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윤 작가의 아틸라, The 신라 제61회

하지윤 작가의 아틸라, The 신라 제61회

9. 그의 이름은 아틸라




5

“아에테우스는 자신의 피비린내 나는 공(功)이 엉뚱한 부족이나 한심한 인간에게 넘어가는 것을 막았을 뿐이다.”

오에스테스가 고개를 비딱하게 틀었다. 이해하기 힘들다는 표정이었다. 그러나 이 표정마저도 충성을 비튼 모순일 수 있었다. 아틸라와 오에스테스는 서로 동상이몽이었고 서로 상대의 동상이몽을 알고 있었고 서로 모른 척 하고 있었다. 언제 어떻게든 곪아터질 무의미한 신뢰였다. 하지만 신랄한 신뢰이기도 했다.

“아에테우스가 우리를 끝까지 쫒지않은 이유라는 것이...”

아틸라는 오에스테스 얼굴에 바짝 다가왔다. 그의 칼이 든 눈빛이 오에스테스의 눈을 찌르고 심장을 찔렀다. 순간 심장이 쿵 했다.

“그는 실제 전투를 고트족에게 맡겼다. 로마인들이 늘 그렇지. 그런데 고트족이 나를 추격해서 나를 이겼다면 그 공은 고트족에게 돌아갔을 것이다. 그는 로마를 위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위해서 그랬던 것이다.”

오에스테스는 지나치게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야비한 사람이군요. 능력은 출중하지만...”

“오에스테스, 누구나 야비하다. 서로 모르는 척 할 뿐이지. 나도 알고 너도 안다.”

아틸라 눈 속의 칼은 그 날을 푸르게 푸르게 갈고 있었다. 서걱서걱, 그 소리가 섬뜩했다.

“로마는 절대 게르만족을 이기지 못한다. 지금까지 로마를 위협하는 게르만족과 그들 대신 싸워준...”

“우린 훈족입니다. 아틸라 제왕님이십니다.”

“그렇다. 아에테우스는 우리 훈족이 멸망하기를 바라지 않는다. 우리가 살아남아서 게르만족과 싸워줘야 하니까.”

“로마쪽에서 본다면 그는 반드시 의심을 살 것입니다. 결국 그의 발목을 잡고야 말겠군요.”

아틸라는 칼을 품은 눈빛을 너그러이 거두었다.

“어차피 그에게 정치적 배경도 정치적 자리도 없다. 그는 승리할수록 죽어야한다. 그게 진짜 전사의 최후다.”

아틸라는 날아오를 듯 갑옷을 입고 밖으로 나갔다. 오에스테스는 터져나오는웃음을 참기 어려웠다.

‘로마는 내가 지배한다. 내가 지배한다. 로마, 로마. 발렌티니아누스와 아에테우스는 서로 싸우다 죽고 말 것이다. 하하하.’

아틸라가 밖으로 나서자마자 훈의 전사들이 아우성이었다. 불순하고 위험한 불량배같은 훈의 전사들은 또 하나의 전쟁을 준비중이었다. 그들에게 아틸라는 지상의 역사를 바꾸게 될 전쟁의 가건물(假建物)을 보여줄 생각이었다.

호노리아 공주는 유난히 뚱뚱한 배를 보며 한껏 들떠있었다.

“난 그동안 불구의 인생을 살았다. 이제 내가 아틸라의 아들만 낳는다면 로마는 나의 것이 된다. 내가 로마를 지배할게 될 것이다. 나의 어미가 그랬던 것처럼. 그렇게 되면 나는 비로소 불구의 인생을 버리게 되리라.”

그때 호노리아 공주의 시녀가 온갖 방정을 떨며 들어섰다.

“아틸라님이 곧 결혼하신다고 합니다. 결혼하신대요. 결혼이요.”

호노리가 공주는 놀라서 급히 일어나려다 그만 앞으로 자빠졌다. 배가 쿵 바닥과 충돌했다. 배가 베베 쥐어짜듯 아팠다. 일어나지 못할 정도였다. 시녀가 호노리아 공주를 부축해서 겨우 일으켰다.

‘무겁긴 되게 무겁네. 뱃속에 똥이 찼나? 무거워. 무거워.’

“어머, 어머, 공주님, 공주님.”

시녀는 겁먹은 마냥 벌벌 떠는 척을 했다. 만약이 아이라도 유산되면 자신은 목이 댕강 잘릴 것이 뻔했다. 호노리아 공주는 아픈 배를 두 팔로 감싸안고 데굴데굴 굴렀다.

“으으윽...”

호노리아 공주는 지렁이처럼 꿈틀꿈틀 아등바등 하고 있었다.

“이 아기를 잃으면 안된다. 아틸라는 다시는 나와 동침하지 않을게 뻔해. 이 아기를 잃으면 나도 끝장이야.”

“공주님, 공주님 누워보셔요. 제가 배를 살살 만지겠습니다.”

호노리아 공주는 시녀의 뺨을 주먹으로 뻐억 갈겼다. 시녀의 고개가 한 바퀴 획 돌았다. 눈에 흰자위만 남았다.

“아틸라가 결혼을 해? 지금 아내만 해도 너무 많다. 내가 마지막이어야 한다. 도대체 그 창녀가 누구냐?”

글 소설가 하지윤 lif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