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전쟁, 전쟁,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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둥둥 작은 북소리가 신명을 돋우었다. 신라 궁중에서 연회가 한창이었다. 어린 자비(慈悲)가 살아난 것을 축하하기 위해서였다. 왕 눌지의 얼굴에서 미소가 지워지지 않았다. 아로(阿老)부인의 얼굴도 오로지 기쁨뿐이었다. 자비는 모처럼 기운을 내어 왕자의 체면도 내치고 뛰어다니고 있었다.
“자비 좀 보십시오. 제가 꿈인가 합니다.”
아로부인은 목소리는 아직도 차마 떨렸다. 치술공주 또한 기뻐했다.
“오늘에서야 비로소 신라의 왕실이 굳건해보입니다.”
“감축드리옵니다.”
박문장과 석아전이었다. 두 사람은 아로부인과 치술공주를 번갈아 보았다. 아로부인과 치술공주는 시선을 마주치지 않았다. 껄끄럽게 피했다.
“자비 왕자님이 묵호자의 불사로 살아난 기적을 백성들도 기뻐하고 있사옵니다.”
석아전은 왕 눌지의 눈치를 살폈다.
“이제 왕자 자비가 살아났으니 고구려에 유학을 보내심이 옳을 듯 하옵니다. 우리 신라는 그간 고구려의 도움으로 왜를 물리쳤을 정도로 의지하고 지내왔던 바...”
박문장의 장황한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왕 눌지는 벌떡 일어났다. 좀체 화가 없는 눌지의 찌를듯한 노여움은 그래서 더 무서웠다.
“우리 신라는 고구려의 도움이 없이 살 필요가 있소. 지난 시절, 내 동생 복호와 미사흔이 고구려와 왜에 볼모로 간 적이 있소. 신라 김씨 왕가의 수족을 자르려고 한 짓이오. 결국 내 동생들은 신라에 없소. 그런데 이제 내 아들까지 그래야 한단 말이오?”
석아전과 박문장은 궁색한 변명이라도 어서 해야 했다.
“본래 신라는 주변의 국가들과 도움을 주고받으며...”
왕 눌지는 더 이상 그들의 이기적인 미련함을 용납할 수 없었다.
“똑똑히 들으시오. 박문장, 석아전. 박씨와 석씨는 마립간을 배출했던 가문이오. 그러나 철(鐵)의 산지를 끼고 앉아 그 철을 무기로 팔아버릴 생각이나 하면서, 부와 권력을 누릴 생각을 한다면, 진정 백성을 위한 것이오?”
그 누구도 나서서 한 마디도 하지 못했다.
“우리가 아직도 영락대왕이 만든 강한 고구려의 허락을 받아야 한단 말이오?”
박문장과 석아전은 침도 삼키지 못했다. 목구멍이 쪼그라들고 있었다.
“박씨와 석씨가 마립간을 배출했던 그 때는 그랬을지 몰라도, 장차 김일제의 후손, 김알지의 후손이 대대로 신라의 마립간이 될 것이고, 바로 그 마립간들은 고구려의 허락도 받지 않을 것이고 고구려와 의논도 하지 않을 것이오. 바로 이것이 신라 천년 제국의 청사진이오.”
박문장과 석아전은 부리나케 엎드렸다. 살아야 했다.
“나는 전쟁을 선포하오.”
모두 어리둥절했다. 술렁였다.
“나는 철의 산지를 끼고 부와 권력을 누리는 박씨와 석씨 가문과 전쟁을 시작할 것이오.”
연회의 음악이 뚝 멈추었다. 자비는 아무것도 모른 채 왕 눌지의 품으로 뛰어들었다.
“자비야. 자비야.”
자비는 눌지의 품을 더욱 파고들었다.
“내 약속한대로 전설을 만들고 사라져버린 묵호자의 불사를 받아들일 것이오. 궁에 불사를 지어 그 곳에서 묵호자가 주고간 향을 피울 것이오. 또 묵호자가 주고 간 불책을 읽을것이오”
아로부인과 치술공주가 눈물을 흘렸다. 치술공주는 얼른 일어나 눌지 앞에 엎드려 하례했다.
“황공하옵니다.”
눌지는 치술공주의 손을 잡아 일으켰다.
“치술공주, 당신은 자비를 살린 것이 아니라 신라를 살렸소.”
아에테우스 장군은 아틸라 지배 하에 있는 부족들을 상대로 용병을 모집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처음부터 쉬운 것은 아니었다. 모두 아틸라를 두려워하고 있었다. 아틸라의 잔혹한 보복을 걱정하고 있었다. 그는 묘책을 생각해 내야 했다.
“아틸라는 절대 감정적인 행동을 하지 않는다. 내가 아는 아틸라는 그렇다. 그는 버릴 것과 취할 것에 대해서 누구보다 뚜렷하다. 필요하지 않으면 당장 버릴 것이고 필요하면 빼앗아서 갖는다. 세상의 어떤 영웅보다 침착하고 세상의 어떤 영웅보다 잔인하다. 하지만 그에게는...”
그러자 부하 아스파가 치고 나왔다.
“그래봤자 야만인일 뿐입니다. 그에겐 조직이 없습니다.”
아에테우스는 칼을 빼어 그의 목에 겨누었다.
“너는 장차 멸망할 로마만큼이나 우둔하구나.”
아에테우스의 칼 끝은 추호의 떨림도 없었다. 그의 눈은 시뻘갰다. 벌써 피의 강이었다.
글 소설가 하지윤 lif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