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속 과학, 이번주엔]최초의 인공위성 스푸트니크 1호 발사

세계 최초의 인공위성 스푸트니크 1호가 1957년 10월 4일 카자흐소비에트 사회주의공화국(현 카자흐스탄) 코누르 기지에서 R-7 로켓에 실려 발사됐다. 우주시대 서막과 미국·소련 간 본격적인 우주 경쟁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역사 속 과학, 이번주엔]최초의 인공위성 스푸트니크 1호 발사

스푸트니크 1호 개발은 1954년 12월 17일 소련 로켓 기술자 세르게이 코롤료프가 디미트리 안토니오우 국방산업 장관에 인공위성 개발을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다음해 8월 8일 소련 공산당 정치국이 인공위성 제작 계획을 승인하면서 본격화했다.

러시아어로 ‘동반자’라는 뜻을 가진 스푸트니크 1호는 직경 58㎝, 무게 83.6㎏ 금속구 형태로 제작됐다. 4개의 안테나, 라디오 송신 장치, 내부 측정기와 2대의 송신기를 갖추고 지구에 우주 시대 서막을 알리는 첫 메시지를 보냈다.

회전 궤도는 지구에서 가장 가까운 근지점이 228㎞, 지구에서 가장 먼 원지점이 939㎞인 타원 궤도였다. 비행 속도는 시속 2만9000㎞를 기록했다. 96분마다 한 번씩 지구를 회전하다 발사 석달 만인 1958년 1월 4일 대기권으로 진입, 불타 사라지며 수명을 다했다.

짧은 수명이었지만 이른바 ‘스푸트니크 쇼크’ 파장은 컸다. 특히 1955년 7월 인공위성 발사를 선언한 미국이 받은 충격은 대단했다. 소련이 1호 발사 한 달 뒤인 1957년 11월 3일 스푸트니크 2호에 개를 태워 우주로 보낼 때까지도 인공위성을 발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미국은 스푸트니크 1호 발사 넉달 뒤인 1958년 1월 31일에야 무게 13㎏짜리 소형 인공위성 익스플로러 1호를 발사했다.

미국 등 서방국가가 받은 충격은 과학과 교육에 대한 과감한 투자로 이어졌다. 1958년 대통령 직속기구인 미국 항공우주국(NASA)을 창설됐다. 장거리 미사일 공격에 대한 위기감은 인터넷 개발 계기가 됐다. 미국은 본토 주요 통신망이 파괴되는 상황에 대비해 케이블과 무선 통신망을 활용한 통신수단을 개발했는데, 이는 최초의 인터넷인 알파넷(ARPANET)이었다. 냉전의 산물이었던 우주 경쟁이 과학 발전 초석을 다진 셈이다.

송준영기자 songjy@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