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희망 프로젝트] <396> 피케티 신드롬

젊은 프랑스 경제학자가 쓴 책 한 권이 전 세계 지식사회를 뜨겁게 달구고 있습니다. 토마 피케티 파리경제대학 교수가 쓴 ‘21세기 자본’입니다. 소득 불평등과 부의 집중 문제를 깊이 분석해 다룬 토마 피케티 교수의 책은 지난해 말 프랑스에서 처음 출간됐고, 영어판이 나오자마자 세계적으로 ‘분배’ 논쟁을 불러일으키며 ‘피케티 신드롬’이란 말까지 만들었습니다.

21세기자본
21세기자본

600쪽이 훌쩍 넘는 방대한 내용과 각종 도표와 통계자료까지 들어 있지만 널리 읽힙니다.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에 오른 것은 물론이고 하버드대학의 출판부 역사상 101년 동안 한 해에 가장 많이 팔린 책이라는 진기록을 세우기도 했습니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닙니다. 지난 18일 2박3일 일정으로 토마 피케티 교수가 방한하면서 그의 주장을 둘러싸고 논란이 커지고 있습니다.

Q:토마 피케티 교수가 쓴 ‘21세기 자본’은 어떤 내용인가요?

A:피케티 교수는 서문에서 “부의 분배는 오늘날 가장 널리 논의되고 또한 가장 많이 논란을 일으키는 문제 중 하나다. 하지만 우리는 장기적으로 부의 분배가 어떻게 변화했는지에 관해 무엇을 진정으로 알고 있는가?”라고 밝혔습니다.

피케티 교수는 19세기 칼 마르크스가 ‘자본론’을 쓴 이후 계속 논의돼온 문제를 10여년 넘게 연구한 데이터와 수십 명의 동료 연구자들과의 교류 속에 집요하게 파고들었습니다. 3세기에 이르는 20개국 이상의 소득 분배와 과세 자료를 깊이 분석했습니다. 현대 경제성장과 지식의 확산 덕분에 마르크스가 주장했던 것처럼 ‘자본주의 사회의 종말’이 오지 않았지만, 그는 무조건 낙관만 할 수 없다고 바라봤습니다.

피케티 교수는 자본의 수익률이 생산과 소득의 성장률을 넘어설 때 자본주의는 통제하기 어려운 불평등을 심화시킨다고 주장했습니다. 즉, 자본이 스스로 증식해 얻는 소득(임대료, 배당, 이자, 이윤, 부동산이나 금융상품에서 얻는 소득 등)이 노동으로 벌어들이는 소득(임금, 보너스 등)을 웃돌기 때문에 소득 격차가 점점 더 벌어진다는 주장입니다.

실제로 21세기 자본에서 제시한 통계 자료에 따르면 소득에서 자본이 차지하는 비율이 1914~1945년에 급격히 떨어진 이후 다시 증가해 최근 19세기 수준까지 이르렀다고 합니다. 토마 피케티 교수는 1914~1945년에 잠시 상대적으로 평등이 높게 유지됐던 것은 전후 복구를 위해 각국 정부가 부유층의 상속된 부에 상당한 과세를 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습니다.

Q:피케티 교수가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해 제안한 정책은 무엇인가요?

A:그는 자본주의의 역사와 그 발전 동력을 밝히는 데 그치지 않고, 불평등의 악화를 제어하고 해결하기 위해 민주주의 사회가 해야 할 행동을 제시합니다. 21세기 자본의 뒷부분에서 주장한 정책 제안이 21세기 자본을 ‘뜨거운 감자’로 만든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는 궁극적으로 부의 분배는 양극화되고, 상속재산으로 자본이 집중되는 ‘세습자본주의’의 시대를 만들 수 있는 만큼 적절한 정책적 판단이 필요하다고 바라봤습니다. 경제성장률이 자본성장률만큼 높았던 시기에는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지금처럼 경제성장률이 제자리걸음을 걷거나 뒷걸음치는 상황에서 높은 자본수익률로 인해 갈수록 소득불평등이 심화되기 때문입니다. 그 문제 해결책으로 사실상 ‘부유세’ 부과를 주장한 것입니다.

