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가 한목소리로 700㎒ 주파수 할당과 관련해 지상파 방송 편들기에 나서면서 국가재난안전통신망(이하 재난망)에 사용될 단말기, 통신장비 개발이 사실상 차질을 빚게 됐다.
주파수가 확정되지 않으면서 기술 스펙을 확정하지 못해 개발이 차일피일 미뤄지고 있기 때문이다. 주파수 배정 문제가 매듭지어지지 않으면 재난망 사업이 표류할 것이라는 우려가 현실화되는 양상이다.
19일 통신장비 업계에 따르면 내년 재난망 시범사업 참여를 계획하는 모든 업체가 주파수 할당이 미뤄지는 것에 대해 우려를 표하고 있다. 재난망에 쓰일 단말기(무전기), 기지국 등 장비 설계와 개발, 테스트까지 최소 9개월이 필요하기 때문에 10월 안에 주파수가 정해지지 않으면 내년 4월로 예정된 시범사업까지 마무리하기가 어렵다는 주장이다.
이런 우려는 현실로 드러나고 있다. 미래창조과학부는 SK텔레콤, 한국철도기술연구원 용역을 통해 재난망 구축 과정에서 테스트용으로 사용할 단말기를 개발하고 있다. 시범사업에 사용할 단말과는 개발 목적이 다르다. 당초 3년 일정이던 이 과제는 세월호 참사로 재난망 구축이 결정되면서 개발 기간을 1년 이상 앞당겼다.
하지만 주파수가 결정되지 않아 여러 부문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주파수가 확정되지 않으면 퀄컴에 칩 개발을 요청할 수 없다. 단말기에 들어가는 무선(RF) 부문 하드웨어를 설계하고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데도 주파수 확정은 필수다. 단말기와 연동할 시스템의 700㎒ 신호증폭기, 필터 등의 개발도 어렵다.
사업에 참여 중인 한 관계자는 “주파수가 결정되지 않으면 단말기에 사용할 안테나 개발 업체들도 아무런 일을 할 수가 없다”며 “무전기 안테나는 보통 800㎒ 이상 대역에 맞춰져 있어 이를 수정해 개발하는 데도 적잖은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모토로라 같은 외국 업체는 공공안전 LTE(PS-LTE) 구축 경험이 있지만 그렇지 않은 국내 업체가 단말을 개발하는 데 최소 9개월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재난망은 상당 기간 기존망과 연동해 사용하기 때문에 기존 주파수공용통신(TRS)과 LTE를 동시에 쓸 수 있는 복합 단말기가 대안으로 거론된다. 국제 표준이 2016년 상반기에 제정되는 것도 한 이유다. 하지만 주파수가 결정되지 않으면 복합 단말기에 주파수를 어떻게 송출해야 할지도 결정할 수 없다. 관련 애플리케이션 개발도 어렵다.
안전행정부는 내년 4월부터 시범사업을 시작하지만 사업자 선정을 위한 제안요청서(RFP)는 내년 초 공지할 계획이다. 이 사업에 참여하려는 단말 업체와 국내외 기지국 개발사는 늦어도 이달 안에는 개발을 시작해야 한다. 단말기와 기지국이 현장에 설치되는 시점은 내년 6월경으로 예상된다.
안행부 관계자는 “3월 정보전략계획(ISP) 사업을 마치고 4월부터 바로 시범사업을 시작하는 이유는 사업자에게 최적화된 단말 개발 시간을 벌어주기 위한 것”이라며 “하지만 주파수 확정이 늦어지면 이와 관계없이 전체 일정이 지연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현실적으로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며 안타까움을 표했다.
지난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여야 의원과 미방위원장은 공청회 등을 통해 업계 의견을 수렴해 주파수를 결정해야 한다고 합의했다. 하지만 700㎒ 대역 논란은 수년에 걸쳐 불거졌기 때문에 단기간에 결정이 나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국민 안전을 위한 재난망 사업도 지연이 불가피하게 됐다.
안호천기자 hcan@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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