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전쟁, 전쟁,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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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놓고 역모였다. 치술공주는 털썩 엎어졌다. 왕 눌지는 놀라는 기색을 감추었다. 평생 기쁨과 슬픔을 표시하지 않고 살아왔다. 또한 김일제 후손의 애쓴 자존감이기도 했다. 오히려 치술공주의 낯빛이 사색이었다.
“그들의 본색이 치술, 자네에게 들킬 정도라면 그 본색은 본디 가장된 것일 수도 있다. 용병을 바삐 구하는 모습을 들키면서, 참 본색은 고구려와 내통할 수도 있다.”
“고구려 영락대왕도 오래가지 못할 거라는 소문입니다.”
“그러니 더 지랄이겠지. 영락대왕은 치졸한 방법으로 힘을 얻는 왕이 아니다. 그는 진짜 전사왕이다. 이미 영락대왕의 아들 장수에게 연줄을 대고 있을 것이다.”
어디선가 까마귀가 계속 울어댔다. 희안하게도 히이잉 말울음으로 울어댔다. 쾅쾅 번개가 몰아쳤다.
“그들이 김씨 마립간 계통을 무너트릴까 두렵습니다. 하지만 지난 번 어린 자비 왕자를 살리신 묵호자께서 자비를 살리시고 제게 한 마디 하셨습니다.”
눌지는 같은 꿈을 건설하는 공범의 눈으로 치술공주를 응시했다. 치술은 왕 눌지와 같은 꿈의 방향을 보이고자 했다.
“자비는 왕 눌지의 뒤를 이어 새 마립간이 될 것이며, 그 이후 신라가 끝나는 날까지 김씨 마립간은 무너지지 않을 것이다, 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용병은 분명히 왕의 군대보다 그악스러울 것이라는 겁니다.”
치술공주는 신라를 구한 여자였다.
“이미 군대를 보냈다. 투후 김일제가 보살피시고 김알지가 보살피시고 미추마립간이 보살피실거다.”
“벌써 보내셨습니까?”
치술공주는 놀랐다. 치술은 승리의 통로를 부랴부랴 찾고있었다.
“그들에게 전쟁을 선포했던 바로 그 순간, 나는 군대를 보냈다. 그들은 포위되어 있다. 그들은 모를 것이다.”
“그들이 이미 많은 철(鐵)을 고구려에 넘겼다면 어찌하옵니까?”
눌지는 점점 몸을 일으켰다. 그의 몸이 점점 커졌다.
“투후 김일제의 후손 김알지가 신라의 땅으로 온 것은 바로 철때문이었다. 그 철은 본래부터 김씨의 것이다. 이제 내가 신라의 모든 땅을 달릴 것이다. 모든 땅을 달려 철의 산(山)으로 갈 것이며 그 철의 산을 왕 눌지가 갖게 될 것이다. 기다려라. 피비린내가 일어날 것이다.”
치술공주는 다시 한 번 엎어졌다. 그녀가 오래전부터 박씨와 석씨 가문과 관련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들이 황아공주를 볼모로 보낸다는 극악한 제안을 내놓자, 치술은 그들과 거리를 두었다. 어미로서의 본능적인 처세였다. 그녀가 어린 자비를 살리기 위해 묵호자를 추천한 이유도 황아공주를 장차 새 마립간인 자비에게서 보호하기 위함이었다.
“아틸라가 벌써 알아선 안된다.”
아에테우스의 목소리는 부들부들 떨렸다. 부하들의 어처구니없는 짓거리에 화가 치밀었다.
“용병을 모집하는 움직임을 아틸라가 눈치를 채다니...그렇게 힘주어 말했는데 결국 아틸라가 알게 하다니...”
부하들이 뻘쭘하게 서서 어쩔줄 몰라하고 있었다. 언제 꼴같잖은 목이 날아갈지 모를 형편이었다.
“우리의 계략이 벌서 들켰다는건 이미 이길 수 없는 전쟁일 것이다.”
아에테우스 장군은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그의 이마에 굵은 땀이 맺혔다. 얼굴이 타오르듯 활활 붉어졌다.
“이번 공격은 미루심이 옳은듯 합니다. 이미 벌거벗겨진 상황입니다.”
아에테우스는 자신의 우월성을 반드시 믿고싶었다.
“아예 당장 기습할 수도 있다. 그러나 먼저 쳤다가 아틸라를 감당해내지 못하면 그 후는 상상하기도 싫은 끔찍한 절멸이 되어버릴 것이다.”
아에테우스는 괜히 포도송이를 들어 와작와작 으깨어버렸다. 포도의 단물이 피처럼 뚝뚝 떨어졌다.
“아틸라, 아틸라.”
어떤 결정도 자신에게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 분명했다. 마침 플라키디아 황후가 들어섰다. 아에테우스는 적잖이 짜증났다. 오늘 또 어떤 미친 소리를 할지 몰랐다.
“장군, 전쟁이 어설픈 장난도 아니고 어떻게 이런 경악할만한 일이 일어납니까? 장군이 아틸라와 절친한 친구라서 미리 귀띰이라도 한겁니까?”
플라키디아는 칼만 안들었을 뿐이지 아에테우스를 찢어발기고 있었다.
“로마 시민은 군인으로 싸워본 적이 없습니다. 대신 시민들은 전쟁자금을 지불하죠. 아틸라는 그런 로마의 불안한 전력(前歷)으로 이번에도 용병을 살거라거고 충분히 예측했을 뿐입니다. 하지만 이번 전쟁은 용병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런 무엇이 문제란 말입니까? 장군의 목을 내놓고 말씀하시지요.”
플라키디아는 묘한 웃음을 실룩거렸다. 경멸이었다. 아에테우스 또한 지지 않았다. 그녀를 향해 묘한 웃음을 실룩였다. 역시 경멸이었다. 그때 정찰병이 후다닥 뛰어들어오며 소리쳤다.
“아틸라가 움직였습니다.”
글 소설가 하지윤 lif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