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독감(Spanish influenza)은 지난 1918년 발생한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로 2년 만에 전 세계에서 2,500만∼5,000명 명에 달하는 목숨을 앗아갔다. 그런데 이런 스페인독감 바이러스를 개조한 신형 바이러스를 만든 바이러스 학자가 있다. 사람이 면역력이 없는 위험한 바이러스를 왜 개발했는지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이런 바이러스를 만든 이유는 뭘까.
이런 바이러스를 만든 사람은 위스콘신대학교의 바이러스 학자인 요시히로 카와오카(Yoshihiro Kawaoka). 그의 바이러스 연구소에는 영하 80도 상태의 특수 냉동 장치가 있다. 이 장치의 벽은 두께가 18인치 콘크리트로 덮여 있다. 이곳에 들어가려면 잠수함에 쓰이는 것 같은 출입구를 이용해야 한다. 내부에는 500개가 넘는 알람 장치가 있다. 외부인이 침입하려고 하면 24시간 언제든 감지해 연락을 취하게 된다.
연구소에 출입하려면 속옷을 포함한 모든 옷을 벗은 다음 에어필터를 거쳐 일회용 마스크와 전용 장비를 착용해야 한다. 반대로 나갈 때에는 장비를 모두 벗은 다음 5분 동안 비누를 이용해 샤워를 해야 하는 등 엄격한 과정을 거쳐 외부로 바이러스가 새지 않도록 관리하고 있다.
이 연구소는 요시히로 카와오카가 발표한 스페인 독감 변종 바이러스 구축 방법에 대한 연구가 영향을 미쳤다. 지난 2008년 관련 연구 촉진을 위해 1,250만 달러를 들여 설립한 것이다.
연구소 내 특수 냉동장치에는 1918년 스페인 독감 바이러스 변종 외에 2009년 대유행한 신종 플루 변종, 2009년 100만 명 이상 목숨을 앗아간 신종 인플루엔자(H1N1) 유전자를 포함한 다양한 바이러스가 보관되어 있다. 이들 바이러스는 손쉽게 사람의 면역력 체계를 통과할 수 있다.
요시히로 카와오카가 지난 2012년 학술지 네이처에 발표한 H5N1 바이러스에 대한 연구는 변종의 재구성 방법을 자세하게 설명한 것으로 세계적으로 논란의 대상이 됐다. 올해 6월에 그의 연구팀은 스페인 독감 바이러스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해외 언론은 당시 미친 인플루엔자 바이러스 만들기, 과학자가 인류를 죽일 수 있는 바이러스를 만들었다는 제목을 뽑아 다뤘다. 과학자들 역시 미친 짓이라면서 뉘른베르크 강령 원칙을 깬 것으로 연구소 사고가 발생하면 재앙이 될 것이라는 반대 의견이 많았다.
보통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는 오리 같은 물새가 운반을 맡는다. 물새가 바이러스를 보유한 상태에서 호수나 바다에 접하면 돼지 같은 다른 동물이 감염되게 된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돼지 체내에 H5N3이나 H1N1 같은 바이러스 2종이 한꺼번에 들어오게 되고 체내에서 포유동물의 면역 체계를 무너뜨릴 바이러스가 나올 수 있다. 이 과정을 거치게 되면 사람을 감염시킬 바이러스 유행이 시작되는 것이다.
요시히로 카와오카의 연구는 이런 바이러스 변질 과정을 인위적으로 발생시키는 것이다. 바이러스가 자연 변질 단계를 파악하고 방어 수단을 미리 강구하려는 데에 있다는 것이다.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는 물새나 닭, 돼지, 말, 개 등을 통해 변질되어 간다. 하지만 독감을 제어할 수 있다면 유행이 되기 전에 거액의 손실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다.
수의사이기도 한 그는 이런 연구가 인플루엔자에 의한 독감에 대처하는 현실적인 방법 가운데 하나라고 주장한다. 또 재앙이 일어날 만한 위험한 연구가 아니라고 말한다. 엄격하게 관리하는 연구소에서 사고가 일어날 확률보다 공원에서 오리에게 모이를 주는 게 독감에 걸릴 가능성에선 훨씬 높다는 주장이다. 관련 내용은 이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한편 미국 정부의 경우 지난 10월 17일자로 변종 바이러스 관련 연구에 대한 자금 지원을 전면 차단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런 연구가 자칫 위험한 바이러스를 실험실 밖으로 확산시킬 수도 있다는 이유에서다.
전자신문인터넷 테크홀릭팀
이원영IT칼럼니스트 techholic@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