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이 바뀌자 ‘5년의 법칙’이 어김없이 등장했다.
정부조직개편안이었다.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도 5년의 법칙을 건너뛰지 않았다.
2007년 12월 29일.
제17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는 이날 오후 2시 서울 삼청동 인수위원회 사무실에서 이명박 당선인과 인수위원 24명 전원이 참석한 가운데 첫 워크숍을 열고 차기 정부의 국정철학과 추진과제에 대한 의견을 나눴다.

이 당선인은 이 자리에서 공직사회 초미의 관심사인 정부조직 개편 방향을 제시했다.
이 당선인은 “산업화 시대의 조직으로는 21세기에 성공할 수 없다는 국민적 합의가 있기 때문에 효율적 조직으로 바꿔야 한다”면서 “그 전제는 사람과 조직을 줄이기보다는 그 기능을 어떻게 조정해 업무를 효율적으로 할 수 있는지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당선인은 “조직개편은 인사 및 내각 구성과 관계가 있어 상당히 시급한 일인 만큼 우선순위를 두고 이번 17대 국회에서 집행하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당선인의 정부조직 개편 철학은 ‘작고 유능한 실용정부’였다.
이보다 이틀 전인 그해 27일 오전 9시.
김형오 인수위 부위원장(국회의장 역임, 현 부산대 석좌교수) 주재로 간사단 회의가 한 시간여 열렸다. 국정 주요 어젠다 결정과 인수위 활동 일정 등을 논의하기 위한 자리였다. 인수위에서 첫 정부조직 개편 방침과 시한이 제시됐다.
김 부위원장은 이날 “정부조직법은 최단시간 내에 완결해 국민 앞에 제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새 정부 조직 개편의 실무 키맨은 국가경쟁력강화특위 박재완 정부혁신TF팀장(기획재정부 장관 역임, 현 성균관대 교수, 한반도선진화재단 이사장)이었다. 그는 이날 브리핑에서 “사안의 시급성에 비춰 정부조직을 재편하고 기능을 조정하는 데 역량을 집중하겠다”면서 “1월 중순까지는 개정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밝혔다. 공직사회의 시선은 온통 TF에 쏠렸다.
정부혁신TF는 박재완 팀장을 비롯해 전문위원 3명, 실무위원 6명, 자문위원 11명으로 구성했다. 이 중 전문위원인 정광호 서울대 교수(현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실무위원인 이창균 박사(지방행정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역임, 현 지방자치발전위원회 자문위원), 비상임 자문위원인 김관보 교수(현 가톨릭대 교수) 등이 초안 작업을 했다.
박재완 당시 팀장의 증언.
“인수위가 출범한 후 정부조직 개편작업에 착수했습니다. 여러 곳에서 자료를 받았습니다. 이 자료를 기초로 해서 정부조직 개편안을 작성했습니다.”
당시 TF에서 실무위원으로 일했던 이창균 박사의 증언.
“당시 인수위 발령을 받고 갔더니 박재완 팀장이 정부조직 개편 초안을 준비해 놓고 있었습니다. 위원들이 업무를 분담해 개편 초안 작업을 했습니다.”
정부조직 개편안은 이보다 앞선 2007년 초 이명박 후보가 곽승준 고려대 교수(청와대 국정기획수석, 대통령직속 미래기획위원장 역임, 현 고려대 교수)에게 “내가 당선되면 정부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조직을 어떻게 바꾸면 좋을지 자료를 수집해 달라”고 지시했다.
이에 곽 교수는 서울대 행정대학원과 이 당선인의 싱크탱크 역할을 해 온 한반도선진화재단 등에 의뢰, 10여개 연구보고서와 개편안을 마련했다.
서울대 행정대학원은 14부 3처 안을, 한반도선진화재단은 1원 10부 2처 안을 제시했다. 정광호 교수는 서울대 안 작성을 주도했고 김관보 교수는 한반도선진화재단의 정부조직 개편을 대표 집필했다. 서울대 행정대학원 안은 부처 수가 크게 줄지 않았다. 하지만 선진화재단 안은 대부처주의에 초점을 맞췄고 부처를 대폭 줄였다. 과학기술부와 산업자원부, 정통부, 문화관광부의 산업진흥 기능과 IT 콘텐츠 개발 기능을 통합해 과학산업부를 신설하고 정통부의 정보통신 정책 및 규제 기능은 방송통신위원회로 통합하고 우정사업은 민영화한다는 안이었다.
정부조직 개편과정은 강행군의 연속이었다. 처음에는 실무위원들이 초안을 마련해 내부 논의를 거쳐 인수위 각 분과 간사들과 협의했다. 그러나 2008년 1월 3일 인수위 전 분과 간사가 참여하는 비공개회의에서 정부조직 개편은 분과별 의견을 수렴할 것이 아니라 TF에 전적으로 맡긴다는 방침을 정리했다.
이와 관련한 형태근 전문위원(방통위 상임위원 역임, 현 동양대 석좌교수)의 증언.
