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제조혁신 신화`를 다시 쓰자

[기고]`제조혁신 신화`를 다시 쓰자

“스마트 앱세서리 경쟁력을 높일 것.”

아이리버의 최대주주인 보고펀드와 양도 계약을 체결한 후 SK텔레콤 측에서 흘러나온 말이다. 앱세서리(Appsessory)는 앱과 액세서리의 합성어로 앱과 연동해 스마트폰, 태블릿 등 스마트 기기의 기능을 확장시켜주는 주변기기를 가리킨다. 스마트폰 앱과 연동되는 다양한 앱세서리가 향후 ICT 시장을 주도할 것이란 관측도 나오고 있다. 실제로 시계, 안경, 건강기기 등 새로운 영역에서 서비스 융합 디바이스 출시가 확산되고 있는 추세다.

스마트폰과 아이리버의 인연이 악연으로만 끝나지는 않을 모양이다. 세계 최대 소비자 가전 전시회로 불리는 CES에서 기조연설자로 나선 빌 게이츠가 ‘아이리버 H10’을 들고 나와 직접 시연하며 격찬했던 때가 2005년 1월이었다. 하지만 아이리버의 제조사였던 레인콤은 그로부터 불과 2년여 만에 보고펀드로부터 600억원을 긴급 수혈 받을 만큼 경영이 악화됐다. MP3 기능이 내장된 스마트폰의 등장 탓이다. 이후 아이리버로 사명을 바꾸고 재기를 노렸지만 역부족이었다. 보고펀드가 결국 296억원에 아이리버 지분을 SK텔레콤에 넘긴 것이다.

스마트폰이 삼키고 있는 것은 비단 MP3 시장만이 아니다. 내비게이션, 게임기, 녹음기, 알람시계, PC까지 빠른 속도로 잠식하고 있다. 디지털카메라는 지난해 시장 규모가 40%나 줄었다. 최근에는 신용카드와 교통카드 시장까지 빨아들이고 있다. 수요가 느는 것은 스마트폰과 여기 들어가는 부품 및 소프트웨어 이라는 진단까지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이제 제조업은 ICT와 결합해 완전히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고 있다. 이 거대한 흐름에 편승하기 위한 세계 각국의 변화도 두드러진다. 이른바 제조혁신이다. 국가 차원의 리쇼어링(Reshoring)으로 부활하고 있는 미국, 아베노믹스의 일본, 인더스트리 4.0 슬로건 아래 완전한 자동생산 체계를 구축 중인 독일 등 제조업의 주도권을 놓지 않으려는 선진국들의 움직임이 부산하다. 우리나라도 2020년까지 1만개의 스마트공장을 건설하는 등 융합형 신제조업으로 대변되는 제조업3.0 시대를 향한 신호탄을 쏘아올린 상태다.

창립 25주년을 맞은 한국생산기술연구원의 새로운 비전도 ‘제조혁신을 선도하는 글로벌 KITECH’다. 제조혁신은 철저히 중소·중견기업의 혁신 역량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진행할 계획이다. 기술력 있는 기업들을 발굴해 맞춤형 R&D를 추진하고, 기술 실용화를 지원해 글로벌 경쟁력을 가진 강소기업군으로 집중 육성할 방침이다.

독일의 저력은 2000여개의 히든챔피언에서 나오고, 히든챔피언의 씨앗은 ‘미텔슈탄트(Mittelshtant)’에서 움튼다는 말이 있다. 미텔슈탄트는 독일 정부가 2차 세계대전 후 신속한 경제 재건을 위해 기술력 있는 중소 제조기업들을 키우면서 붙인 이름이다.

이들 미텔슈탄트 곁에는 프라운호퍼연구협회가 있다. 현장 경험이 풍부한 2만2000여명의 연구원들이 전국 66개 연구소에 분산돼 기업을 돕기 때문에 독일 기술경쟁력의 원천으로도 불린다. MP3 기술을 세계 최초로 개발한 것도 바로 프라운호퍼였다.

기술실용화에 더욱 집중해 중소·중견기업을 제조혁신의 주역으로 성장시켜야 한다는 책임감이 무겁다. 프라운호퍼가 개발한 MP3 기술을 가져와 전 세계에 상용화 돌풍을 일으켰던 우리 중소기업의 저력. 다시 그 신화를 써야 할 시점이다.

이영수 한국생산기술연구원 원장 yslee@kitech.r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