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이 되면 스웨덴 한림원에서 발표하는 노벨과학상 수상에 은근히 기대하면서 우리 나름의 수상후보자를 예상해 보곤 한다.
필자도 올해 노벨과학상 수상자에 우리나라 과학자가 포함되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하지만 올해 우리나라가 노벨과학상을 받지 못하더라도 크게 실망할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다. 연구 수준도 높아지고, 과학자를 배려하는 문화 등만 정착되면 가능성이 커 보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우리나라가 노벨과학상 수상자를 배출하기 위한 대책으로 논의한 주요 사항들은 대부분 하드웨어적이었다.
우리나라 기초연구 수준이 선진국에 비해 뒤떨어졌으므로 기초과학을 진흥하기 위해 투자를 확대한다거나 노벨과학상 수상자를 분석해 보면 스승과 제자 사이에 강한 연관관계가 나타나므로 과학영재를 발굴해 노벨과학상 수상자 연구실에 유학을 보내야 한다는 제안 등이다. 우리나라 기초연구성과를 적극 알릴 수 있도록 우리나라와 스웨덴과의 과학 외교를 강화하는 것도 방안으로 제시됐다. 이외에도 여러 가지 방안들이 제안되었고 이 중에는 실제 정책으로 채택돼 집행되기도 했다.
우리나라가 과학기술에 투자한 연륜이 짧아 기초과학 수준이 낮은 것은 누구나 인정하는 사실이다. 하지만 지난해 세계대학랭킹센터가 선정한 100대 대학평가에서 서울대가 40위를 기록했다. 서울대가 세계대학 순위 40위로 평가를 받았다면 서울대 교수도 노벨과학상을 수상하는 것은 당연한 것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센터가 대학평가에 사용한 지표는 교수진의 질, 학술지에 게재한 논문 수, 특허 수 등 7개 항목으로 대학의 실질적 역량을 나타내고 있다.
서울대는 학술지에 발표한 논문 수는 48위인데 비해 특허 수는 MIT, 존스홉킨스 다음으로 공동 4위이었다. 특히 발표된 논문의 인용지수는 76위로 하위 그룹에 속했다. 이것은 서울대가 종합대학교로써 새로운 지식을 생산하는 순수 학문보다는 생산된 지식의 응용에 중점을 둔 산업과 기술 중심의 대학 기능을 해왔음을 의미한다.
서울대는 스스로 새로운 지식을 창출하기보다는 수입한 선진 지식을 학생들에게 전수해 기업에서 활용하는데 만족했다. 특히 최근에는 국립대에서 법인체로 전환되면서 조직을 이끌어갈 선장을 선임하는데 큰 갈등을 겪었다. 이 같은 서울대의 조직문화와 새로운 지식을 창출하는 능력으로는 우리나라가 노벨과학상을 배출하는데 한계를 보일 수밖에 없다. 더욱이 서울대는 우리나라 모든 대학이 발전하는데 나름 길잡이 역할을 해왔다. 그런 서울대가 이 정도라면 현실은 더 답답해진다.
일본은 2000년대 들어 노벨과학상 수상자를 괄목할 정도로 배출하고 있다. 일본이 1980년대부터 추진한 기초과학진흥정책에 힘입은 것이지만 연구활동에 대한 문화적 측면이 더욱 큰 힘이 작용한 것으로 보여진다.
첫째 일본은 학문을 하는데 수파리(守破離)모델이 하나의 문화로 정책되어 있다. 이 모델은 일본불교의 선의 가르침 모델에서 나왔는데 우선 스승의 가르침을 따르고(守), 일부러 그 가르침을 깨뜨리며(破), 마지막으로 독자적으로 발전시킨다(離)는 세 단계 스텝으로 독자적인 영역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이다.
반도체 터널효과를 규명해 1973년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한 에자키 레오교수가 후학들이 노벨과학상을 얻기 위한 5개 조항 중 첫째인 “지금까지 해온 일에 집착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바 있다.
둘째는 연구업적이 뛰어난 과학자는 연구활동에 전념할 수 있도록 배려한다는 점이다.
노벨과학상분야에서는 교토대가 도쿄대보다 압도적 우위를 보이고 있다. 그 이유 중 하나로 도쿄대 교수는 국가발전을 위한 정책자문활동으로 연구에 집중할 시간이 없다는 점을 들고 있다.
우리나라가 진정으로 노벨상을 수상하기를 기대한다면 이제부터라도 우리도 선배 유학자들이 격물치지(格物致知)의 정신에 입각해 학문에 정진했던 학문하는 모델을 광범위하게 확산해야 한다.
연구를 잘 한다는 평판 있는 과학자에 대해서는 더욱 연구에 정진할 수 있도록 정부가 적극적으로 배려해 주어야 한다.
학문하는 문화가 조성돼 기초과학 수준이 한 단계 더 도약해 새로운 지식창출이 이루어질 때 노벨과학상은 저절로 나오지 않을까 싶다.
석태원 기술탐색데스크 전문위원 k037stw@kins.r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