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제조업은 세계 선진국도 부러워할 정도로 빠른 속도로 성장했다.
삼성전자·현대자동차 같은 글로벌 제조기업이 탄생했고 중소·중견기업의 기술 경쟁력도 높은 편이다. 그럼에도 우리 제조업은 시장 변화나 변수가 발생하면 대책없이 흔들리는 취약한 모습을 보여왔다.
전문가들은 그간 국내 제조업이 고질적인 문제점을 근원적으로 해소하지 못한 것에서 그 이유를 찾는다.
흔히 한국 제조업의 취약점으로 △부실한 산업 생태계 △소프트파워 부족 △핵심 소재부품 기술 미흡 등을 꼽는다. 십수년 동안 지적돼온 문제점이지만 좀처럼 마침표를 찍지 못하고 계속 대두되고 있다.
이 가운데서도 가장 문제로 지적되는 것은 부실한 생태계다. 경기가 좋을 때는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별문제 없이 동반성장하는 듯하나 경기가 나빠지거나 시장 상황이 달라지면 어김없이 협력 관계에 파열음이 들려온다. 대기업은 불어닥친 위기를 극복하려 중소기업에 단가 인하 압박을 가하고, 중소기업은 가격 경쟁력 확보를 이유로 연구개발(R&D)을 등한시한 채 단기적인 비즈니스에 매달린다.
경기가 나빠지기 전에 대중소기업이 힘을 모아 새로운 도약을 위한 R&D 투자를 확대하고 기초 체력을 키우면 좋겠지만 지금 우리 제조업 생태계에서는 요원한 얘기다. 각계 전문가가 대기업에는 중소기업과 상생을 주문하고, 중소기업에는 대기업 한 곳만을 바라보는 천수답식 경영에서 벗어날 것을 당부했지만 개선 속도는 더디기만 하다.
제조업의 부가가치를 높이려면 소프트파워를 키우고 핵심 소재부품 기술을 확보하려는 노력도 요구된다. 우리 제조업은 소프트웨어 응용기술과 엔지니어링·디자인 경쟁력을 결합해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데 매번 부족함을 느끼는 실정이다. 올해 사상 첫 소재부품 무역흑자 1000억달러 달성이 기대되지만 부가가치가 높은 핵심 소재부품의 경쟁력은 여전히 취약하다는 지적도 있다.
최근에는 ‘중국’이라는 변수도 나날이 영향력을 키우고 있어 면밀한 검토와 대응 전략 마련이 절실하다. 지난 10일 한국과 중국 간에 자유무역협정(FTA)까지 타결돼 중국은 우리 제조업계가 빼놓을 수 없는 주요 변수가 됐다.
주대영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중소 제조기업이 국내 대기업 한 곳만 바라보고 사업을 벌이는 것은 이제 지양해야 한다”며 “보다 적극적으로 중국 시장을 공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주 연구위원은 “이 과정에서 중소기업이 중국 시장에 바로 진출하기는 어려운 만큼 정부나 협회, 단체 등이 연결고리를 만들어줘야 한다”고 덧붙였다.
중소기업의 생산 시스템을 업그레이드하는 노력도 필요하다. 국내 중소 제조기업 중 상당수는 아직도 생산·경영 인프라를 주먹구구식으로 운영 중이다. 정부가 스마트 공장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것도 이 같은 문제를 개선하는 게 목적이다.
김철호 한국생산기술연구원 생산시스템연구실용화그룹장은 “뿌리산업은 제조업의 기본이 되지만 아직도 영세한 일부 기업은 제대로 된 정보화체제를 갖추지 못하고 있다”며 “생산 현장을 선진화할 수 있는 미래 기술을 지속적으로 개발하는 한편 당장 적용가능한 시스템은 빠르게 보급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호준기자 newlevel@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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