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지난달 말 강영철 국무조정실 규제조정실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제1차 기술규제정책포럼’에서 규제 사각지대 우려가 제기됐다. 나노 소재와 제품 규제가 없어 제품 판매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기업 사례가 소개됐다. 한 쪽에서는 넘쳐나는 규제를 줄이려 안간힘을 쓰는 가운데 또 다른 쪽에서는 필요한 규제가 없어 여려움을 겪는 모순된 상황이 펼쳐진 것이다.
#2. 산업통상자원부 산하 A협회 관계자는 “단순히 규제를 줄이는 게 능사가 아니다. 적시적소에 규제를 적용하는 정책이 필요하다”며 최근 정부 규제개혁 작업에 불만을 토로했다. A협회가 맡는 산업 특성상 규제 축소가 아닌 효율적인 규제 개선이 더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는 “정부가 아예 없앨 수 있는 규제에만 관심을 가질 뿐 비효율적인 규제를 찾아내 개선하는 것에는 상대적으로 관심이 낮다”고 지적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직접 나서 규제혁파를 강조하고 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이른바 ‘규제개혁의 역설’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함께 높아지고 있다. 단기적인 실적과 성과 창출에 급급한 나머지 자칫 규제개혁으로 인한 부작용이 확산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졌다.
정부는 지난 3월 대통령 주재 ‘제1차 규제개혁장관회의’를 시작으로 규제개혁에 총력을 기울였다. 불필요한 규제를 찾아 폐지하고 불합리한 규제는 개선하겠다는 것이 규제개혁의 골자다.
하지만 국민과 기업 사이에는 ‘규제개혁=규제완화’라는 인식이 강하다. 박 대통령이 규제를 ‘암덩어리’ ‘쳐부숴야 할 원수’라는 식으로 언급하는 등 정부가 규제를 없애는 부분에 지나치게 큰 방점을 찍은 탓이다. 실제로 1차 규제개혁장관회의 때도 초점은 경제규제 연내 10% 감축, 대통령 임기 내 20% 감축에 맞춰졌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대부분의 정부 부처와 지방자치단체는 진정한 의미의 규제개혁보다는 규제완화에 중점을 뒀다. 중앙 부처와 지자체를 따라 산하 및 유관 기관도 규제완화, 엄밀히 말하면 규제축소 지원작업에 치중했다. 업계 관계자는 “산업계 측면에서 규제완화 기조는 반갑지만 자칫 필요한 최소한의 규제에도 영향이 미칠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대형 규제 이슈 일변도로 흐르는 것도 경계 대상이다. 앞서 규제개혁장관회의 때마다 부처별로 온라인 쇼핑몰 개인 가입제도 개선, 무인자동차 관련 법령 정비 등 굵직한 규제 개선 발표가 이어졌다. 하지만 매번 화제를 일으킬 만한 규제혁파 사례를 발굴, 발표하는 것 자체가 정부에는 또 다른 짐이 됐다. 최근 국무조정실은 연말 3차 회의를 앞두고 각 부처에 주목받을 수 있는 규제개혁 계획을 찾아 보고해줄 것을 주문한 것으로 전해졌다.
규제완화 기조에 따른 가치 대립도 문제다. 규제 정책이 어느 한쪽으로 흐르면 균형감각을 상실할 공산이 크다.
가령 수도권 규제 완화는 기업 측면에서 오래전부터 바라온 것이지만 지역 균형발전 측면에서는 어긋나는 정책이다. 환경 관련 규제도 마찬가지다. 규제를 완화하자니 환경 문제가 커지고, 반대로 강화하면 산업 발전을 가로막을 수 있다. 규제개혁 과정에서 또 다른 부작용을 막으려면 범정부 차원에서 균형감각을 유지할 수 있는 협업 체계 강화가 절실하다.
정부 규제개혁 방침이 다른 분야에 엉뚱한 파장을 일으키는 것도 문제점으로 꼽힌다. 시험인증업계는 올 초 정부의 발전 정책이 나와 고무됐지만 정부의 규제완화 기조가 부상하자 숨을 죽였다.
시험인증은 제품과 서비스 산업에 필수적인 것으로 산업 발전을 돕는 측면이 강하지만 줄여야 할 또 하나의 규제로 여겨진 나머지 엉거주춤한 상태가 됐다. 그 이후 세월호 사고가 터지면서 다시 시험인증의 중요성이 대두됐지만 오락가락하는 정책 기조에 업계 혼란은 가중됐다.
시험인증기관 관계자는 “규제개혁 정책이 블랙홀처럼 모든 것을 빨아들이다보니 예상치못한 변수로 작용했다”며 “모든 규제를 제거해야 할 대상으로 보는 시각은 곤란하다”고 우려했다.
이를 개선하려면 ‘건 수’라는 실적 일변도 정책의 비중을 점차 낮춰가면서 중장기적으로 규제개혁 시스템과 인프라 정비에 힘을 써야 한다는 지적이다.
정치권도 효율적인 규제개혁 정책 추진을 주문하고 나섰다. 이한구 새누리당 경제혁신특별위원장은 지난 4일 정책의원총회에서 “(지금까지 정부가) 규제개혁이라고 하면서 대부분 간헐적으로 또는 이벤트성으로 공무원 주도로 시혜를 베푸는 식으로 해왔다”며 “국민이 주도하고, 과학적·체계적으로 일을 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자료:업계 종합
이호준기자 newlevel@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