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옆집 석유화학 업계는 요즘 힘들다고 정부가 불러서 다독여 주기도 하던데, 석유산업 침체로 타격이 더 큰 정유 업계는 유류세 내려달라는 말 나올까 무서워 부르지도 않습니다. 국가 기간산업인 정유산업이 3년째 적자에 허우적대 (정부가) 걱정할 만도 한데 알아서 하라는 식이죠.”
정부가 얼마 전 석유화학 업계 CEO를 불러 간담회를 열었을 때 들었던 정유 업계 관계자의 푸념이다. 이 말에는 석유화학 업계보다 솔직히 더 힘든 정유 업계 하소연은 정부가 들어주지도 않는다는 야속함이 묻어 있다.
미국의 값싼 셰일오일·가스 공급확대, 가격 경쟁력을 갖춘 중국·중동 지역 석유정제 설비확충 요인으로 수출시장에서 국내 정유사의 입지는 더 줄어들었다. 내수마저 경기불황 여파로 위축된 데다, 그나마도 정부의 알뜰주유소를 내세운 석유유통 경쟁촉진 정책 때문에 적정한 수익을 내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정부는 2011년 석유제품 유통구조 개선을 위해 도입한 알뜰주유소 확대, 석유제품 전자상거래, 혼합판매 등 3대 유가대책을 4년째 고수하고 있다. 이에 대해 정유 업계에서는 정부가 기름 값을 잡아보겠다고 세금을 투입해 민간시장에 개입했지만 정유사 경영난 심화와 폐업 주유소 양산에만 기여한다고 지적한다. 수출부진에 내수시장에서는 정부 정책이 더해져 정유 업계 전반의 어려움을 가중시키고 있다는 볼멘소리가 나온다.
석유 전문가는 최근 국내 기름 값 하락세는 정부 정책 덕분이라기보다 국제유가와 환율하락 영향이 크다고 밝힌다. 정유 업계는 정부가 기름 값이 비쌀 때 세금을 투입해 석유 유통시장에 개입한 것이 섭섭하지만 반기를 들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시장 상황이 바뀌어 아픈 소리하는 요즘 정부가 못들은 체하는 것은 야속하게 느낀다. 수년째 정유사를 힘들게 하는 석유 유통정책이라도 철회해줬으면 하는데 아무런 움직임이 없어 답답하다.
정유산업 위기는 단기적인 현상이 아닌, 앞으로 수년 더 이어질 수 있다는 관측이다. 지금은 우리 정유산업이 국제경쟁 대열에서 도태될지, 살아남을지를 가르는 중요한 기로다. 정부는 정유산업이 대표 수출산업 위치를 다시 회복할 수 있도록 채찍을 멈추고 당근을 줘야 할 때다.
함봉균기자 hbkone@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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