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년 전 조선에 국가의 새로운 청사진을 제시한 명저가 선보였다. 초정 박제가가 저술한 ‘북학의(北學議)’가 바로 그 책이다. 현실을 바탕으로 한 저술이면서도 역사를 넘어선 보편적 사유를 담았다는 평가다. ‘북학의’라는 이름을 그대로 풀이하면 북쪽을 배우자는 논의다. 북학은 북쪽에 있는 나라, 곧 청나라의 선진 문물을 배우자는 의미다.
북학의 주요 논의 주제 가운데 하나는 ‘경제와 통상’이다. 부국강병을 이루고 백성이 윤택하게 살기 위해서는 외국과의 통상이 촉진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내용 가운데 ‘재부론’ ‘강남 절강 상선과 통상하는 문제에 대한 논의’가 여기에 해당한다.
북학의가 세상에 선보인 뒤 긴 시간이 흘렀다. 북학의에서 말하는 발전모델은 전적으로 중국에 있었다. 현재 상황과는 괴리가 있다. 상황이 급변하지만 아직 우리 기술과 사회 전반 수준이 중국에 앞선다는 게 일반적인 생각이다.
최근 정부가 중국과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을 타결했다. 중국은 지난해 국내총생산(GDP)을 9조2403억달러까지 끌어올리며 미국에 이은 세계 2위 경제 대국으로 부상했다. 지역적으로도 가까운 우리에겐 최대 수출국이자 수입국이다.
특히 우리가 상대적으로 경쟁력을 보유했다고 자평하는 정보통신기술(ICT) 분야에서 중국은 호락호락하지 않다. 화웨이는 지난해 이동통신 네트워크 장비와 스마트폰 시장에서 선전하며 매출 42조원에 이르는 거대 기업으로 성장했다. 스마트폰 시장을 강타한 샤오미도 마찬가지다. 중국 휴대폰 시장에서 샤오미는 삼성전자를 제쳤다.
중국 ICT 산업은 우리 턱밑까지 쫓아왔다는 게 전문가들의 판단이다. 한국과 중국 간 ICT 경쟁력 비교만큼은 우리가 우위라는 생각은 재고할 필요가 있다. 오히려 한중 FTA 타결을 우리 ICT의 힘과 경쟁력을 재점검하는 기회로 삼는 것이 바람직해 보인다. 중국과 거대한 교역의 길을 튼 지금, 250년 전 발간된 혁신적 책 한 권이 예사롭지 않게 느껴지는 이유다.
윤대원기자 yun1972@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