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통신공사 발주방식 ‘오락가락’···업계 혼란 가중

공공기관의 정보통신공사 발주 방식이 재료비 비중에 따라 ‘물품구매’와 ‘시설공사’로 다르게 결정되면서 역차별을 받는 업체들의 불만이 늘고 있다. 단순 물품구매가 아닌 배관·배설 등 인력 투입 비중이 높은 사업도 물품구매로 발주되는 사례가 많아 장비 제조사와 계약을 하지 않은 대다수 업체가 입찰 참여기회를 박탈당하고 있다며 반발하고 있다.

5일 정보통신공사 업계에 따르면 공사업 발주방식 결정을 위한 판단 기준이 마련돼 있지 않아 수요기관과 조달청 등 발주기관이 임의로 발주방식을 결정하고 있다. 예를 들어 라우터, 서버, 방송장비 등 재료비 비중이 높으면 물품구매로, 반대의 경우엔 시설공사로 발주하는 식이다.

노무비가 거의 들지 않는 단순한 장비구매·설치는 물품구매로 발주해도 문제되지 않는다. 하지만 대단위 인력이 투입돼 시설공사로 발주돼야 하는 공사라도 노무비보다 재료비 비중이 높으면 물품구매로 발주되는 사례가 비일비재하다. 심지어 노무비 비중이 높은 때에도 물품구매로 발주되는 사례가 있다.

시설공사가 물품구매로 발주되면 다양한 문제가 생긴다. 물품공사는 시설공사와 달리 하자보수보증금, 하자보증기간 등 안전장치가 거의 없다. 물품 구매 이후 1년만 품질을 보증한다. 즉, 1년 후엔 문제가 발생해도 딱히 책임을 묻기 어려워 부실공사가 발생할 수 있다. 공사업체는 물품공사로 수주해 공사를 완료해도 발주처에서 공사실적증명서를 시설공사로 내줄 수 없어 실적을 인정받을 수 없다.

무엇보다 물품공사로 발주 시 CCTV, 전화, 인터넷 장비, 방송·무선통신장비 등 대형 제조사와 제품공급 계약을 맺은 일부 공사업체에만 수주 기회가 돌아가게 된다. 나머지 업체는 사업을 수주하기도 어렵지만 수주하더라도 장비 조달에 어려움을 겪게 돼 결국 계약 미이행으로 부정당업자 제재(1개월~2년 이하 영업정지)를 받는 사례도 나온다.

한 정보통신공사업체 관계자는 “수십억원 규모 공사가 일부 고가 장비가 있다는 이유로 물품구매로 발주되는 일도 있다”며 “물품구매 사업을 수주하더라도 장비 제조사와 계약을 하지 않은 업체는 비싼 가격으로 장비를 공급받든가 아니면 공급 자체를 받지 못해 문제가 발생한다”고 지적했다.

발주기관은 공사 신속성, 편리성, 예산절감 등을 이유로 시설공사보다 물품구매 발주를 선호한다. 업계는 명백한 시설공사임에도 물품구매로 발주되는 것을 막기 위해 명확한 판단 기준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국민권익위원회는 지난 2012년 10월 이 같은 관행을 개선하기 위해 관계 부처인 기획재정부와 안전행정부에 제도 개선을 권고했다. 안전행정부는 지난 5월 물품구매를 ‘국내외에서 생산·공급되는 외자물품’으로 정의하는 지방계약법 시행령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하지만 장비 제조사와 계약을 맺고 있는 일부 공사업체가 중소기업청과 중소기업중앙회를 통해 물품구매는 ‘외자물품과 해당 물품의 부수적인 설치’ 항목을 포함시켜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안행부 관계자는 “법적으로는 시설공사인 사업도 물품공사로 발주하는 관행이 있다”며 “정보통신공사뿐만 아니라 건설, 전기 분야까지 포함된 문제이기 때문에 중소기업청과 국토부 등 관계 기관의 의견을 수렴하고 있다”고 말했다.

안호천기자 hca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