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금융 시작도 하기 전에 ‘삐그덕'

정부의 기술금융 활성화 대책이 기술 이전과 사업화 장벽에 가로막혀 순항하지 못하고 있다. 수조원에 달하는 자금 투입과 사후 지원방안이 나왔지만 유망 기술거래 자체가 시장에서 발생하지 않아 사업화가 어려울 전망이다. 기술을 개발한 연구기관, 이를 사들여 사업화를 꿈꾸는 수요 기업, 파이낸싱 지원 기관인 금융사 간 ‘동상이몽’이 기술금융 활성화를 가로막고 있다는 지적이다.

13일 금융권에 따르면 공공연구기관의 기술 이전율과 기술 사업화율이 각각 30%, 10%가 채 안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가 지정한 민간기술거래기관은 38개 기관(지정취소기관 제외)이다. 2009년부터 2012년까지 민간기술거래기관의 기관당 기술거래 실적은 6~7건으로 극히 부진한 상황이다.

기술형 기업과 연구소 등이 보유한 수천개의 하이테크 기술이 빛을 보지 못한 채 ‘데스밸리’에 갇혀 사장되는 악순환이 지속되고 있는 셈이다. 최근에는 기술 개발 연구기관은 한국기업이 아닌 중국 등 해외 기업과 접촉해 더 많은 로열티를 받고 기술을 넘기는 모럴해저드도 발생하고 있다.

기술보증기금 관계자는 “기술을 팔려고 하는 곳과 기술 수요기업 간 ‘기술 이전, 사업화’를 바라보는 시각이 전혀 다른 것이 문제”라며 “기술금융 확대를 위해서는 기술 자체가 이전, 거래될 수 있는 파이프라인을 만드는 것이 급선무”라고 밝혔다.

중소기업청에 따르면 대학과 연구기관의 보유기술이 활용되지 못하는 1순위가 ‘수요기업 발굴 어려움(62.4%)으로 나타났다. 기술을 개발해도 어떤 기업에 제안을 해야 할지 정보 자체가 막혀 있다는 것이다. 반대로 기술을 도입하려고 하는 기업 역시 기술도입 정보부족(22%)이 큰 애로사항으로 꼽혔다.

기술금융 지원에 나서는 금융사는 기술 이전과 상용화에는 관심이 없다. 정부 정책에 떠밀려 재원 마련과 투입에 나섰지만 회수 방안에만 혈안이 돼 있는 형국이다.

익명을 요구한 은행권 고위 관계자는 “정부의 기술금융 대책에 빠져 있는 것이 바로 회수 문제”라며 “은행이 자금을 투입하면 나중에 회수를 해야 하는데, 이에 대한 명확한 지침을 정부에서 제대로 주지 않고 있다”고 토로했다. 회수가 되지 않는 부실자금이나 채권에 대해 국가가 이를 보존하는 리스크 헤지 장치를 마련해 달라는 주장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기술금융 사전단계에서 기술발굴과 직접 투자 등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가치 있는 기술이 연구소에서 사장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연구소형 기업으로 출발한 손미진 수젠텍 사장은 “일반적인 산업과는 달리 기술기반의 기술금융은 좀 더 차별화된 프로그램이 필요하다”며 “대학, 연구소, 기업 등 창조 주체 간 연결고리 부재로 수요 공급자간 현장 중심의 매칭시스템과 제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연간 기술이전 실적 (단위 : 건)>


연간 기술이전 실적 (단위 : 건)


길재식기자 osolgil@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