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 이미 오래된 운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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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틸라 힐디코, 아틸라 힐디코...”
호노리아 공주는 한없이 미쳐가고 있었다. 자신의 시녀를 처참하게 죽인 이후, 그 누구도 호노리아 공주의 시중을 들려는 자가 없었다. 훠이훠이 찾아오는 새를 쫒는 허수아비였다. 완벽하게 혼자였다. 훈의 진영에서는 호노리아 공주를 제왕 아틸라의 여자로 대우해 주지 않았다. 그들에게 호노리아 공주는 헛것의 정점이었다. 그들에게 호노리아 공주는 강렬한 장식도 없이 궤멸하는 로마의 상징일 뿐이었다.
“아틸라 힐디코, 아틸라 힐디코...”
그녀의 중얼거림은 급속도로 빨라졌다. 발렌티니아누스가 라벤나를 버리고
도망갔다는 소식은 그녀를 더욱 미쳐버리게 만들었다.
로마는 아틸라의 것이 아니라 자신의 것이어야 했다. 자신이 낳을 아들의 것
이어야 했다.
그래서 힐디코가 막강한 라이벌이었다. 그녀의 미래를 망칠 죽일년이었다.
“발렌티니아누스도 불과 여섯 살 때 황제의 자리에 올랐어. 어머니가 뒤에서 섭정을 했지. 힐디코도 분명 그럴거야. 확실히 그럴거야. 아틸라가 밀어줄거야.”
호노리가 공주는 미친년처럼 중얼거리며 우왕좌왕 서성이다가 문득 멈추었다.
“그래. 죽이는거야.”
호노리아 공주는 비로소 웃었다. 해맑은 웃음이었다. 원하는 걸 얻은 아이의 웃음이었다. 그러나 악랄함을 은폐하고 있는 격조 낮은 무자비였다.
“죽이는거야, 죽이는거야, 죽이는거야 .하하하.”
미친듯이 웃어제끼고 있는 그녀 앞에 오에스테스가 나타났다. 그의 눈빛 또한 그녀와 동격이었다.
미사흔은 시대의 격렬한 폭풍 속에서 무력해진 스스로에게 미안했다.
“난 결국 아무것도 하지 못했구나. 아무것도.”
자객은 그저 분노의 폭풍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눈빛은 이미 저승에 도달해있었다.
“자네 이름이 무엇인가?”
자객은 피식 웃었다. 짧은 웃음이었지만 아팠다.
“이름 없습니다.”
그러나 미사흔은 집요하게 물었다. 꼭 알고싶었다.
“너와 내가 이렇게 긴 여정을 수행하는 것도 분명 간단한 운명은 아닐세. 이름을 말해보게. 과연 자네가 이름으로 제대로 불리운 적이 있을까 싶지만, 나는 자네 이름을 부르고싶네.”
자객은 울컥했다. 분명히 이름은 있었다.
“이미 오래 전, 이름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불리운 적은 없습니다. 전 이름으로 스스로를 치장하지 않습니다.”
미사흔은 긴장한 채 그를 쳐다보았다.
“말 해보게. 이름으로 치장하지 않은 자네의 삶과 죽음을 알고싶네.”
“...에첼입니다.”
미사흔의 눈은 놀라움으로 커졌다.
“어찌 삶과 죽음이 이렇게 정교하게 짜여져 있단 말인가? 에첼이라면?”
“에첼이라는 이름은 곧...”
미사흔은 그의 대답을 기다릴 필요가 없었다. 어쩌면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을지 몰랐다.
“아틸라...”
“우리 모두는 아틸라, 라는 이름의 가치를 완성하는 하나의 실용성일 뿐입니다.”
순간 매몰찬 폭우가 그를 삼켰다. 그가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에첼이 보이지 않았다. 미사흔은 폭우 속에서 더할 수 없이 에첼이 그리웠다. 비로소였다.
“에첼...”
플라키디아는 아에테우스를 아무 관련도 없었다는 듯 버리기로 작정했다. 그녀는 아틸라와 싸우는 대신 아틸라와 협상을 추진했다. 물론 협상자로 나설 사람은 아에테우스는 아니었다.
“아에테우스는 너무 커버렸다. 이미 이용할만큼 이용했다.”
플라키디아는 노예에게 마사지를 받고있었다. 옆에서 역시 마사지를 받고있는 발렌티니아누스도 마찬가지 생각이었다.
“그는 누릴만큼 누렸습니다. 황제로 추대하자는 말까지 들었으니 한 개인에게 그만한 영광과 명예가 또 어디 있겠습니까? 이제 그만해야죠.”
플라키디아와 발렌티니아누스는 은밀하고 비열한 공범의 웃음을 나누었다.
“그럼 아틸라에게 누굴 보내면 좋을까요?”
“난 로마의 운명을 믿어보기로 했다.”
발렌티니아누스는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했다.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그가 로마의 생명을 구할 수 없을지 몰라도 로마의 생명을 연장시킬 수 있다고 믿고싶다.”
쿵쿵
글 소설가 하지윤 lif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