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강태의 IT경영 한수]<25>KB사태가 주는 교훈

[이강태의 IT경영 한수]<25>KB사태가 주는 교훈

KB사태가 마무리 되어 가고 있다. 한동안 모임에 나가면 IT전문가로서 KB사태를 설명해 보라는 주문을 많이 받았다. 상식적인 사람들 입장에서는 어떻게 회장과 행장이 저렇게 죽기 살기로 싸우는지 도통 이해가 안 되는 것이다. 금융기관에 있는 사람들도 이해를 못하고 IT업계에 있는 사람도 이해를 못했다. 어떻게 우리나라 최대 은행인 KB지주의 회장과 은행장이 한꺼번에 중징계를 받고 임기 중에 불명예 퇴진을 하게 된 것인지 도무지 설명이 안되기 때문이다. 언론에서 싸움 과정을 일자 별로 만들어서 설명도 하지만 아직까지도 필자에게 뭘 갖고 왜 싸우는 거냐고 물어 본다. 이제 시간도 좀 지났고 사태도 마무리 되어 가니 소위 교훈을 얻어 두는 측면에서 사태의 쟁점을 좀 복기해 보자.

제일 먼저 KB정도의 규모를 고려해서 메인프레임을 과연 유닉스로 전환해도 리스크가 없는 것인가? 다운사이징 초기에는 리스크가 컸었다. 신뢰를 생명으로 여기는 은행에서 자칫 시스템 상의 오류가 있으면 은행의 존립이 위태로워지기 때문이다. 다행히 몇몇 IT선구자들이 위험을 감수하고 프로젝트에 도전했고 큰 문제없이 다운사이징을 성공시켰다. 벌써 15여년 전의 일이다. 그 후에 KB지주와 우리지주를 제외하고는 모든 국내 은행이 유닉스로 전환했다. 기술적인 면에서는 메인프레임에서 유닉스로 전환이 그리 큰 IT리스크를 내포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다음은 절차 상 문제를 얘기한다. 금융기관에서 소위 차세대 프로젝트를 진행 할 때는 떨어지는 낙엽에도 몸을 사릴 정도로 조심해서 진행한다. 참여하는 업체들도 많고 인력도 대규모로 들어가기 때문에 말도 많고 시비도 많고, 투서도 많고, 끝나고 소송하는 경우도 많다. 그래서 유명 컨설팅회사를 동원해 컨설팅부터 받고 프로젝트를 해야 하는 이유를 대내외적으로 공론화하고, RFP를 보내고 프레젠테이션하고 벤치마킹을 하며 여러 검증 과정을 거친다. 주 공급업체를 선정하는 전체적인 프로젝트 도입부의 프로세스 중 어느 단계도 건너 뛸 수 없고 어떤 업체를 의도적으로 밀어 주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아마도 KB에서 프로젝트를 기안하고 이사회에서 승인 받는 데 까지 담당 임원이나 실무자들의 힘겨운 서류 작업과 빈번한 설득 작업이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나름대로 공정하게 하려고 노력했을 것이라고 본다. 왜냐 하면 여러 은행에서 문제들이 있었기 때문에 학습 효과가 높아 당연히 조심하고 나중에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조치를 취하면서 내부의 승인 과정을 거쳤을 것이다. 만약 은행 감사가 주장하는 절차상의 하자가 있다고 해도 추진 실무자들은 충분히 설명 가능하고 추후 보완이 가능하기 때문에 지금 단계에서는 무시해도 된다고 생각했었을 것이다. 다만 전체적인 추진 과정을 보면 IBM과의 계약 만료가 코 앞에 다가 왔으니 어떻게든 IBM에 계속 끌려 갈 수 없다는 실무자들의 초조함이 보이기는 한다. 그런 초조함에 사실 절차상의 하자를 좀 가볍게 볼 수도 있었을 것이다. 어쨌든 이런 프로젝트를 하면서 늘상 나오는 문제들이고 충분히 해결 가능한 문제들이다.

그럼 도대체 왜 싸웠던 것일까? 당사자들에게는 미안한 얘기지만 IT관점에서는 중요치 않은 곁가지 문제로 싸운 것이다. 그러니까 많은 사람들이 IBM사장의 가격 깎아주겠다는 이메일을 기화점으로 해서 이사회 승인 서류의 조작 여부, 회장의 부당한 인사 개입 등으로 사건이 비화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이 사건의 흐름을 IT, 즉 정보기술측면에서 이해하려고 하면 이해가 안 된다. 설령 의혹이 있고 불만이 있다 하더라도 고발까지 하면서 죽기 살기로 싸울 일은 아니었다. 서로 믿을 만한 제3자를 불러서 물어 보고 판정을 받았더라면 너무나 쉽게 해결 될 수 있었던 간단한 문제들을 가지고 난리를 친 것이다.

이쯤에서 눈치 빠른 독자들은 감을 잡았겠지만 KB사태의 본질은 IT가 아니고 두 사람 사이의 기본적인 불화때문이고 IT는 싸움의 도구로 죄 없이 끌려 나왔을 뿐이다.

마지막으로 새로 임명된 회장과 행장은 이 시스템 문제를 어떻게 마무리 할 것인가? 아마도 새로 온 회장과 행장은 이 문제에 대해 CIO에게 맡기고 근처에도 안 갈 것이다. 치열한 경쟁을 뚫고 새로운 회장과 행장에 임명되신 분들이 굳이 민감한 문제를 건드려 리스크를 감수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회장·행장의 업무에서 IT가 차지하는 비중이 얼마나 되겠는가?

사실 따지고 보면 회장·행장 입장에서는 메인프레임이면 어떻고 유닉스면 어떻겠는가? 더구나 IBM이면 어떻고 HP면 어떻겠는가? 어차피 임기 내에 끝날 프로젝트도 아니고 컴퓨터 싸게 샀다고 임기 내 손익에 도움 되는 것도 아니다. IT문제는 IT담당 임원이 알아서 하라고 해버리는 것이 임기를 대과없이 마치는데 훨씬 유리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IT문제로 촉발 된 것처럼 보여도 IT하고는 전혀 관계없는 문제를 자꾸 IT적으로 해석하려고 하니 이해도 잘 안되고 설명도 힘들게 된 것이다.

맹자는 천시(天時)는 지리(地理)만 못하고 지리(地理)는 인화(人和)만 못하다고 했다. 회사의 모든 일이 다 그렇지만 IT도 인화를 바탕으로 하지 않으면 성공할 수 없다.

CIO포럼 회장 ktlee777@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