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전남혁신도시로의 공공기관 이전이 본격화되면서 수천억원 규모의 정보통신기술(ICT) 산업 창출이 기대되지만, 정작 지역중소기업은 대형 수도권업체의 ‘인력 빼가기’에 한숨만 깊어가고 있다.
수도권 업체들이 ERP사업 등 지역ICT 사업수주를 위해 컨소시엄 구성과 지사 설립 과정에서 중소기업 인력을 빼가고 있기 때문이다.
30일 한국ICT융복합협동조합과 지역 IT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말부터 300여곳의 지역중소기업 근무인력 1000여명이 수도권업체로 대거 자리를 옮겼다. 수도권 기업이 막대한 자본력을 무기로 지역인력을 사실상 흡수하고 있는 셈이다.
실제로 A사는 지난 6월 시스템통합관리업무를 담당하던 프로젝트 매니저 등 직원 8명이 한꺼번에 퇴사했다. 연봉인상 등 파격적인 인센티브를 내건 수도권 업체로 이직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공공기관의 SW유지보수를 담당하던 이 회사는 비상상황을 맞았다. 신규 사업계획에도 빨간불이 켜졌다.
의료용 SW업체를 운영하는 B사도 인력난 때문에 근심이 깊어가고 있다. 팀장급 두 명이 두 달 전 돌연 퇴사하면서 신규 사업은 고사하고 기존 유지관리 업무에도 구멍이 났다.
C사도 올해 초 5년 이상 근무한 경력직 직원 3명이 회사를 관뒀다. 하지만 바로 업무에 투입할 수 있는 경력직 충원은 ‘하늘의 별따기’처럼 어려워 이중고를 겪고 있다.
한전 등 16개 기관이 이전하는 나주혁신도시는 1조원 규모의 SW·CT 융합사업에 3000명의 인력수요가 필요한 것으로 파악됐다.
문제는 이 같은 현상이 ‘이제 시작’이라는 점이다. 타지역도 사정이 엇비슷하지만 에너지 및 문화콘텐츠 이전기관이 대다수인 광주전남혁신도시는 정도가 심각하다.
연말부터 내년까지 한국전력을 비롯해 아시아문화전당, 우정사업정보센터, 광주통합전산센터 등 2000억원 가까운 신규 물량이 쏟아지면서 인력난은 가속화될 전망이다.
근본적인 이유는 대다수 혁신도시 이전기관이 국가기관이다 보니 지역제한 등 중소기업을 위한 상생대책이 전무해 대형 IT기업이 독식할 수밖에 없는 구조 탓이다.
실제로 지난해 나주혁신도시 이전을 마친 우정사업정보센터는 수십억원 규모의 시스템통합사업 대다수를 수도권 업체가 수주했다.
중소기업이 한국ICT융복합협동조합을 구성해 ‘지역제한 적용’ 등을 지속적으로 요청하고 있지만 반영될지는 미지수다.
A사 사장은 “수도권 업체들이 지역으로 진출하면서 경력직을 중심으로 인력 빼가기가 심각하다. 혁신도시 이전으로 기대가 부풀었는데 이대로 가다간 문을 닫을 판”이라며 “지역 중소기업의 경우 자본금과 사업수행실적이 턱없이 부족해 사업참여 기회조차 갖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하소연했다.
김창식 한국ICT융복합협동조합 이사장은 “광주·전남 ICT업체는 신규시장에 투입할 적정인력을 보유할 수 없는데다 인력 빼가기 등 악순환에 빠지게 돼 자연도태가 우려된다”며 “지역업체 40% 의무컨소시엄 도입 등 공공기관과 지역중소기업이 상생할 수 있는 법·제도적 장치가 반드시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광주=서인주기자 sij@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