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에서도 교통사고를 심층적으로 조사하고 이 정보를 공유할 수 있는 길이 열린다. 교통사고를 줄이는 것은 물론이고 자동차 기술을 발전시키는데도 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그러나 이를 위해서는 관련 기관 및 업체 간 협력이 필수인 것으로 지적됐다.
교통안전공단 자동차안전연구원은 연세대학교, 한국기술교육대학교와 공동으로 ‘한국형 교통사고 심층조사분석 체계 구축’ 사업을 진행한다고 30일 밝혔다.
이 사업은 교통사고를 지금보다 더욱 과학적이고 체계적으로 조사하고 이를 데이터베이스(DB)화하는 것이 골자다. 이 정보를 쉽게 공유할 수 있도록 해 교통 규제나 도로 구조 개선, 자동차 신기술 개발 등에 활용하기 위한 것이다. 궁극적으로 교통사고를 ‘제로화’ 하는 게 목표다.
국내 교통사고 조사는 선진국에 비해 체계적이지 못하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조사항목이 104개로 주요국 가운데 미국(130개) 다음으로 많은 수준이지만 불필요한 내용이 많다는 지적이다. 더욱이 주관식나 단답식이 많아 작성자 주관이 개입할 가능성이 높다. 반면 영국은 조사항목이 76가지에 불과하지만 핵심 사고원인을 파악하는데 어려움이 없고, 조사양식이 코드화돼 작성이 쉽고 객관적이라는 평가다.
이 같은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해 공동연구단은 국제자동차연맹(FIA) 등이 사용하고 있는 교통사고 심층조사분석 DB 표준화(iGLAD)에서 사용하고 있는 조사항목을 도입하기로 했다. 여기서 사용하는 1차 핵심변수 76개 가운데 중복을 제외한 44개 항목을 도입할 계획이다.
또 교통사고 심층조사분석 자료의 공유를 쉽게 할 수 있도록 통합 서버를 구축하기로 했다. 현재 자동차안전연구원 주도로 서버 구축 작업이 진행 중이다. 지금까지는 경찰청 등 조사기관이 자료를 배타적으로 소유해 가치 재창출이 쉽지 않았다.
독일 교통사고 심층조사기관인 GIDAS와 협력관계를 맺은 연구단은 향후 GIDAS에서 사용 중인 2500여개 조사 변수를 국내 현실에 맞게 도입하는 등 교통사고 조사 기법을 발전시켜 나간다는 계획이다.
선진국에선 오래 전부터 교통사고를 줄이고 자동차 기술을 발전시키기 위해 교통사고 심층조사를 진행해왔다. 독일 GIDAS가 대표적이다. 1973년 독일 정부에 의해 하노버대학에 설립된 GIDAS는 1985년 이후 매년 1000건이 넘는 교통사고 심층조사를 실시하고 있다. 1999년부터는 독일 자동차 제작사 연합과 공동 연구를 진행 중이다. 2009년 유럽 신차평가 종합등급제 항목에 보행자보호 기술이 포함되고 볼보 등 제조사들이 보행자보호 기술을 속속 내놓는 것도 이 같은 연구 결과 덕분이라는 평가다.
그러나 국내에 교통사고 심층조사 제도가 정착하기 위해서는 관련 기관 및 업체 간 협조가 필수적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현재 국내 교통사고 조사는 경찰청과 도로공사, 보험사 등에서 개별적으로 진행되고 있다”면서 “조사방법과 DB 보관 방법이 모두 다르기 때문에 이들이 공동 작업을 해야 더욱 의미 있는 결과가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김용주기자 kyj@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