피케티 교수는 극소수의 최고 소득에는 현 수준보다 훨씬 더 높은 세율로 과세하는 것과 누진적인 글로벌 자본세를 대안으로 내놨습니다. 일면 파격적이고 이상적으로 보입니다. 그는 성장을 위해 어느 정도 불평등이 필요하다는 것은 우리 모두 아는 사실이지만, 일부 최상위층에 부가 집중되는 상황은 경제적으로 극단적인 상황이라고 지적했습니다.

2012년 미국 가구의 상위 1%는 전체 국민소득의 22.5%를 가져갔습니다. 노동으로 벌어들인 소득보다 자본 소득으로 부가 집중되는 메커니즘은 재능이나 노력보다는 태생에 따라 삶과 사회가 좌우되도록 할 것이며, 이는 민주주의 사회의 근간을 이루는 능력주의를 근본적으로 잠식할 것이라고 우려한 것입니다. 피케티 교수는 스스로 자본주의 자체를 비난하는 데에는 관심이 없으며, 공정하고 민주적인 사회질서를 이루기 위한 적절한 제도와 정책들을 만드는 데 관심이 있다고 재차 강조합니다.

Q:한국 사회에 던진 메시지는 따로 없나요?

A:피케티 교수는 방한 중에 현재 책에는 한국에 대한 언급은 없지만, 나중에 개정판을 내게 된다면 반영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습니다. 실제로 그의 방한을 앞두고 우리나라 기업과 경제학계에서도 이례적으로 학술대회가 열리고 찬반양론의 격론이 벌어졌습니다. 한국도 경제성장률이 최근 둔화되고 소득양극화가 심화되면서 분배 문제를 더 이상 과거와 같은 문제해결방식으로 놔둘 수는 없게 됐습니다.

피케티 교수는 강연에서 한국의 소득불평등 정도가 점점 심해지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는 국세청 자료를 활용해 소득 분위별 소득 집중도를 연구한 김낙년 동국대 교수의 논문을 거론하면서 데이터만 보면 한국은 미국만큼은 아니지만, 유럽이나 일본보다는 빠르게 소득 불평등도가 높아진다고 분석했습니다.

또 그는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사교육비 지출이 가장 높은 국가 중 하나라면서 소득 불평등 완화를 위해 공공 교육 투자 확대를 제안했습니다. 그는 한국의 높은 사교육비 지출실태를 지목하면서 교육에서 소외되는 계층이 없도록 공공 교육제도를 마련하는 게 중요하고, 교육 투자는 성장률의 상승도 가져올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소수를 상대로 하는 엘리트 교육의 강화는 소득 불평등을 확대할 수 있으며 공공 교육의 강화와 투자를 재차 강조했습니다.

관련도서

◇‘21세기 자본’ 토마 피케티 지음, 장경덕 외 옮김 이강국 감수, 글항아리 펴냄.

직접 읽어보는 게 가장 좋다. 2008년에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폴 크루그먼 프린스턴대 경제학 교수는 21세기 자본은 올해, 아니 향후 10년 동안 가장 중요한 경제학 저서로 자리매김할 것이라고 단언했다. 폴 크루그먼 교수는 토마 피케티 교수가 소득이 소수의 경제 엘리트에게 집중되는 것을 보여주는 데 멈추지 않으며, 부유층 안에서도 상속자들이 경제주도권을 쥐고 있으며 재능이나 노력보다는 태생이 중요해진다는 점을 드러낸다고 추천사를 밝혔다.

◇‘장하준의 경제학 강의’ 장하준 지음, 김희정 옮김, 부키 펴냄.

21세기 자본에 바로 도전하기 어렵다면 같이 읽어볼만한 책이다. 세계적 경제학자이자 영국 케임브리지대 경제학과 교수인 장하준이 쓴 ‘지금 우리를 위한’ 새로운 경제학 교과서. 30여년간 유일한 경제학적 진리로 군림하면서도 금융 위기에 아무 해법도 내놓지 못하는 신고전주의 경제학에서 벗어나 다양한 경제학적 접근법을 소개해 경제와 경제학을 새롭게 보게 해 준다.

주최:전자신문 후원: 교육과학기술부·한국교육학술정보원

김명희기자 noprint@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