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유 택시 도입으로 택시 연료 다변화를 꾀하는 정부 계획에 빨간불이 켜졌다. 완성차 업계가 경유 택시 개발비용 대비 이득이 크지 않다는 판단에 선뜻 제조에 나서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경유 택시 보급으로 내수 물량 확대를 기대한 정유사도 상황에 촉각을 곤두세우게 됐다.
12일 업계에 따르면 현대기아차·르노삼성 등 완성차 업체들은 여전히 경유 택시 생산 여부를 결정하지 못하고 있다.
앞서 정부는 지난해 말 ‘택시운송사업 발전에 관한 법률안’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경유 택시 도입을 결정했다. 화물차와 버스에 지급하는 수준의 리터당 345.54원의 유가 보조금은 환경성이 개선된 유로-6 기준의 경유 택시가 출시되는 내년 9월부터 지원된다. 연간 허용대수는 최대 1만대다. 국내 운행 택시는 총 25만대로 연평균 4만대가 개체된다. 이를 감안하면 경유 택시 허용 대수는 연간 택시 수요의 25%에 달한다. 언뜻 보면 큰 시장이지만 완성차 업계는 경유 택시 생산에 신중한 입장이다.
현대기아차는 택시 시장에서 자사 제조 LPG차량 점유율 95%를 차지하고 있다. 경유 택시 출시로 인한 판매량 증가 효과가 미비하다는 판단이다.
르노삼성은 택시 시장에서 경유 택시로 점유율 확대에 나설 수 있는 기회를 맞았지만 상황은 녹록지 않다. 르노삼성은 경유 택시 주력 모델로 배기량 1500cc의 SM5를 선정했다. 2000cc 모델보다 연비가 좋아 주행거리가 긴 택시에 적합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1500cc 모델은 중형 택시 요금을 받을 수 없어 택시 업계의 선호도가 크게 떨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유류 보조금이 주어지는 유로-6엔진 차량 개발과 인증에 들어가는 투자비도 적지 않다. 경유 택시 제조사의 배출가스 보증기간을 16만㎞에서 24만㎞로 강화하고 배출가스 저감장치 설정을 임의로 바꾸지 못하도록 한 환경부의 방침도 부담이다.
현대차 관계자는 “경유 택시 생산 여부는 아직 결정된 것이 없다”며 “기술개발 비용과 판매대수를 예측하고 관련 규제가 어떻게 적용될지 파악하는 과정이 충분히 필요하다”고 말했다.
택시 사업자도 경유 택시 도입을 주저하고 있다. 환경부가 운행 단계에서 경유 택시 배출가스 검사 주기를 1년에서 6개월로 강화하고, 배출가스 검사 항목에 질소산화물을 추가하는 등 경유 택시 규제를 강화할 뜻을 내비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택시 연료 다변화라는 정부 계획도 차질을 빚을 것으로 예상된다. LPG 택시를 압축천연가스(CNG) 친환경 택시로 개조하는 사업도 실적 부진으로 사실상 실패로 돌아갔다. 경유 택시 도입마저 어려워진다면 택시 연료 다변화 시도는 사실상 무위에 그칠 공산이 크다.
경유 택시 보급으로 내수 공급 물량 확대를 기대한 정유 업계도 예의주시하고 있다. 현재 국내 경유 차량은 780만대다. 연간 1만대 규모의 경유 택시 보급으로 판매량이 단숨에 늘어나기 힘들지만 신규 수요를 창출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기대를 가져왔다.
국토부 관계자는 “LPG 의존도가 높은 택시 연료를 다변화하기 위해 경유, CNG 택시 도입을 계획했지만 단기간 내 보급이 늘어나기는 힘든 상황”이라며 “완성차 업계의 상황에 따라 시기가 다소 조정될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 택시 연료 다변화 정책은 지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최호기자 snoop@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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