 다원화하고 합리적인 에너지 사용 시스템을 갖춰 해외 의존도를 점차 줄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우선 산업용 전력요금 현실화를 골자로 하는 에너지 요금체계의 합리적 개선을 들었다. 지나치게 싼 전기요금이 에너지 소비 불균형을 만들었고, 이 부담을 고스란히 국민 모두가 분담하고 있는 실정이라는 것이다. 전기의 가치가 재평가될 때 이를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기술이 시장을 찾게 될 것이다.
시스템 측면에 대해서는 “에너지 신기술에 정보통신 기술을 접목시켜 에너지 소비를 효율화하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고 말했다. ‘스마트그리드’를 뜻하는 것인데, 마침 우리 정부도 오는 2030년까지 이를 전국에 구축할 계획을 갖고 있다.
문 교수는 이것의 축소형 비즈니스모델 ‘마이크로그리드’를 적극적으로 지원해야 한다고 했다. 도서지역이나 대학 캠퍼스, 군사시설처럼 독립된 곳에 독자적으로 전력을 공급하는 시스템으로, 막대한 규모의 세계 시장이 창출될 것으로 예상했다.
통일 시대 에너지의 가능성에 대해서도 강조했다. 전력 기반이 취약한 북한에 스마트그리드, 마이크로그리드로 전력을 공급하는 일이 곧 신 시장 개척이기 때문이다. 대륙의 전기와 연결돼 에너지원 수급에도 새로운 길이 생겨, 안정적인 에너지 수급과 새로운 동북아 경제블록이 형성될 것이라고 소개했다. 문 교수는 “한국은 그 중심에서 허브 역할을 하게 될 것이기 때문에 지금부터 민간차원의 교류를 활성화하고, 관련국들과 공조를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신두 서울대 교수는 한국 소재부품 산업 육성을 위해 “대기업과 공존하는 강소협력사들을 키워야 한다”고 말했다. 국내 고용의 90%를 차지하고, 80%를 내수에 기반하는 중소기업들의 대부분이 대기업의 하청 형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중소기업이 변화와 혁신을 통해 자체 생존력을 키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일본의 소재부품 산업을 예로 들었다. 일본이 글로벌 경제위기에도 소재부품 기술력이 뒷받침된 첨단 제조업에 힘입어 글로벌 경제위기를 무사히 넘겼기 때문이다. 이는 오랜 기간 끊임없는 연구개발 끝에 축적된 기술과 장인정신 덕분으로, 세계 일류 일본 대기업들이 이들을 동반자 관계로 대하는 기업 문화도 꼽았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협소한 내수시장과 취약한 소재부품산업, 미흡한 기술축적 등으로 민첩한 후발주자 전략을 택할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면서, “미래 소재부품 시장은 소재부품 공급업체와 대기업 간 개방형 혁신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세계적인 한국 소재부품 기업을 만들기 위해서는 정부차원에서 공공수요를 인위적으로 창출해 국내 신규시장을 여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최소한의 내수시장을 바탕으로 자생력을 키우는 것이 급선무이기 때문이다. 소재 복제를 통한 국산화나 외자유치보다는 시장 확대, 기술 축적 및 신소재 공동개발 등의 전략적 제휴를 위한 해외 글로벌 소재기업 유치 정책도 필요하다고 소개했다.
결국은 소재부품 산업이 활성화돼야 한다는 것이다. 국내 진입장벽을 낮춰 내수기반을 확보하고 국산 경쟁력을 키워야 하기 때문이다. 가장 핵심이면서도 완제품의 성능을 좌우하는 소재가 아니라면 국가공인기관의 평가를 통과한 국산소재를 일정수준 이상 사용하도록 해야 한다고도 덧붙였다. 정부도 기술 및 제품 발전 단계상용화 기술과 원천기술, 주력제품과 첨단융합제품 등으로 차별화된 정책을 추진할 필요가 있으며, 해외 대기업과 경쟁할 수 있는 정부차원의 종합 지원시스템 구축이 시급하다는 것도 이 교수의 조언이다.
