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현의 미디어 공명 읽기]<34>오디오북

읽는 책이 아니라 듣는 책. 오디오북은 1930년대 미국 정부가 ‘말하는 책’이라는 시각 장애인 복지 사업으로 시작됐다. 그러나 오디오 카세트테이프와 같은 저장매체를 활용하는 대중용 미디어로 발전하면서 1970년대부터 ‘오디오북’이라는 이름이 널리 사용되기 시작했고, 1994년 미국오디오출판사협회가 설립되면서 업계 표준 용어로 정착했다.

포켓형 축음기로 작품을 감상하는 산보자
포켓형 축음기로 작품을 감상하는 산보자

오디오북 발전에는 카세트테이프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지만 이후 CD, DVD와 같은 디지털 저장매체를 활용했다. 2000년대 이후에는 다운로드를 가능케 해주는 인터넷이 주요한 오디오북 매체로 부상했다. 미국의 경우 현재 CD와 다운로드 방식(mp3, wma, aac 등의 포맷)의 비중은 각각 53%, 41%로 CD는 감소하는 추세인 반면 다운로드 방식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그러나 매체와 상관없이 장르가 확대되면서 판매 부수는 매년 두 배씩 성장하고 있고 오디오북을 이용하는 ‘독서’ 인구의 수도 지속적으로 늘고 있다.

이와 같은 성장은 모바일 미디어 발전 덕분이었다. 카세트테이프의 경우에는 워크맨이, 다운로드 방식에는 아이폰으로 대표되는 모바일 오디어 플레이어, MP3 플레이어가 있었다. 읽기 관습이란 측면에서 보면 오디오북 이용은 시각에서 청각으로의 전환이다. 전통적인 읽기는 음독이든 묵독이든 전적으로 눈에 의존했지만 이제 귀가 눈을 대신하면서 인지적 부담이 줄어듦은 물론이고 눈을 활용해 다른 일을 처리할 수도 있게 되었다. 이른바 눈의 해방!

오디오북을 만들기 위해서는 성우와 같이 인간이 직접 녹음을 하거나 음성 합성을 통해 인공적인 소리를 만들어내야 한다. 음성 합성이 미래의 오디오북 제작 방식이 될 것이라는 예측이 있지만, 기계가 아닌 사람이 책을 읽어준다는 매력을 대신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1892년 영국 왕립학회에서 예술 및 과학기술 비평가 아서 블랙크로스는 축음기의 등장이 문학과 저널리즘에 미치는 영향을 주제로 강연을 했다. 그의 강연을 소개한 옥타브 우잔의 1994년 ‘책의 죽음’이라는 글에 따르면, 블랙크로스는 축음기를 활용한 오디오북이 등장해 종이책을 대체하게 될 것이라고 예견했다. 그는 단순히 매체만 변하는 것이 아니라 책의 제작, 유통, 소비 모두가 바뀔 것이라고 보았다.

그의 예측은 매우 흥미롭다. 문학가는 더 이상 종이에 작품을 쓰지 않고 녹음기 앞에서 자신의 글을 읽을 것이고, 저자의 목소리가 저자임을 증명해주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독자가 작가의 목소리를 직접 듣는다!

유통은 목소리가 녹음된 원통형 실린더의 보급, 판매로 이뤄지게 될 것이라고 보았다. 이는 매체만 바뀌었을 뿐 CD, DVD와 같은 현재의 저장매체와 다르지 않다. 블랙크로스의 예측 중 획기적인 것은 다양한 소비 방식에 있다. 산보자는 이동형 축음기를 통해 이른바 ‘포켓형 축음기 문학’을 듣게 될 것이라고 예상했는데, 이는 현재의 소비 방식 그대로다. 더 나아가 블랙크로스는 모바일 축음기가 없더라도 대중교통수단, 공공장소, 대기실, 호텔 홀이나 객실에 설치된 ‘축음기 데크’를 통해 작품을 들을 수 있을 것이라고 보았다. 우잔의 글에 실린 삽화들 중 하나는 열차 좌석 옆에 설치된 데크에 이어폰을 끼고 작품을 감상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심지어 공공장소에는 동전형 데크가 설치될 것이라고 예상했다고 한다.

블랙크로스가 ‘책의 죽음’이라 단정한 것은 틀렸지만 축음기가 등장하고 얼마 되지 않아 오디오북의 등장과 사회적 활용을 정확히 예견한 것은 놀랍기 그지없다.

이재현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leejh@sn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