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 세상의 절반을 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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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로마제국은 불안합니다. 황제 세습이 완벽하게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플라키디아 황후는 발렌티니아누스 황제의 통치 공간과 격절(隔絶)되고 싶지 않았다.
“맞다. 그런데 황제의 가족 문제로 가족을 쳐내면 우리는 점점 왜소해지지. 호노리아가 무엇을 하겠니? 너의 황제 자리를 탐내기는 했지만, 기껏 한다는 짓이 금방 들통날 멍청한 연애놀음이지.”
그러나 발렌티니아누스 황제는 자신의 통치 공간의 문을 닫아버렸다.
“멍청한 것들이 엄청난 짓을 저지르기도 합니다. 아틸라에게 로마의 절반을 주겠다는 편지를 쓰다니요?"
플라키디아 황후는 이제 아들이 닫은 문을 열고 다시 들어가려 했다.
“내가 가두겠다. 평생 그 어떤 곳도 갈 수 없어. 원로원에 책잡히는 짓을 하면 안 된다. 그들이 암살자를 찾으려 한다면 찾게 내버려 두어라. 그들은 그저 정치놀음을 하고 있을 뿐이야. 그들이 원하는 것은 호노리아의 목이 아니다. 바로 너다. 아에테우스가 그 선동에 설 거다.”
플라키디아 황후는 발렌티니아누스 황제의 손을 잡았다. 어머니의 안정감이었다.
“황궁의 지하 감옥에 가둬야겠지. 장래의 로마는 너의 자손이 대를 이을 것이다.”
발렌티니아누스 황제는 플라키디아 황후에게 자신이 통치하는 공간의 문을 열고 곧바로 닫아버렸다. 앞으로 아무도 그 문을 열지 못할 것이다.
폭풍이 오려는지 바람이 펄럭였다. 숲의 나무들이 웅웅거렸다. 나무에 매달아둔 말머리가 웅웅 바람이 되어 울었다.
“그 황금검을 가진 자가 세상의 주인이라고 하던데? 우리가 아는 모든 세상은 그 황금검의 주인이 통치한다는거야.”
누군가 떠도는 바람처럼 떠들었다.
“그런데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는 거야. 황금검의 행방을 아무도 모른다는 거지.”
떠드는 바람은 폭풍으로 쳐들어오는 바람과 충돌하고 있었다.
“그럼 우리 아틸라님이 그 주인이 아니라는 거야? 전설이 말해준 주인이 아틸라님이 아니란 거야?”
떠드는 바람은 훈의 전사들이었다. 그들은 불온하고 불안하게 떠들었다. 그 어디쯤 아틸라는 어둠에 묻혀 그 소리를 듣고 있었다. 그에게 폭풍으로 쳐들어오는 바람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아틸라는 이제 더 크고 더 넓은 그리고 새로운 질감의 시대의 벌판으로 나아가고 싶었다. 시대의 중원으로 나아가고 싶었다.
아틸라는 에르낙을 불렀다. 배반의 전형(典型)이 존재하지 않는 에르낙은 눈썹이 조각조각 쪼개져 있었다. 이제 숭숭했다. 그는 세월에 먹히고 있었다. 늘 그렇듯이 그는 말없이 있었다.
“검이 오지 않고 있다. 그 검은 우리 집안의 검일 뿐 아니라 훈의 검이다. 내가 에첼을 믿고 그 검을 신라에 보냈지만, 그 검이 오지 않고 있다. 그 검만이 훈의 전사들 뿐 아니라 내가 정복한 모든 땅의 사람들이, 또 아직도 건방진 로마인들이 나에게 전설을 완성해 줄 것이다.”
에르낙은 여전히 말이 없었다. 오늘따라 아틸라는 말이 많았다.
“그 훈의 검이다. 다른 검은 필요치 않다.”
에르낙이 잦은 기침을 했다. 그는 아틸라 곁에서 톱니처럼 일해 왔다. 그래서 그는 아틸라에게 검의 상징체계를 말할 수 있었다.
“검의 문제가 아닙니다.”
아틸라가 에르낙을 응시한다는 것을 감추지 않았다.
“검의 문제가 아니라면 전설의 문제라는 말인가?”
에르낙은 인수(仁壽)의 경지에 있었다.
“전설의 문제도 아닙니다. 검도 사람이 만든 것이고 전설도 사람이 만든 것입니다.”
아틸라는 작고 찢어진 눈동자는 더욱 작아지고 더욱 찢어졌다.
“전설을 사실로 만드시면 됩니다. 전사들 사이에서, 정복지의 사람들 속에서 그리고 건방진 로마인들 사이에서 떠도는 슬픔과 기쁨과 환상과 열망의 전설을 슬픔과 기쁨과 환상과 열망의 사실로 만드시면 됩니다.”
아틸라의 심장은 에르낙의 눈썹처럼 쪼개져있었다. 숭숭했다. 그러나 아틸라의 심장은 세월에게 먹히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위대함에 먹히고 있었다.
“나는 내 아버지의 검, 훈의 검으로 세상을 통치할 것이다. 신라에서 검이 와야 한다.”
“제가 검의 전설을 준비하겠습니다.”
아틸라는 비로소 자신의 위대함이 누적되고 있음을 알았다.
호노리아 공주는 아에테우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의 입술은 오늘따라 핏빛으로 붉었다. 살기를 몰고 다니며 암컷 냄새를 강렬히 풍기는 그녀는 조마조마하게 떨고 있었다. 드디어 아에테우스가 나타났다. 훤칠한 키와 떡 벌어진 어깨 그리고 딴딴한 허벅지가 그녀의 정절도 없는 무방비의 색기를 자극했다. 아에테우스는 공손했다.
“공주님.”
호노리아 공주는 다짜고짜 아에테우스의 물건을 손에 잡았다.
글 소설가 하지윤 lif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