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과 정보통신기술(ICT)의 융합으로 탄생한 ‘가상피팅’ 기술이 해외에서 호평받고 있지만 정작 내수시장에서는 활성화되고 있지 않다. 기술과 특허 부문에서 세계 경쟁력을 확보하고도 국내 레퍼런스를 확보하지 못해 해외 진출이 좌절될 수 있다는 우려가 높다. 정부의 정책적 지원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가상피팅은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 가능하다. 온라인 쇼핑시 직접 옷을 입어보지 못하는 단점을 해결할 수 있다. 상품과 동일한 의류 디자인 기술과 소비자 외모, 신체사이즈를 반영한 아바타 기술이 필수다. 패션업계는 시제품 제작에 필요한 비용·시간을 크게 단축할 수 있다는 평가다. 이외에도 영화, 게임 등의 컴퓨터그래픽(CG) 분야에서 활용이 기대된다.
국내 기업·기관은 가상피팅 산업의 성장가능성을 보고 약 5년전부터 관련 연구개발(R&D)을 본격화 했다. 기술 고도화와 발빠른 특허 확보로 세계 시장에서 이미 우위를 선점했다는 평가다. 애니메이션 ‘겨울왕국’에 CG 원천기술을 제공해 주목받은 국내 벤처 클로버추얼패션은 최근 스톤브릿지캐피탈과 에이티넘인베스트먼트에서 45억원을 투자받았다. CG 기술로 유명세를 탄 에프엑스기어는 다음달 말 패션 현장에 바로 적용할 수 있는 ‘매직미러’로 글로벌 시장 진출을 본격화 할 계획이다.
가상피팅 기업의 발걸음은 바쁘지만 국내 수요 업계 반응은 차갑다. 해외에서는 유니클로, H&M 등 유명 의류 기업이 가상피팅 도입을 활성화 하고 있다. 반면 국내는 과거 일부 백화점·홈쇼핑업체가 도입했다 별다른 효과를 보지 못해 진척이 더딘 상황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3~4년 전에는 기술이 성숙하지 않아 가상피팅을 도입한 기업이 크게 실망해 전반적으로 이미지가 나빠졌다”며 “해외시장부터 공략하려는 기업이 늘어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말했다.
정부 지원이 미약한 것도 문제다.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생기연 등 일부 기관이 R&D를 지속하고 있지만 산업부, 미래창조과학부 등 부처 차원의 과제 발주나 가상피팅 산업에 특화한 정책지원은 찾아보기 힘든 상황이다.
가상피팅 업계는 국내 시장이 열리지 않고 있고, 국내 중소기업은 인지도가 떨어져 해외 진출이 쉽지 않은 만큼 정부의 관심과 지원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해외 기업과 연결을 위한 비즈니스 매칭, R&D 고도화를 위한 개발비 지원, 국내 패션 업계의 적용 확대를 위한 정책 지원 등이 과제로 꼽힌다.
산업부 관계자는 “생기연 외에도 가상피팅과 유사한 사업의 지원을 일부 진행하고 있다”며 “이번 ‘K-패션 프로젝트 인 밀라노’와 같이 우리 기술을 세계 시장에 널리 알릴 수 있는 기회를 점차 늘려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유선일기자 ysi@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