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 관련 발명은 1990년대 전까지만 해도 자연의 법칙을 이용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특허의 범주에 포함되지 않았다. 그러다 뮤추얼펀드 관리 특허, 아마존의 원 클릭(One-click) 특허 등의 등장으로 새로운 특허 영역이 생겨났다. 이른바 ‘BM 특허’다.
‘영업 방법 발명’으로 불리는 BM 특허는 컴퓨터·인터넷 등 정보통신기술(ICT)과 영업방법 등 사업 아이디어를 접목해 출원하는 특허를 말한다. 우리나라에서는 2000년대 정부가 IT강국을 건설하겠다는 내용의 정책적 비전을 제시하면서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최근 지식재산(IP) 분야의 최대 이슈는 IP금융이다. IP금융은 IP를 기반으로 투자·융자·보증 등의 자금을 공급하는 금융활동 전반을 말한다.
IP금융은 지난 2012년 6월 ‘동산·채권 등의 담보에 관한 법률’이 제정된 후 투자자산, 지식재산권 등에 담보권 설정이 가능해지면서 활발히 논의되기 시작했다. 지난해 7월 정부가 관계부처 합동으로 ‘창조경제 실현을 위한 지식재산 금융활성화 방안’을 발표하면서 시중 금융기관이 지식재산 관련 금융 상품을 개발해 내놨다.
현재 우리나라의 IP금융은 초기 단계다. 지식재산 자체에 투자되는 금융의 80% 이상이 정부 주도로 공급되고 있다. 하지만 BM 특허처럼 10년 후에는 하나의 산업 분야로 자리 잡을 것으로 예상된다.
IP금융산업이 성장할 수 있는 토양을 만들기 위해서는 선행돼야 할 일이 있다.
먼저 지식재산 가치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 지식재산 가치를 정확히 평가하는 것은 아주 어려운 일이다. 특허기술은 적용될 지역이나 시장 동향, 적용할 제품의 유형, 특허의 권리뿐만 아니라 평가자의 주관에 따라서 가치가 달리 매겨질 수 있다. 이 차이를 줄이고 가치평가를 객관화해 신뢰성을 가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 평가시스템이 IP금융이 발전할 수 있는 가장 기초적인 인프라다.
둘째로 특허가 지식재산권으로서 가치를 인정받는 분위기가 형성돼야 한다. 특허청이 이번 국감에서 밝힌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 특허출원 건수는 총 20만여건으로 같은 해 미국의 56만여건의 3분의 1 수준으로 높다. 하지만 특허침해 소송 건수는 미국의 16분의 1, 건당 특허침해 소송 배상액은 83분의 1에 불과하다.
이는 우리나라 특허의 질이 미국에 비해 낮은데다 사회적으로 특허침해를 가벼운 행위로 인식하고 특허를 침해해 발생한 손해에 대해 관용하는 태도에 기인한 것이다. 특허침해는 타인의 재산권을 위협하는 명백한 범죄행위라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특허권자의 권리를 적극적으로 보호해주는 방향으로 사회적 인식전환이 필요하다.
아울러 IP금융을 통합해 선도적으로 수행할 기관이 출현하는 것도 기대해 본다. 이제는 단순히 기술거래 기반 구축과 활성화의 시대가 아니다. IP금융의 시대가 코앞이다.
지난 2000년 정부는 IP거래 기반을 조성하고 시장을 창출하기 위해 한국기술거래소(KTTC)를 개소했다. 한국기술거래소는 △기술거래 시장 체계 확립 △기술가치의 객관적 평가 체계 구축 △기술평가 시장 활성화 등 다양한 업무를 수행했다. 하지만 지난 2009년 산업기술진흥원에 통폐합돼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말았다.
이런 요건이 충족돼야 다양한 방향으로 발전한 IP금융 시대를 열 수 있을 것이다. 최근 도입되고 있는 여러 유형의 IP금융 기법 중 하나인 ‘세일즈 앤드 라이선스 백(Sales&License Back)’의 확대도 눈여겨볼 만하다.
세일즈 앤드 라이선스 백은 IP를 가진 기업이 IP를 펀드에 매각해 자금을 조달하고, 펀드는 기업에 사용료를 받고 IP를 빌려주는 것을 뜻한다. IP의 가치를 평가하고, 이를 담보로 잡는 대출의 성격을 동시에 지녔기 때문에 관련 시장의 확대가 용이해 보인다.
BM 특허가 지난 2000년도 정부의 IT강국이라는 정책 추진에 힘입어 활성화됐듯 이번 정부가 10년 뒤 IP금융 시대의 토대를 마련했다는 평가가 나올 수 있기를 바란다.
오상균 특허법인 세원 대표변리사 man@sewoni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