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윤 작가의 아틸라, The 신라 제47회

하지윤 작가의 아틸라, The 신라 제47회

6. 세상의 절반을 달라

7



“에르낙”

아틸라는 애르낙을 나지막이 그러나 또렷이 불렀다. 에르낙은 대답없이 조용히 곁에 섰다. 아틸라의 권력에 가장 근접한 자였다.

“어떻게 되었나?”

아틸라는 우회하지 않고 물었다. 에르낙은 호노리아 공주의 눈치를 살폈다. 호노리아 공주는 호들갑을 떨며 설레발을 했다.

“아틸라, 저와 결혼해 주시는군요. 제 어머니와 제 동생이 당신을 화나게 했으니 제가 직접 온 것입니다.”

아틸라는 호노리아 공주에게 대꾸도 하지 않았다. 에르낙을 눈빛으로 다시 불렀다.

“준비 되었습니다.”

에르낙은 어찌보면 아틸라의 부모처럼 엄격했으며 자식처럼 공손했다. 아틸라가 지정한 범위를 벗어나지 않았다. 아틸라는 비로소 호노리아 공주에게 첫 마디를 건넸다.

“공주, 당신이 진정 원하는게 무엇입니까?”

“아틸라. 그냥 제 이름을 부르세요. 라벤나 궁정에서 우리는 어렸죠. 서로 술래잡기를 하며 놀던 기억이 새록하지 않습니까? 이제는 어린친구가 아닌 아내처럼 친근히 대해주세요.”

나이먹은 암컷 호노리아 공주는 살기위해서 천박했다.

“내 질문에 답하지 않았습니다.”

호노리아 공주는 입술을 비비 꼬았다. 아틸라에게 가까이 다가와 귀에 대고 속삭였다. 하지만 속삭임이 아닌 누구나 들을 수 있는 큰 소리였다.

“아틸라, 당신의 목적과 같습니다.”

아틸라는 자신의 호전적인 참모들을 둘러보았다. 콘스탄티우스, 에데코, 오에스테스는 아틸라의 자존심을 상징하는 갑옷과 투구였다.

“오늘 결혼하겠다.”

“아틸라 제왕 만세!”

“만세!”

콘스탄티우스도 에데코도 오에스테스도 서로 끌어안고 기쁨을 나누었다. 이들은 평생 웅장한 스케일 속에서 살아온 전사들이었다. 당시 로마는 세상의 전부였다. 훈 족속은 대(大) 중원의 중국을 떠나 드디어 로마를 손에 넣으려 하고 있었다. 다시는 중원을 돌아보지 않을, 그 이름 바로 아틸라 더 훈이었다.

눌지는 자신이 공고히 하려는 김씨 제국이 사라질까 두려웠다. 아로(阿老)부인에게 물었다.

“언제부터요?”

“어젯밤부터 슬슬 힘이 없더니 오늘 새벽에야 의식이 없는 것을 알았습니다.”

노쇠한 백발궁녀는 눈물을 뚝뚝 떨어트리며 어린 자비(慈悲)의 다리를 주무르고 있었다. 어린 자비는 죽은 듯이 보였다.

눌지가 엎드려 있는 젊은 어의들에게 고개를 돌렸다.

“어떻게 할 것인가? 말해보라.”

눌지는 체통을 지키기 어려웠다. 자신의 꿈이자 김씨 일가의 꿈이자 신라의 꿈을 죽음으로 정리할 순 없었다.

“어젯밤부터 자리를 뜨지 않고 자비 왕자님 곁을 지켰습니다. 저희들도 이상하다 이상하다 할 뿐이옵니다. 사람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해보았습니다.”

눌지는 눈살을 찌푸렸다. 신라의 역사(歷史)가 자신의 역사(歷史)를 위로하기를 바라고 있었다.

“혹시, 자비가 수상한 음식을 먹지 않았느냐?”

그러자 백발궁녀가 일러바치듯 눌지의 비통을 비집고 아뢰었다.

“박문장님이 떡을 주셨습니다.”

그때였다. 치술(鵄述)공주가 스스럼없이 들이닥쳐 일단 엎드렸다.

“왕자 자비를 살릴 수 있습니다.”

“신라 최고의 어의들이 살리지 못하는 자비를 무슨 수로 살린단 말이오? 함부로 나서지 마시오.”

“만약 자비를 살리지 못한다면 저를 죽이셔도 달게 받겠습니다.”

눌지의 절실함은 자꾸만 망설였다. 자칫 하면 자비도, 김씨의 신라제국도 영원히 사라질 것이 뻔했다.

“어떻게 하면 되겠느냐?”

“제가 말씀 드린 묵호자(墨胡子)에게 맡겨 주십시오.”

“뭐라? 묵호자? 그자는 서역에서 불사를 들여온 사람인데 어찌 자비의 목숨을 가늠한단 말이냐?”

“묵호자는 자비를 살릴 수 있습니다.”

눌지는 아직 무덤을 만들기 싫었다.

“묵호자가 자비를 살린다면 이는 전설을 만드는 것이다. 또한 나는 그의 불사를 받아들일 것이다.”

“검의 전설이 도착했습니다.”



글 소설가 하지윤 lif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