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사이트]특허소송 대리의 전문성 강화

오규환 대한변리사회 부회장
오규환 대한변리사회 부회장

이순신 장군은 승전이 불가능해 보이는 명량해전에서 울돌목의 물살 변화를 잘 알고 이를 이용하는 전법을 구사함으로써 역사에 길이 남는 대승을 거두었다. 삼국지 적벽대전에서는 손권과 유비의 연합군이 풍향을 알고 이를 이용한 화공을 구사했다고 한다.

마찬가지 원리로 특허권을 둘러싼 분쟁에서는 특허를 잘 알고 있어야 적절한 공격과 방어가 가능하다. 변리사는 특허를 잘 알고 있는 전문가다.

국가지식재산위원회(이하 지재위)는 특허소송 대리의 전문성을 강화하기 위해 특허변호사 제도를 도입하는 방안을 지난해 11월 발표했고, 정부는 제도 시행을 준비 중이다.

그렇다면 이 시점에서 특허소송 대리 제도를 개선하기 위한 올바른 처방은 무엇인가.

특허 관련 대리에는 특허의 형성, 변경, 소멸에 관한 대리와 특허침해소송 대리가 있다. 전자는 특허청의 심사·심판과 특허법원 및 대법원의 심결취소소송에서의 대리다. 심사·심판을 대리하는 업무는 변리사만이 할 수 있으나 변호사에게는 변리사 자격이 거의 자동적으로 부여되므로 실질적으로 변호사도 그러한 대리 업무를 할 수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심결취소소송 대리는 변리사 또는 변호사가 할 수 있고 수요자가 자신의 사정에 따라 변리사 또는 변호사를 대리인으로 선택한다.

반면에 현행 실무상 특허침해소송 대리를 할 수 있는 직군은 변호사뿐이고 변호사라면 누구라도 그러한 대리를 할 수 있는 법적 자격을 갖는다. 하지만 많은 변호사는 특허 실무와 과학기술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까닭에 특허실무 및 기술 전문가인 변리사의 지원을 받아 소송을 수행해 왔다. 이러한 현실은 개선돼야 마땅하고 지재위도 그 필요성을 인식했다.

지재위가 특허소송의 전문성 강화를 위해 특허변호사 제도를 도입한다고 발표했으나 제도의 구체 내용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다만 지재위의 특허변호사 논의에는 우리나라의 로스쿨 체제를 통해 매년 이공계를 전공한 법률가가 다수 배출될 것이라는 점도 고려됐다고 한다. 그러나 로스쿨을 수료하는 데는 비용이 많이 든다. 또 로스쿨 수료자라고 해서 특허 전문성을 갖고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러므로 기존 자격 제도의 기본 틀을 활용해 필요한 특허 전문인력을 저비용, 고효율로 양성해 낼 수 있다면 새로운 제도를 도입하기보다는 기존 제도의 안정을 유지하면서 로스쿨 출신을 그 제도 내에 융화시키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로스쿨 출신에 초점을 맞춰 제도를 변경하는 것은 자칫 목적과 수단을 전도시킬 위험이 있다.

지재위의 특허변호사 논의에는 미국의 ‘특허변호사(patent attorney)’ 제도가 많은 참고로 된 듯하다. 미국에서 일반 변호사는 법원에서 당사자를 대리할 수 있지만 특허청에서 특허 절차 대리를 할 수 없다. 미국 특허청에서 특허 절차 대리를 하기 위해서는 ‘특허대리인(patent agent)’ 자격을 별도로 취득해야 한다. 변호사 자격과 특허대리인 자격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사람을 특허변호사라고 부른다. 미국 특허대리인은 미국 특허청에서 특허 절차 대리를 할 수 있지만 특허에 관한 사안이더라도 법원에서는 대리 행위를 할 수 없는데 이 점에서 특허법원 및 대법원에서 대리가 가능한 한국 변리사와 크게 상이하다.

우리나라가 미국식 특허변호사와 특허대리인 제도를 그대로 모방하려는 것인지 어떤지는 불분명하다. 그러나 우리나라에 특허변호사 제도가 도입된다고 하더라도 특허실무 또는 과학기술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일반 변호사도 여전히 침해소송 대리권을 가진다면 지금까지 침해소송 대리 제도에 존재하던 문제점은 장래에도 여전히 남게 된다.

세계 각국은 특허침해소송 대리 제도를 개선해 왔지만 최근 수십년 동안 우리나라와 유사한 제도에서 미국식 제도로 변경한 국가는 없다. 일본 등에서 볼 수 있듯이 각국은 한국의 변리사에 상응하는 자격사의 침해소송에서 역할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제도를 개선하고 있다. 특히 유럽연합(EU)은 EU 전체에서 효력을 가지는 특허소송을 관할하는 통합특허법원을 설립하게 되는데 EU 특허소송 자격증을 갖는 유럽변리사는 통합특허법원에서 단독으로 특허침해소송 대리를 할 수 있다.

대조적으로 우리나라에서는 법원이 변리사법 제8조의 ‘소송대리’를 협소하게 해석해 변리사의 침해소송 대리를 부정함으로써 세계적 흐름에 역행하고 있다.

이에 변리사법을 개정해 변리사의 침해소송 대리권을 명문화하려는 움직임이 있다. 특허침해소송의 핵심은 특허명세서를 해석하고 특허가 유효한 것인지, 침해혐의 기술이 특허권의 범위에 속하는지를 판단하는 것으로서, 이는 변리사가 통상적으로 다루고 있는 사안과 본질적으로 동일한 성격을 갖는다.

그러므로 변리사들은 특허침해소송 대리를 할 준비가 돼 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정부는 먼저 변리사에게 특허침해소송 대리권을 인정함으로써 현행 제도의 문제점이 해결될 수 있는지를 살펴보고, 만약 문제점이 해결될 수 있다면 변리사의 침해소송 대리권을 인정하는데 힘써야 한다. 역량 있는 인력이 그에 걸맞는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수요자를 위하고 국가 경쟁력을 높이는 길이다.

오규환 대한변리사회 부회장 aokw@hot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