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학기술연구원 유럽연구소(KIST 유럽)가 지난 5년 간 시행했던 ‘연구 담당 소장(R&D 소장)’ 제도가 실패로 끝났다. 이에 따라 해당 직위가 사라지고 R&D 소장이 강등됐지만, 계약 당시 영년직으로 신분을 보장받아 그룹장 지위는 유지한다.
1일 미래창조과학부와 KIST 유럽에 따르면 KIST 유럽이 지난 2009년부터 연구 분야 독립적 운영을 위해 시행했던 R&D소장 제도가 지난 9월 30일자로 종료됐다. 안드레아스 만츠 전 R&D 소장은 유체역학 연구그룹장으로 강등되고, 해당 직위는 폐지했다. R&D 소장 시절 2억2000만원 수준이었던 만츠 그룹장 연봉은 40% 가량 삭감했다.
연구 성과가 기대에 못 미친 반면 연구소장과 R&D 소장 간 역할 혼선만 초래했다는 지적에 따른 조치다.
KIST 유럽은 지난 2009년 9월 연구소장과 별도로 R&D 소장 직위를 신설해 안드레아스 만츠 독일 프라이부르그대 교수를 영입했다. 연구소장 임기(3년)보다 긴 5년의 R&D 소장 임기를 보장하고, 매년 100만 유로(약 13억4000만원)가 투입되는 ‘자브리즈(Saarbridge)’ 프로그램을 맡겼다. 계약 당시부터 R&D 소장 업무 성과와 상관없이 영년직 신분을 보장하는 파격적인 조건도 제시했다.
자브리즈는 KIST 유럽이 위치한 자브리켄시 지명과 한-EU 간 협업 연구 가교 역할을 한다는 뜻의 ‘브리즈’를 합성한 말로, 호흡으로 건강 상태를 진단할 수 있는 유체역학 임상 진단기기를 개발하는 것이 목표였다. KIST 유럽은 만츠 그룹장이 5년의 R&D 소장 임기 동안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함에 따라 해당 과제 지원을 중단하기로 했다.
그 밖에 현지 출신 R&D 소장 임명으로 현지 기관·업체 연구과제 수탁 비율이 늘어날 것으로 예상했지만 이 역시 기대에 못 미쳤다. 연구소장과 R&D 소장 간 업무 조정이 원만하지 않아 혼선만 초래했다는 지적도 나왔다.
미래부는 올해 3, 4월 실시해 5월 종료한 KIST 유럽 종합 감사에서 이 같은 내용을 지적했다. 감사 보고서에 △R&D 소장 중점 연구 분야, 본원과 연계 전략을 수립하지 않은 채용 전략 부재 △연구 부문에서 연구소장 역할 제한으로 책임경영 난항 등의 문제를 언급했다. 징계를 내리지는 않았지만 경고 일종인 ‘주의’ 처분을 통보했다.
미래부 관계자는 “R&D 소장 채용 시 명확한 전략이 없었다는 것이 핵심”이라며 “현지에서 사업을 수행하는 데 따른 어려움을 고려해 낮은 단계 경고인 ‘주의’ 처분을 내렸다”고 밝혔다.
만츠 그룹장은 R&D 소장 직위를 잃었지만 영년직을 명시한 채용 계약에 따라 KIST 유럽에 잔류한다. 자브리즈 프로그램을 수행하던 연구팀을 그룹으로 전환, 지금까지 나온 연구 결과 중 일부를 실용화할 계획이다.
KIST 유럽 관계자는 “기존 연구 성과를 2~3년 내 상업화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지만 더 이상 투자는 하지 않겠다는 의미”라며 “5년 간 제도를 시행한 결과 한국에서 온 연구소장과 역할 분담이 제대로 되지 않는 등 여러 가지가 안 맞는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송준영기자 songjy@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