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 전쟁, 전쟁, 전쟁
7.
아에테우스는 아틸라를 너무도 잘알았다. 훈족 궁정에서 오랜 기간 볼모 생활을 했기 때문에 그들의 습성과 그들의 사고방식과 그들의 전투방식을 너무도 잘알고 있었다. 그는 사실상 훈족이나 다름없었다.
아에테우스는 먼저 아틸라와 적대적 관계에 있는 게르만족들에게 연합을 청했다. 서고트족, 프랑크족, 부르군트족, 켈트족 일부가 아에테우스 진영에 합류했다. 이들 모두 아틸라에게 깊은 원한이 있었다. 이들은 아에테우스를 돕고자 한 것이 아니라 오로지 아틸라에게 복수하고자 하는 일념으로 합류한 것 뿐이었다. 이런 조합은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다. 바로 동일한 목표를 공유하지 못한 이기적인 배반을 기초로 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언제든 와르르 와해될 조합이었다.
“나는 훈족의 전투방식을 빤히 알고 있습니다. 아틸라는 공격형 전술가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겐 희생양이 필요한 것이죠.”
아에테우스의 선동에 각 부족의 왕들은 미덥지 않은 눈길을 보냈다. 그들 또한 전장에서 나고 자란 선수들이었다.
“그간 아틸라의 저돌적인 공격은 그 누구도 막지 못했습니다. 그러니까 이 지경이 된 것이죠. 그렇다면 누구를 희생양으로 삼겠다는 것입니까?”
“알란족입니다. 이들은 훈 족과 비슷하게 초원지대에서 말을 달리던 기마족속입니다. 게다가 키가 큰 금발이죠. 위압적인 풍경을 연출할겁니다. 아틸라와 정면에서 대치하게 할겁니다.”
“결국 화살받이로 써먹을 작정인데, 알란족이 받아들일까요?”
서고크족, 프랑크족, 부르군트족, 켈트족 왕들은 모두 수군거렸다.
“알란족의 자존심을 건드리면 간단합니다. 그들은 스스로 아틸라의 훈족보다 뛰어난 기마인들이라고 자부하고 있습니다.”
아에테우스는 비열했지만 꽤 만족했다. 그는 불안정한 역사와 맞서고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불안정한 운명과 맞서고 있었다.
“아틸라, 나의 형제여. 하지만 피할 수 없는 운명이 우리 앞에 놓여있다. 둘 중 누군가는 죽어야 한다, 그것이 역사의 명령이다. 아틸라.”
또 다시 플라키디아가 나타났다. 마치 아에테우스를 감시하고 있는 사람같았다.
“장군.”
아에테우스는 욕을 내뱉고 싶은 충동을 겨우 참았다.
“장군, 당신이 실패한다 해도 그 죄를 묻지 않겠소. 다만...”
아에테우스는 말대꾸 조차 하고싶지 않았다. 겸손함도 존경심도 없이 플라키디아를 노려보았다.
“용병이 문제가 아니라면 무엇이 문제란 말이오?”
“아, 그 문제말이군요. 아틸라는 그 누구도 죽일 수 없습니다. 역사가 죽이기 전에.”
아에테우스는 플라키디아를 능멸하듯 보았다. 생각같아선 겁탈이라도 해서 자신에게 억지 무릎이라도 꿇리고 싶었다. 자신을 반드시 죽일 무시무시한 여자였다.
아틸라 또한 누구보다 아에테우스를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아에테우스가 자신을 너무나 잘알고 있다고 확신했다. 그래서 전과는 다른 전투 방식을 택했다. 그의 전형적인 전투방식인 공격 위주의 전투 방식을 버리고 수비 위주의 전투를 계획했다. 이미 훈의 군대는 복속 부족을 포함해서 20만에 이르고 있었다. 아틸라는 전투 대열을 정비했다. 그리고 항상 그렇듯 자신이 선두에 섰다. 전투 대형의 중심에 기병을 세웠다. 왼쪽은 동고트족, 오른쪽은 게피다이족을 세웠다. 결국 아에테우스는 서고트족을 내세웠고 아틸라는 동고트족을 내세웠으니 이 또한 우스운 형국이었다. 아틸라는 전사들에게 딱 한 마디만 했다. 전투의 불길을 당기는 촌철살인이었다.
“포로를 만들지 마라.”
생명이 있는 모든 것은 죽이라는 의미였다. 아틸라의 피의 전투가 다시 한 번 역사를 바꾸게 될지도 몰랐다.
누가 먼저 공격을 시작했는지 모른다. 살과 살이 부딪히고 뼈와 뼈가 부딪히고 칼과 칼이 부딪히고 화살과 화살이 부딪히기 전에, 아틸라는 멀리서부터 검은 먼지구름과 빛의 속도로 달려오는 화살비와 다시는 듣고싶지 않은 특유의 짐승소리를 먼저 보냈다. 공포가 폐허로 와르르르 쏟아졌다. 둥둥 둥둥, 땅이 울었다. 둥둥 둥둥 땅이 흔들렸다. 로마군은 당황했다. 아연실색했다. 사람이 나타나지 않은 최초의 전투였다. 그래도 아에테우스는 명령을 내렸다.
“앞으로!”
글 소설가 하지윤 lif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