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가 불공정 거래를 저지른 업체들에 대한 솜방이 처벌을 내리고 소비자 피해에 소극적 모습을 보이자 손해액 인정제를 적극 활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달 리복 등 9개 운동화 브랜드 업체에 총 10억 7천 만 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신고 걷기만 해도 살이 빠진다’는 과장 광고로 소비자를 현혹했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같은 과장 광고에 대해 미국 경쟁당국은 업체들에 동의의결 제도로 총 684억원(6500만 달러)의 비용을 부담시켰다.
게다가 과징금은 국고로 환수되었을 뿐 피해를 입은 소비자에 대한 보상으로 이어지지 않고 있다. 소비자단체에서 피해보상을 위한 대국민 환불운동을 벌이고 있지만 피해액을 산정하는 게 쉽지 않다.
미국의 경우 이 같은 상황이 발생하면 해당업체에 소비자피해 배상금을 부담시키는 동시에 환불을 요구하는 소비자에게 구매금액의 87%를 지급하라는 결정을 내린다.
국내에서도 ‘손해액 인정제도’가 마련돼 있지만 공정위가 부당이득액 산정에 소극적이어서 손해배상소송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26일 국회입법조사처가 발표한 연구자료 따르면 소비자피해 구제 방안인 손해배상소송을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공정위가 손해액 인정제를 제대로 활용해야 할 필요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손해액 인정제란 현실적으로 실제 손해액을 입증하기 어려울 경우 법원이 공정위의 불공정행위에 대한 증거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손해액을 인정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즉, 공정위가 관련 매출액을 토대로 소비자피해 규모를 추산하면 소송 과정에서 법원이 이를 증거로 인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제도가 지난 2004년 도입됐지만 전혀 활용되지 않고 있다.
입법조사처는 “행정적 제재와 부당이득 환수의 성격으로 과징금을 분리 산정해 법원에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할 경우 부당이득 환수의 부분으로 산정된 과징금을 피해액을 평가하는 데 활용할 수 있다”고 밝혔다.
입법조사처는 그 근거로 공정거래법 위반에 따른 과징금에 부당이득 환수 성격이 포함돼 있다고 판시한 헌법재판소의 판례를 들고 있다.
특히, 국내에서는 미국이나 유럽 등과는 달리 공정위가 공정거래법 관련 조사권과 심판권을 갖고 있는 만큼 공정위가 직접 나서지 않을 경우 피해자가 실제로 소송을 제기하기 어려운 구조다.
정치권에서도 이런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최근 공정위가 담합으로 인한 과징금과 소비자피해액을 분리 산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기도 했다.
새정치민주연합 한명숙 의원은 지난 24일 공정위를 상대로 한 국정감사에서 “공정위가 공정거래법 위반으로 인한 소비자 피해내역은 물론 피해자들의 손해배상소송 현황 조차도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 의원은 “공정위가 소비자피해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며 “손해액 인정제를 적극 활용할 수 있도록 관련 분야 전문 인력과 예산을 확충하는 적극성을 보여달라”고 주문했다.
SR타임스
이행종기자 srtimes@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