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SDS가 ‘신호탄’이었다면 약 한달 간격으로 다음달 18일 상장하는 제일모직은 삼성그룹 지배구조 개편의 ‘몸통’ 격이다. 제일모직이 금융감독원에 제출한 공모가 밴드는 4만5000원~5만3000원 수준이다. 구주매출에는 주요 주주인 계열사 삼성카드·삼성SDI와 KCC가 참여한다. 삼성SDI는 제일모직 보유 지분 8% 가운데 4%를 구주매출 방식으로 매각한다. 삼성카드는 보유 지분 5% 전량을 내놓게 되며 제일모직 지분 17%를 보유한 KCC는 6%를 처분키로 했다.
금융투자업계는 제일모직의 현재 공모가로 추정할 경우 약 7조~9조원, 상장 후 주가 상승을 고려해 10조~15조원 이상의 기업 가치가 있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당초 예정시기인 내년 1분기 보다 상장일정을 앞당긴 제일모직은 삼성 지배구조 정점에 위치했다. 제일모직 지분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25.10%,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과 이서현 제일모직 사장이 각각 8.37%씩, 그리고 이건희 회장이 3.72%를 보유해 오너 일가 소유 지분만 45.6%에 달한다. 중요한 것은 제일모직→삼성생명→삼성전자→삼성SDI→삼성물산 또는 제일모직→삼성생명→삼성전자→삼성카드→제일모직으로 이어지는 그룹 순환출자 구조의 최상단에 있다는 점이다.
제일모직이 지주회사 전환의 첫 단추가 될 것이라는 지배구조 재편 시나리오가 상장과 함께 현실화될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인 이유다.
지난달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삼성생명과 삼성화재 등 금융계열사 지분 취득절차를 진행하면서 지주회사 전환 시나리오가 다시 부상했다. 금산분리법과 상호출자 제한기업 계열사 지분 교환 제약 등이 거론되면서 한풀 꺾였던 지주사 설은 그룹 측의 부인에도 꾸준히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제일모직 상장 이후 삼성전자의 인적분할이 이뤄지고 제일모직 구주 매출로 삼성카드가 보유한 지분 5%를 모두 처분하면 삼성전자를 홀딩스(투자회사)와 사업자회사로 나누는 후속 작업이 진행될 것이란 각본이다. 이 경우 이 부회장이 0.6%만의 삼성전자 지분으로 삼성전자 지배력을 높일 수 있다.
중간금융지주 시나리오도 재차 힘을 얻고 있다. 삼성증권이 지난달 자기주식 220만주를 사들인다고 밝히면서 도화선이 됐다. 삼성증권이 자사주 지분율을 5% 이상으로 높이면서, 향후 그룹 내부의 삼성증권 지분을 삼성생명으로 매각할 경우 금융계열사 지분이 삼성생명으로 이동하는 시나리오다. 앞서 삼성생명이 삼성화재 지분을 매입한 것도 이같은 행보를 위한 전조현상으로 분석됐다.
최근 삼성카드는 보유 중인 제일모직 주식 624만9950주 전량을 구주매출을 통해 팔기로 했다. 삼성카드는 자사가 구주매출로 처분하는 제일모직 지분 중 일부에 대해 계열사인 삼성증권과 총액인수계약을 맺었다고 지난달 31일 공시했다.
유효정기자 hjyou@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