이유택 미국 보스턴대 교수는 “변화에 능통하면서 사회적으로 존경받는 기업이 지속가능한 기업”이라고 말했다. 보스턴대에서 MBA를 가르치는 이 교수는 “한국기업은 신속한 의사결정과 조직의 성과에 대한 몰입·충성도에 기반한 역동성이 특징”이라며, “반면 미국기업들은 체계적인 의사결정과 개인의 성과에 대한 몰입, 일에 대한 만족도를 기반으로 한 체계성이 강점”이라고 양국 기업 문화를 진단했다. 이러한 양국 기업의 강점을 적절히 조합하면 체계적 역동성을 가진 좋은 조직문화가 탄생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지속가능한 경영은 이제 경제적 의미를 넘어 환경과 사회적 책임을 포괄하는 ‘책임있는 성장’을 의미한다고 강조했다. 기업들이 책임있는 성장에 동참하도록 시스템적인 접근을 제안했다. 단순한 일회성 기부와 봉사활동이 아닌 기업 구성원들이 책임 있는 성장의 3대 가치를 공유하도록 조직원·경영 프로세스·고객·사회의 목소리를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연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오바마 미국 행정부의 미국 내 제조업 부흥 계획을 면밀히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오바마 행정부는 미국 내 일자리 창출, 무너져가는 중산층의 회복, 금융위기 이후 미국 경제의 성장 동력 제고 등의 목표를 내걸고 제조업 강화 정책을 걸고 있는데, 우리 기업과 한국 경제에도 시사점이 크기 때문이다. 일찍이 제조업에서 서비스업으로 중심축이 이동한 한국이 일자리 창출의 근원과 성장, 혁신의 열쇠인 제조업에 다시 눈을 돌려야 한다는 것이다. “제조업에서의 경험이 기초체력으로, 혁신을 통한 글로벌 시장 진출 노력도 따라줘야 한다”고 이 교수는 강조했다.
이어 최근 회복세인 미국 경기를 우리 기업이 활용하라고 조언했다. 이 교수는 “미국 경기 회복은 수요의 발생”이라며, “한국 기업들에게 미국은 박리다매가 가능한 시장이 아닌, 높은 경쟁력의 고부가가치 제품과 수준 높은 서비스로 승부해야 하는 곳”이라고 접근 전략을 소개했다. 공급망과 관련 서비스, 서비스 체인, 그리고 이러한 가치 창출 활동을 사회적으로 책임있게 수행할 수 있는 가치 체인 구현 능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한국 기업들은 세계적으로 많이 연구대상이 되고 있다”며 “그만큼 사회적 책임이 뒷받침된 성장에 뒷받침 되길 바란다”고 했다. 이를 위해 사회적으로 아픈 부분들에 대한 목소리를 경청하하면서, 국제사회에서 사회적 가치를 창출한다는 큰 비전 하에 사업을 진행한다면 세계의 ?은 리더들에게 바르게 성장한 존경받는 기업으로 기억될 수 있을 것이라 덧붙였다.
이장우 경북대 교수는 “창업을 부흥시켜 강소기업을 육성해야 한다”고 국내 기업환경이 나가야 할 방향을 진단했다. 이 교수는 “기존 경영 패러다임에 매몰되면 차세대 사업을 발굴하기 힘들다”며 “20세기 말 외환위기 속에 겪었던 경험을 살려 새로운 경영이념으로 경영혁신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미래 시대에는 이제까지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제품과 서비스가 있어야 살아남기 때문에, 자신이 속한 생태계를 중심으로 생각하고 가치를 만드는 것, 그리고 제품이 아닌 전략 단위로 경영혁신에 돌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에서 강소기업 탄생이 어려운 이유도 진단했다. 한국은 척박한 환경에도 1000여개의 강소기업들이 활동하고 있다. 이들은 벤처기업 육성을 위한 특별법과 코스닥 시장 개설 직후 탄생한 기업들로 상당수가 정보화 물결을 타고 성공을 이뤘다. 그러나 좁은 내수시장과 대기업 중심의 경제구조에서 이들이 지속가능한 경쟁력을 갖기는 쉽지 않다. 세계시장 진출도 어렵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불공정 경쟁 환경의 완화와 해외 진출을 위한 노력이 뒷받침돼야 한다. 기술 발전에 힘입은 신사업 도전을 위해서도 경제적, 정책적 지원이 따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앞서 고건 석좌교수가 SW산업에서 강조했던 것처럼 “실패에도 재도전할 수 있는 여건과 분위기를 마련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선의의 실패가 경력이 돼야 한다며, 실패의 위험을 분산시킬 수 있는 투자 지원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기업가정신을 부흥시킬 수 있도록 창직과 창업을 지원하는 정책도 마련돼야 한다고 했다. 가령 클라우드 펀딩제도 등 인터넷 플랫폼을 활용해 현장과 밀착되면서 세심한 관리가 가능한 정책대안들을 만들어낼 수 있을 테지만 관련 제도가 미비하다고 지적했다.
창업의 가치에 대해서는 ‘자신의 꿈과 비전에 도전하는 일’이라고 정의했다. 하지만 시장에서 살아남으려면 차별화해야 해 자신만의 독보적인 강점이 있어야 성공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이것은 꾸준한 반복 끝에 얻어지는 것으로, 자신이 진짜 하고 싶은 일이나 분야에서 지속적으로 역량을 축적할 수 있는 사회분위기와 환경 조성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지금의 경제상황은 위기와 기회가 갑자기 폭발할 수 있는 환경”이라며, “장기적이고 구조적인 정책과 단기적이고 심리적인 처방을 동시에 실천해야 한다”고 말했다. 내수 활성화 정책과 경제 체질 개선을 통한 신 성장 동력을 발굴하기 위한 혁신 운동이 전개돼야 한다는 것이다.
정리=
서형석기자 hsseo@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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