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그의 이름은 아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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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 눌지는 박문장과 석아전에게 불호령을 치고 있었다. 박씨와 석씨는 피투성이였다. 눈코입이 무너져 있었다.
“내 기꺼이 너희들의 명예를 지켜주겠다. 너희 조상들과 너희 후손들을 생각하라.”
박문장의 입에서 피와 함께 대거리가 쏟아졌다.
“단지 저희만 이 일을 도모했다고 생각하시면 크게 오산이십니다.”
그의 기상은 아직도 정신 못차리고 종횡무진이었다. 왕 눌지의 안색이 어둠으로 저물어졌다. 보기 드문 형색이었다.
“난 도모한 자를 묻지 않았다. 정녕 나의 왕실까지 파괴할 작정이라면 네 조상들도 다시 죽여주고 네 후손들은 잉태조차 못하리라.”
석아전이 죽어가는 소리로 자신들의 죽어가는 삶을 겨우 그럴싸하게 포장하고자 했다.
“명예를 허락하여 주신 은혜 절대 잊지 못하옵니다.”
석아전의 눈에서 굵은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돌아가라. 집으로 돌아가라. 신라는 미추왕 이후 김씨가 왕이 되었으며 이제 모두 김씨 왕조의 확고한 운명을 받아들이리라. 신라 천 년 제국은 오로지 김씨만이 왕이 되리라.”
왕 눌지의 쩌렁쩡렁한 본색에 신하들이 저절로 엎드려 절하며 외쳤다.
“만세. 만세. 만만세.”
“신라는 위대한 황금의 제국이 될 것입니다. 길거리를 헤매는 개새끼 조차 황금목걸이를 하고 다닐 것입니다. 신라는 황금의 나라 용연향이옵니다.”
“만세. 만만세.”
왕 눌지는 비로소 진짜 신라 천 년 제국의 왕이 되었다고 자부했다. 이제부터 진짜였다.
“철이 곧 황금이 될 것이다. 이 철은 우리 신라를 황금보검으로 만들 것이다. 이제 머언 서역까지 신라의 이름을 떨치리라. 전설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느닷없는 시작이다.“
아틸라는 호노리아 공주가 미쳐 날뛰는 것을 보고 있었다.
“제가 아틸라의 아들을 잉태했습니다. 당신의 아들을 잉태했습니다.”
아틸라는 표정이 없었다. 호노리아 공주는 그럴수록 지치지 않고 집요했다.
“당신의 아들입니다.”
“당신이 나의 아들을 잉태했다는 것은 내가 로마를 짓밟았다는 증거이기도 하오.”
호노리아 공주의 얼굴이 바싹 싸늘해졌다.
“로마인들은 나를 야만인이라고 불렀소. 로마의 여자들은 훈족에게 겁탈 당하느니 자살을 택하겠다고 했소. 그런 대단한 자존심의 로마의 공주를 내가 짓밟았으니 결국 내가 로마를 짓밟은거 아니겠소?”
호노리가 공주는 성깔을 부릴 수가 없었다. 이제 그가 무서웠다. 두려웠다. 제맘대로 지나던 천하의 바람조차 그의 곁에 오면 잠시 멈출 정도였다.
“아마도 로마의 사학자들은 이 사건을 치욕적이라 생각하여 기록하지 않을 것이오.”
“하지만 훈족의 역사에서는 이 일을 기록할 것입니다. 반드시.”
“우리 훈족에게 글은 없소. 하지만 천 년이 흐른 후에도 우리는 남을 것이오. 그게 훈족이오. 아틸라의 훈족.”
호노리아 공주는 아틸라에게 완벽하게 압도당헸다. 그녀는 난생 처음으로 한 남자에게 복종하게 되었다.
“당신을 데리고 다시 서로마를 공격할 것이오. 태어날 나의 아들과 함께. 로마인들은 경악할 것이오. 그리고 당신은 창녀 취급받겠지. 아틸라의 창녀라고. 훈족의 창녀라고.”
호노리가 공주는 그저 웃었다. 반드시 그의 아들을 낳아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올 것이다. 반드시 올 것이다.”
아틸라는 혼잣소리를 했다. 오늘따라 그의 꿈은 슬퍼보였다.
플라키디아 황후는 발렌티니아누스 황제를 달래느라 오락가락하고 있었다.
“로마 시민들이 아에테우스를 황제로 여기고 있습니다. 아에테우스를 황제로 여기고 있다구요.”
발렌티니아누스 황제는 그의 포악한 성격대로 닥치는대로 부수고 있었다. 황제가 머무는 방은 이미 난장판이었다. 그의 방은 온통 분노와 절망, 증오뿐이었다.
“내가 지금 아에테우스를 죽인다면 로마 시민들 뿐 아니라 원로원 의원들 까지 나를 암살하려 할 것입니다. 어머니, 어머니...나의 어머니.”
발렌티니아누스 황제는 제정신이 아니었다. 그는 자신의 방패가 사실은 창이었음을 깨달았다.
글 소설가 하지윤 lif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