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강태의 IT경영 한수]<16>직장생활, 어떻게 하실거예요?

[이강태의 IT경영 한수]<16>직장생활, 어떻게 하실거예요?

L군, 우선 치열한 경쟁을 뚫고 우리 회사에 입사한 것을 충심으로 환영합니다. 이태백이 즐비한 우리 사회에서 이렇게 번듯한 IT회사에 취직을 하게 된 것 뒤엔 L군의 피눈물 나는 노력이 있을 겁니다. 이른바 스펙 쌓기를 위해 놀라운 대학 성적과 해외 어학연수는 필수고 각종 봉사 활동과 동아리의 회장을 맡아 리더십을 연마했을 겁니다. 이제 너도나도 스펙 쌓기를 하다 보니 웬만해서는 눈에 띄지 않아 사하라사막을 가고, 남극도 다녀온다고 들었습니다. L군도 그렇게까지 했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어쨌든 이제 좋은 직장을 잡았으니 결혼도 해야 하고, 손자·손녀도 낳아 부모님께 효도해야겠지요.

여러분을 면접 보신 임원들이나 사장님도 다 그렇게 직장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솔직히 여러분 스스로도 지금 회사 일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잘 모를 겁니다. 지금은 그냥 두 손 불끈 쥐고 가르쳐만 주면 열심히 배워 일하겠다는 의지만 있을 겁니다. 여러분의 선배들도 다 그렇게 시작했습니다. 이제 곧 신입사원 교육이 있을 겁니다. 첫 시간에는 사장님의 훈시가 있고 곧 임원·팀장·선배들이 돌아가면서 자기 부서의 업무를 설명해 줄 겁니다. 업무 내용은 다 다르지만 아마도 각자의 업무가 별거 아닌 것처럼 보여도 자기 부서 없으면 회사가 안 돌아간다고 얘기할 겁니다. 모든 강사들이 다 그러니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일단 들어두세요. 신입사원 교육이 끝나면 각 부서에 배치돼 부서 선배들과 인사하고 저녁에 환영회하고, 다음날 아침 일찍 출근을 할 겁니다. 여러분의 선배도 다 그렇게 시작했습니다. 부서에서 또 업무를 가르쳐 주기 시작합니다. 어떤 선배는 차근차근 잘 설명해 줘서 좀 알아듣겠는데, 어떤 선배는 대충대충 얘기해 줘서 알듯 말듯 할 겁니다.

대충대충 설명하는 선배가 끝에 하는 말이 업무라는 게 별것 아니고 시간이 다 해결해 준다고 하지 않던가요? 만약 선배가 정말 그렇게 얘기했다면 제가 예전에 만났던 그 선배가 다시 환생해서 거기에 가 계신 겁니다. 몇 달이 지나고 나면 부서 업무는 대충 알겠고, 이제 전체 회사 임직원 간 역학관계가 눈에 보이기 시작할 겁니다. 사장과 회장의 관계가 안 좋다느니, 사장 바뀌면 김 전무도 같이 나갈 거라느니, 뭐 그런 얘기들입니다. L군 입장에서는 먼 곳에서 들리는 총소리라 별로 실감이 안 나지요? 그보다는 우리 팀장이 바뀌는지, 우리 본부장은 어떻게 되는 지가 더 중요하겠지요. 낮에는 같이 담배 피우거나, 커피 마시면서, 밤에는 치맥을 먹으면서 사무실 내에서보다는 더 많은 정보를 얻게 될 겁니다. 제 기억에는 이런 뒷담화의 대부분을 무시해도 사회 생활하는 데 별 지장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시간은 정말 빠르군요. 벌써 1년이 흐르고 또 신입사원들이 들어왔습니다. 검정색 정장에 수줍은 듯 얌전을 떠는 모습을 보면서 나도 저랬었지 하는 생각이 드실 겁니다. 거의 같은 매일의 생활이 반복될 겁니다. 어느 때는 재미있게, 어느 때는 마지못해서, 어느 때는 무지 바쁘기도 하고 어느 때는 이렇게 한가해도 되나 싶을 때도 있을 겁니다. 그리고 관리자가 되면 이제 실무는 손 떼고, 결재하고 보고하고 회의 참석하는 일이 대부분입니다. 그 중에서도 회의 참석하는 시간이 대부분일 겁니다. 회의라는 것이 집단적으로 시간 때우는 일이라는 것을 깨닫게 될 때쯤이면 이제 임원이 되실 때가 된 겁니다. 그래도 그동안 열심히 한 보람이 있어 어느 날 사장님이 부르셔서 축하한다고 하십니다. 정말 감사할 따름입니다. 회사에서 차도 나오고 비서가 전화도 받아주고 친구들이 너 출세했으니 술 사라는 전화도 옵니다. 이런 게 다 싫지는 않을 겁니다. 임원이 되고 난 뒤 정말 개인 생활 없이 열심히 전력투구하실 겁니다. 어떻게 얻은 자리인데 오래오래 하셔야지요. 또 시간이 흘러 그동안 사장님도 몇 분이 왔다 가시고 나도 체력이 예전 같지 않음을 스스로 느끼게 됩니다. 긴급한 회의에 내가 빠지기 시작하더니 내 스스로 내가 회사 내에서 중요한 인물이 아니구나 하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밑에 임원이 사장실에 먼저 가서 보고하는 일이 심심치 않게 일어납니다. 처음에는 화도 내지만 사장이 시킨 것을 알고 난 뒤부터는 이제 알아서 하라고 체념합니다. 그러면 창가에 서서 먼 산을 보면서 그동안의 회사 생활을 반추하는 시간이 많아지게 됩니다. 그러던 어느 날 사장님이나 인사담당 임원이 차 한잔 하자고 합니다. 아마 한두 해만 더 했으면 하는 마음이 들 겁니다. 그리고는 비서들이 만들어 준 앨범과 다른 임원들이 주는 꽃다발을 들고 회사를 나오게 됩니다. 바로 엊그제 신입 사원으로 들어 왔던 바로 그 문을 퇴임 임원이라는 이름으로 나서게 됩니다. 너무 섭섭해하지 마세요. 여러분의 모든 선배들도 다 그렇게 끝났습니다.

L군! 어떤 선배는 10년 만에 어떤 선배는 30년 만에 그렇게들 나왔습니다. 기간은 다르지만 거치는 과정은 다 똑같습니다. 잘 죽기 위해서는 잘 살아야 합니다. 아직 한참 남았지만 앞으로 어떻게 잘 살 생각이십니까?

CIO포럼 회장 ktlee777@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