“인수위에 파견 나가 정통부 폐지안이 거론되기에 최경환 경제2분과 간사(현 경제부총리)에게 반대 입장을 전달했습니다. 최 간사도 정통부 폐지에 반대했습니다. 정부혁신TF에도 찾아가 정통부 폐지는 잘못이라는 뜻도 밝혔습니다. 그런데 조금 있다가 정부조직 개편에 관해 인수위에서 절대 개입하지 말라는 지시가 내려왔습니다.”
박재완 팀장은 내부에서 마련한 안을 가지고 수시로 이명박 당선인에게 올라갔다. 그가 사무실로 오는 시간은 대략 새벽 2시. 실무위원들은 2시 30분께 퇴근했다가 아침 7시 30분에 바로 출근했다.
박재완 팀장의 증언.
“통의동 당선인 집무실에서 한 번 회의를 하면 짧게는 네다섯 시간, 길게는 일곱 시간이 걸리기도 했습니다. 사무실에서 밤을 새우는 일이 다반사였습니다.”
이정균 박사의 말.
“박 팀장은 열정을 갖고 합리적으로 개편안 작업을 했습니다. 이명박 당선인은 박 팀장이 작성한 안을 보고받고 몇 차례 수정을 지시했습니다.”
김관보 교수의 증언.
“저는 비상임이어서 실무작업만 했습니다. 보고서 제출 후 최종 조직개편안은 인수위에서 작성했습니다.”
정부조직 개편을 검토하는 자리에는 이 당선인 최측근 몇 명만 참석했다.
이와 관련한 박재완 팀장의 말.
“그 자리에 몇 사람이 참석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명단을 밝히는 것은 시기상조라고 생각합니다.”
이 과정에서 정통부 해체설이 흘러나왔다.
1월 8일.
한국정보통신진흥협회 등 27개 정보통신 유관단체가 공동성명을 내고 “한국 경제 재도약을 위해선 앞선 IT정책 역량과 경험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도록 흩어진 IT정책 기능을 전문부처가 전담하도록 확대 개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유영환 정통부 장관(현 한국투자증권 부회장)과 김동수 차관 등도 인수위 등을 상대로 정통부 해체를 막기 위해 뛰었다.
유영환 장관의 증언.
“나름대로 노력을 했지만 정통부를 지켜내지 못했습니다. 박재완 팀장과 몇 차례 전화통화를 해 조직개편의 부당함을 지적했습니다.”
김동수 차관의 말.
“직접 박재완 팀장을 찾아가 만나고 자료도 전달했습니다. 정통부 존치 이유와 새 정부 역할 등에 대한 자료였습니다.”
하지만 현직 장차관이 사즉생(死卽生)의 자세로 뛰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았다는 지적도 있다.
1월 10일.
정통부는 IT 분야 정부조직 개편 방향에 대한 입장문을 공식 발표했다.
정통부는 이날 전 직원 명의의 발표문에서 “정보통신부 개편 이래 IT산업을 우리나라의 주력산업으로 키우고 세계가 인정하는 IT강국 건설의 꿈을 실현한 바 있다”며 “이는 무엇보다도 정부 각 부처에 흩어졌던 관련기능을 하나로 모아 일관된 정책을 추진한 것이 가장 큰 힘이 됐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정통부는 이어 “조직 일원화를 통해 앞으로 신산업 발굴 등 보다 적극적인 역할이 요구되는 부처를 오히려 조각조각 분해하는 방안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미 기울어진 정통부 폐지를 뒤집기는 역부족이었다. 우선 이명박 당선인 최측근 중 IT 전문가가 없었고 더군다나 당선인을 설득할 인물도 없었다.
그해 1월 14일 박재완 팀장은 정통부 폐지안이 들어있는 최종 정부조직 개편안을 이명박 당선인에게 보고해 결재를 받았다.
박재완 팀장의 말.
“해당 부처 의견도 물어서 반영했습니다. IT는 산업의 인프라라고 판단했습니다.”
1월 16일 오후 2시.
대통령직인수위원회는 현행 18부 4처 18청인 중앙행정조직을 13부 2처 17청으로 축소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차기 정부 조직개편안을 확정, 발표했다.
이경숙 인수위원장은 이날 삼청동 인수위 기자실에서 이 같은 내용의 정부조직 개편 최종안을 발표했다.
인수위가 확정한 안에 따르면 현행 18부는 통일부, 해양수산부, 정보통신부, 여성부, 과학기술부 5부가 통폐합돼 13부로 축소 조정됐다.
인수위는 산자부의 산업과 에너지 정책, 정통부의 IT산업 정책, 과기부의 산업기술 R&D 정책을 통합해 지식경제부로 확대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또 정통부의 정보통신진흥기금은 지경부로 이관하며 대통령 소속으로 방송통신위원회를 신설하며 방송위의 방송정책 및 규제, 그리고 정통부의 통신서비스 정책과 규제를 통합한다고 설명했다. 정통부의 전자정부 정보보호 기능을 행정안전부로 이관하고 정통부의 디지털콘텐츠 정책은 문화부로 이관하기로 했다.
이명박 당선인은 IT공약에서 ‘대한민국을 세계 최고의 디지털 국가로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이 당선인은 한국이 세계에 자랑하는 IT강국의 주무부처인 정통부를 폐지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언제나 그렇듯 세상일은 예측불가였다.
IT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