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개월 동안의 기나긴 여정은 결국 ‘한중 FTA 타결’이라는 종착점에 다다랐다. 무려 9년이나 걸린 캐나다와의 FTA 협상보다는 짧았지만 미국(10개월)·EU(26개월) 등 주요국 협상기간보다는 길었다는 점에서 결코 쉽지 않은 과정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한중 FTA 1차 협상은 2012년 5월 14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최석영 외교통상부 FTA교섭대표와 위지앤화 중국 상무부 부장조리는 협상운영세칙(TOR)을 확정해 향후 협상을 위한 기본지침과 틀을 잡았다.
2개월 후 우리나라 제주도에서 열린 2차 협상에서는 협정문을 포함해 대상범위에 대한 의견을 교환하고 원산지·통관·무역원활화를 FTA 협정문에 별도 챕터로 포함하기로 합의했다. 이후 3, 4차 협상에서 품목별 민감도를 나누고 구체적인 의견을 교환하는 등 양측은 발빠른 움직임을 보였다.
2013년 우리나라와 중국은 모두 새로운 정부를 출범한 만큼 FTA 타결 의지를 재확인하는 게 중요했다. 같은 해 6월 27일 가진 한중 정상회담을 계기로 상품 협상기본지침(모델리티)과 협정 대상·범위에서 이견을 좁히는 등 의미있는 진전을 이뤘다. 이어 2013년 9월 가진 7차 협상에서 모델리티에 합의하며 한중 FTA 1단계 협상이 마무리 됐다.
그 이후에도 양측은 공식·비공식 협상을 수차례 가졌다. 하지만 농수산 품목 개방 확대를 요구하는 중국과 제조업 분야 조기 관세 철폐 비중 확대를 요구하는 우리나라 간 이견차는 쉽게 좁혀지지 않았다. 이달 초까지 양국은 전체 22개 장 중 16개를 타결 혹은 타결에 근접하는 성과를 거뒀지만 나머지 6개 장에서는 여전히 이견을 좁히지 못했다.
타결은 막판까지 낙관할 수 없었다. 14차 협상을 코앞에 둔 상황에서 우태희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실장이 “중국의 통 큰 양보가 필요하다”고 말할 정도로 실무적 의견차가 컸다. 이번 타결이 성사된 것은 무엇보다 APEC 정상회의 기간을 넘기면 모멘텀을 잃을 수 있다는 양측의 공감대가 형성됐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막판에 장관급 회의를 연 것도 주효했다. FTA 자체가 완벽한 승자와 패자를 나눌 수 없는 협상인 만큼 결국 ‘정무적 판단’이 타결을 이끌어낸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협상 장소를 한국과 중국으로 번갈아 개최하는 ‘관례’까지 깨며 13차에 이어 14차 협상도 우리나라가 중국을 방문, 적극적으로 협상에 임한 것도 도움이 됐다. 결국 양국은 정상회담을 불과 네 시간가량 앞둔 10일 오전 7시 합의점을 찾아 ‘30개월 만의 한중 FTA 타결’이라는 과실을 따낼 수 있었다.
유선일기자 ysi@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